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어디 대나무만 만드셨나요?

첨부 1


청년 예수 방랑기(9) : 어디 대나무만 만드셨나요? 

- 이정근 목사 (원수사랑재단 대표)


나 예수가 이 마을에 머문다는 걸 소문내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조용히 기도해야 할 급박한 일들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짱 헛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여기저기에서 꾸역꾸역 모여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자기 남편목사를 꼭 만나달라는 어떤 사모의 요청은 너무나 애절했습니다. 남편 목사의 외고집을 꺾어 달라는 절실한 호소입니다.

“벌써 여섯 번이나 교회에서 쫓겨났어요. 그리고 지금도 담임목사 자리 비워 달라고 아우성이네요.”

울면서 그런 상담을 해왔습니다. 생활도 막막하고 자녀교육도 엉망진창이 되었답니다. 가족의 그런 고통에도 동정이 갔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바른 사명을 회복하는 것이 더욱 긴급했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가 영혼구원 센터요 하나님 나라 모형이 되도록 하려고 생살을 찢고 뜨거운 피를 흘렸습니다. 

“저는 데모세대입니다. 신학대학 다닐 때에도 공부보다는 데모가 더 신났지요. 신군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고문도 당했지만 결코 변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처럼 목숨 걸고 정의를 외치는 대쪽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는 대쪽 같은 기개가 살아 있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더 들었습니다. 

“몇 교회 거쳐 큰 교회 부목사로도 시무했지요. 그런데 개판입니다. 고액헌금자들과만 놀아나고 부목사는 사뭇 노예취급을 했어요. 참다못해 담임목사를 향하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대들었습니다.” 

그 항명사건 이후 부목자리가 꽉 막혔답니다. 불만세력 몇 가족을 이끌고 나와 교회를 개척했지만 그들끼리 권사와 장로 되려고 아귀다툼을 하더랍니다. 설교 때 ‘화 있을진저’ 하고 심판과 저주를 퍼 부었더니 그들끼리 야합해서는 당장 나가달라고 했답니다. 교회 쫓겨난 기록으로 보면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며 웃었습니다. 씁쓰레한 웃음이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정의의 목회를 하시느라고 고생도 많으셨고요.”

“역시 제일 잘 이해하여 주시는군요. 대쪽목회에는 남들이 모르는 쾌감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를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무화과나무도 만드셨지요. 그건 곧게 자라는 대나무와는 사뭇 다릅니다. 많은 가지들이 옆으로 퍼지고 잎사귀가 넓어 가림막 역할도 하지요. 열매도 엄청나게 많이 열립니다. 대쪽 목회를 한 단계 높여 무화과나무 목회를 하시면 어떨까요.....뚝심 있는 정의와 함께 용서와 사랑을 듬뿍 가진 무화과나무 말입니다.”

“글쎄요, 한국은 이스라엘과 좀 다릅니다. ‘임 향한 일편단심’으로 이방원의 ‘만수산 드렁칡’을 격파한 정몽주 선생께서 크게 존경받고 있는 토양인데요.”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대나무와 칡넝쿨의 장점을 모두 가진 것이 무화과나무 아닐까요. 포은선생 시대에는 그 나무가 없었지요. 지금은 한국 땅에서도 무화과나무가 제법 많아졌다면서요.” 

나 예수는 이어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의 깊은 뜻을 풀었습니다. 생명을 낳지 못하면 생명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는 경고였습니다.

지금까지 꼿꼿하게만 앉아 있던 그 목사는 그제야 비로소 자세를 풀었습니다. 무화과나무처럼 편안한 자세였습니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