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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산마루서신] 당신을 버릴 때-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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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2]

첫사랑의 소박한 그녀를
내가 겉멋 들어 버렸을 때
희뿌연 가로등 아래서
그녀는 잡지도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굵은 눈물 흘리며 천천히 기숙사로 돌아갔다

내가 세상을 알았을 때
소박하고 진실한 그녀는
저만큼 앞서 해고자가 되어
또다시 어느 현장에 몸을 담고
어리석은 나를
조용히 미소지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2년을 바둥쳐 봐도 얼어붙은 이 침묵
잠들은 동료들을 병신이라 원망하고
자포자기한 동료들을 흔들어 봐도
움직이지 않는 죽음의 바다 앞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다

십년을 노력해도 가망없다고
차라리 다른 곳에 씨를 뿌리자고
사직서를 품에 넣고 출근한 아침
웅성웅성 동료들은 일손을 놓고
눈과 눈을 마주쳐 불꽃이 일고
가슴이 합쳐져 함성으로
처얼썩 출렁 파도쳐
천이백 근육들의 출렁임으로
거대한 해일처럼 휩쓸며
일어서던 날,

내가 눈이 어두워
그녀를 버린 것처럼
나는 형제를 믿지 못하였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억눌리고 빼앗기는 노동자임을
견디다 못해 일어서면 해일이 되는
무겁고 깊은 바다임을
나는 매몰 속에서
섣부른 머리와 조급함으로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형제를 버리려 했었다

숨죽인 바다는
마침내 해일이 되는 것을,
굳센 믿음으로 옳은 실천으로
끈질긴 집념으로
서둘지 말자
그러나 쉬지도 말자

*박노해의 시는 관념화 되고,
몽상적인 삶으로 발길을 옮겨가는
나 자신의 발길을 언제나 멈추어 세우고
무릎꿇고 기도하게 해주며
다시 신발끈을 매도록 해주어서 고맙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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