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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시나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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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 새 

- 정석환 연세대 신과대학장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있다. 그 새는 태어나자마자 둥지를 떠나 가시나무를 찾아 해매고 마침내 그 나무를 찾으면 그중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자신의 몸을 날려 죽어간다. 죽어가며 내는 그 고통의 소리는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 한다. 고통을 초월한 마지막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에 온 세상은 침묵 속에 귀를 기울이고 천상의 하나님께서도 미소를 지으신다. 가장 훌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러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호주의 여류작가 콜린 매컬로의 소설 ‘가시나무 새(The Thorn Birds)’에 나오는 가시나무새의 전설이다. 

이 새의 전설은 우리 인생에 대한 우화다. 가시나무를 찾아 떠나는 삶과 가시나무를 피해만 가는 삶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행복을 위해, 삶의 의미를 위해, 사랑을 위해,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가시밭길을 선택하며 고통을 치르려고 작심하는 사람들의 자취가 만들어 가는 삶의 지도가 있는가 하면, 남이 닦아놓은 길도 조심스러워 늘 망설이고 주저하는 부정적 인생지도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 가시나무새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였을까 아니면 그 작은 새가 둥지를 떠나면서 보인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목표 때문이었을까? 

흔히 성공한 나라의 국민들은 고통을 회피하고 순간의 환락을 즐기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한다. 로마가 망한 것은 외적의 침략이 아니라 삶의 성공과 번영을 구가하며 ‘지금-여기’를 즐기며 잊어버린 초기 로마의 이념과 비전, 삶의 목표의식이었다. 

최근에 만난 일본인 교수는 얼마 전 겪은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의 자연재난이 결국엔 일본에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 비극적 고통 가운데에서 일본인들의 눈빛이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의 눈빛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 삶은 고통이다. 이 고통의 현실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고통을 핑계 삼아 고통에 그저 가라앉는 사람, 고통에 발버둥치며 외치고만 있는 사람, 고통 가운데에도 그 풍파를 넘어 삶의 목표와 푯대를 갖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사람. 가시나무 새의 선택처럼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도 우리의 자유다. 예수, 바울, 마틴 루서 킹 목사, 마하트마 간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등은 가시나무새의 삶을 선택했다. 

그들은 생의 고통과 모호함 속에서도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이다. 고통 속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로 하늘의 미소까지 번지게 했던 사람들이다. 가장 험한 곳에 목숨을 던져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다. 그 노래로 길이 없는 곳에서도 스스로가 길이 되고 많은 사람을 길로 인도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이 부른 노래는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 오늘도 우리들 가슴속을 파고든다. 이 세상과 천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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