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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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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 정충영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 


마더 테레사처럼 수많은 상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알바니아의 한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몸집도 작았고 인물도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처럼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늘 자신을 가리켜서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이라 말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사랑을 안고 인도의 빈민촌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곳에 버려진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뭇사람들은 그녀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고 그를 빈민굴의 성자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 알려진 1962년부터 마더 테레사에게 수많은 상이 주어졌다. 그녀가 활동을 시작한 지 14년째인 1962년 1월 26일 파드마 슈리 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인도 태생이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상식 날 인도 대통령은 마더 테레사가 묵고 있는 뉴델리의 수도원으로 리무진 차를 보내 주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사랑의 선교회에서 쓰고 있는 구급차 겸용의 밴을 타고 대통령 관저로 갔다.

그로부터 2-3달 후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을 받을 당시 그녀는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에 나병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자금난 때문에 계획을 연기하려고 결심한 날 수상소식이 날아들었고 그 상금 5만 루피(한화 약 1천 1백 50만원)는 나병환자를 위한 시설 자금으로 쓰였습니다.

1971년엔 많은 상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교황 요한23세 평화상을 받았고 상금 2만 1천 5백 달러(한화 약 1천 9백 70만원)는 샨티 나가르이 나병환자센터 건설자금으로 쓰였습니다. 또 미국 보스턴에 있는 전국 가톨릭 발전회의의 ‘착한 사마리아인 상’도 수상했습니다.

1972년 11월엔 국제이해에 기여한 공로로 뉴델리에서 네루 상을 받았고, 1973년 4월 25일에는 템플턴(Templeton)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의 상패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귀하는 신(神)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사랑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귀하는 신을 반영해 주는 인간의 삶의 질을 더욱 높이는 데 공헌했습니다.”

이 외에도 1975년 그녀는 ‘생명을 경외한’ 공로로 ‘앨버트 슈바이처 국제상’의 첫 수상자가 되었고, 1976년엔 미국 아이오와 주의 오키프 주교로부터 ‘지상의 평화상’과 ‘가톨릭 이인종 협의회상’(마틴 루터킹 목사가 받은 상)을 받았습니다.

1979년 그녀는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활동무대였던 캘커타 도시는 열광하였으나 마더 테레사는 조용히 수도원 안에 칩거하여 한 달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1997년 그녀는 인도의 국장으로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에 그녀의 장례식이 방영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겨자씨 같이 작게 시작했던 그녀의 삶이 놀랍도록 성장해서 큰 나무처럼 된 것입니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했지만 그 질그릇 속에 귀한 보화가 담겨있음을 사람들은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당신도 바로 그러한 보화를 담고 있는 질그릇임을 잊지 않으시겠지요!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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