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지리산 편지]목민정치학교(牧民政治學校)

첨부 1



[지리산 편지]목민정치학교(牧民政治學校) ①

내가 소속  되어 있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부설기관으로 목민정치학교를 개학하게 된다. 3월 2일에 개학식을 하게 되는 이 학교의 설립 목적은 간단하다. 개혁 우파 세력의 사관학교가 되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다 그러하지만 정치계에 더욱 두드러졌던 병폐가 있었으니 일꾼을 기르지 않았던 점이다. 아니 기르지 않았던 정도가 아니고  스스로 커 나오는 것을 위에서 막아 왔다.

사람을 기르지 않았던 점은 좌파에서 보다 우파에서 더 심하였다. 그간에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수구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쳐 놓고 반공, 친미, 안보, 성장만 되풀이 말하고 있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으로 착각하며 지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을 모른 체 자기들만의 울타리 안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안방까지 빼앗기는 낭패를 당하게 되고만 것이다. 이를테면 회개할 줄 모르고,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고칠 것을 고치지 못한 보수주의자들이었기에 국민들로부터 용도폐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보수주의의 병폐를 인식하고 개혁하는 보수, 새로워지는 우파의 기치를 들고 나온 운동이 뉴라이트 운동이다. 다행스럽게도 뉴라이트 운동은 이제 시작 된지 불과 일년여만에 힘 있는 운동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뉴라이트 운동이 국민들 속에 대중운동으로서의 터를 잡아 나가게 되면서 논의 된 것이 다가오는 통일한국시대를 이끌어 나갈 정치 지도자들을 기르는 교육훈련기관을 세우자는 논의였다. 이 논의가 무르익어 이번에 뉴라이트 부설 정치학교를 개학케 된 것이다. 이번 개학식과 더불어 미국의 선거운동 내지 정권교체운동의 세계 최고권위자인 Leadership Institute의 창설자인 Dr. Blackwell 이 현대적인 선거기법의 전문가 3명을 대동하고 와서 4일간에 걸쳐 40시간 집중 강의를 하게 된다.

목민정치학교(牧民政治學校) ②

나는 세계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오대양 육대주 거의 가보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이다.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만남을 통하여 지니게 된 한 가지 확신이 있다.

우리 민족이 대단히 우수한 민족이란 점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대단한 탁월성을 지닌 국민들이란 점이다. 그런데 아무리 민족이 우수하고, 국민들이 탁월할지라도 그 민족과 그 국민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약하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 나라사정이 꼭 그러한 때이다. 지금은 민족의 저력과 국민들의 역량을 한 목표를 향하여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갈 리더십이 빈약하다. 그래서 민족의 발전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는 국민소득이 1만불에서 2만불로 올라가는 데에 평균 8년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불에 이른 뒤에 12년 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국가의 자원과 국민들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 미래를 향하여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나갈 리더십이 빈곤한 탓이다.

그렇다면 없는 리더십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선거에서 그런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를 뽑는 길이다.
둘째는 그런 리더십을 젊은이들 속에서 길러 나가는 일이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부설 목민정치학교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이루어 나가려는 목표로 세워지는 리더십 육성 학교이다.
첫째 목표인 바람직한 지도자를 뽑아 세우기 위하여 좋은 지도자를 찾아내어 그가 지도자로 뽑혀질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 나가는 일이다. 쉽게 말하자면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전략과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
둘째는 청년 대학생들 속에서 기초 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최고 수준의 전략, 전술에 이르기까지 수준 높은 일꾼들을 길러 나가는 길이다. 뉴라이트 정치학교는 이일을 수행하는 교육, 훈련 기관으로 창설되는 것이다.

목민정치학교(牧民政治學校) ③

뉴라이트 부설 목민정치학교가 육성하려고 관심을 가진 대상의 첫째는 전국 각 대학에서의 학생회 일꾼들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학들 중에 4년제 대학이 200여 대학이고 2년제 대학이 150여 대학이다. 합하여 350에 이르는 대학들의 학생회를 지난 30년 동안 좌파 운동권이 완전히 석권하여 왔다.

좌파 운동권의 중심 세력이 소위 주사파로 알려져 있는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추종하는 세력들이다. 이 주사파를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전선) 계열이라 부른다. 주사파는 북한의 주체사상이 민족의 희망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무리들이다.

주사파가 일어나게 된 단초는 1980년 5월의 광주의거에서 비롯된다. 그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전두환을 수반으로 하는  소위 신군부가 너무나 가혹하게 짓밟아 금남로를 피로 물들게 한 일이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치명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되었다. 그 후로 운동권이 70년대까지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미운동으로 나타났다. 운동권에서는 선배격이었던 우리들은 후배들이 반미운동을 거세게 할 때에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고 6.25 전쟁 때는 공산화 되는 것을 막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고마운 나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에 한-미 관계가 대등하지를 못하고 너무나 미국 측에 기우러진 상태였음도 또한 사실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반미운동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초에 시작 된 반미운동으로서의 학생운동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친북운동으로 변질 되어가는 낌새가 나타나기에 우리는 염려하기 시작하였다.

목민정치학교(牧民政治學校) ④

광주의거는 1980년 5월에 일어났다.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 하자’는 평화로운 시위를 무력으로 짓밟아 광주시내 금남로가 피로 물들이게 되자 그에서 오는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운동권이였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광주의거 이후 학원 내의 민주화 운동이 처음에는 반미운동으로 시작하였다가 종래는 친북운동으로 나가더니 끝내 주체사상이 민족의 희망이라는 주장으로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광주의거를 총칼로 짓밟은 신군부에 대한 반발이 반미운동으로 번지게 된 것은 국군에 대한 통수권을 가진 미군이 왜 광주로 군대가 출동하는 것을 막지 않았느냐? 이것은 미군이 광주 시민들에 대한 무력 진압을 동조 내지 묵인한 것이 아니냐? 는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80년대 중반에 들면서 대학 내의 주사파(主思派)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대학의 학생회를 장악하고 그 학생회들이 전국적인 연대를 맺어 전대협(全大協)을 결성하였다. 전대협은 후에 한총련(韓總聯)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중에 핵심 일꾼들 중에는 북한으로 밀항하여 김일성을 면담하고 돌아오는 데까지 발전케 되었다. 그들 중에는 오른 편에 김일성 사진을, 왼편에는 김정일 사진을, 가운데에 인공기를 걸고는 북한 노동당에 입당을 하고 김일성 부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을 치르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강압적으로 억누르기만 한 군사정부에 대한 반발이 이렇게 가장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가게 되었다.

70년대 우리들이 민주화 운동하던 때는 대체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 각기 살길을 찾아 나서고 졸업 후에까지 운동이 계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들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학생 시절에 주사파 운동을 하던 핵심 세력들은 졸업 후에도 계속하는 소위 운동의 프로화가 이루어졌다.

목민정치학교(牧民政治學校) ⑤

과거 80년대 대학 운동권을 중심으로 일어난 친북 좌파 운동에는 크게 세 흐름이 있었다.
첫째가 소위 주사파로 알려진 N.L. 계열이다. N.L.이란 National Liberat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민족해방전선을 일컫고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따르는 것이 민족의 희망이요, 대안임을 신봉하는 그룹이다. 가장 세력이 강하고 행동력이 있는 그룹이다.

둘째는 P.D. 그룹으로 People‘s Democracy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인민 민주주의 노선을 택하여 맑스 레닌주의 이론으로 이 나라 전체를 이상적인 사회주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던 그룹이다. 이론 무장이 가장 잘 되어 있었던 그룹이었으나 러시아와 동구 공산권이 무너진 후에 이론과 현실 간의 간격에서 오는 갈등에 빠져 핵심 그룹들 중에 많은 수가 자유민주주의로 전향을 하게 되었다. 지금 뉴라이트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과거좌파 세력들 중에 P.D. 계열이 가장 많다.

세 번째 그룹은 C.A. 그룹으로 Constitutional Assembly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제헌의회파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은 지금의 국회를 부르조아 반동 성분으로 구성된 국회이나 투쟁을 통하여 이를 해산하고 노동자, 농민, 빈민 대표들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국회를 결성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그룹은 세력이 가장 약하였다.

이들 세 그룹들 중에 지금까지 가장 활발하게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룹은 첫번째인 N.L. 그룹이다. 이 그룹을 중심으로 핵심 인사 1,500여명이 여당, 국회, 청와대 , 민노당, 전교조 , 행정부, 문화운동, 시민단체 등에 골고루 진출하여 세를 뻗쳐 활동하고 있다. 통칭 좌파 세력의 이런 움직임에 비하여 우파는 너무나 지리멸멸하고 훈련 되지 않은 아마추어들로 구성 되어왔다.

이에 뉴라이트 전국연합에서는 우파 진영에서 전문적인 운동가들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육성하여 나갈 필요성을 절감하고 뉴라이트 정치학교를 개설케 된 것이다. 뉴라이트 정치학교는 앞으로 개혁 우파 세력을 이끌어 나갈 핵심 일꾼들을 길러 내는 사관학교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이 학교를 설립하는 우리들의 목표요, 꿈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