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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자살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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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예방이 최우선일 뿐입니다. 자살은 견딜 수 없는 생활 상태를 피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고의적 행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요즈음 하루에 평균 34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망자 수는 24만 4,874명이었습니다. 그 중 1만 2,174명이 자살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중 4위고, '할복의 나라' 일본은 물론, 자살률 세계 1위 헝가리마저 제치고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경제적 파산, 갑작스런 충격과 변화, 유전적 소질, 성격적 특성, 양육환경, 자살 가족력, 만성신체질환, 정신병, 사회통합도 약화, 우울증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드샤 박사는 자살의 주요 동기를 “세 가지 문의 법칙” 즉, 비상구, 출구, 입구로 보았습니다. 자살자들은 죽음을 이생으로부터 도피(비상구)로 여기고, 죽음을 생명의 파괴(출구)로 여기며, 죽음이 무생명, 무존재, 무가치한 것이기를 소망 할 때 자살은 그 입구가 된다고 합니다. 뒤르껭은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집단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자살의 원인으로 말하며, 개인의 사회적 고립현상을 아노미(anomie)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세인즈 버리는 자살의 원인을 “고독”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발생한 자살을 분석하면서 “뿌리 깊은 가난”보다 “고독”이 자살의 주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엔딕스는 자살은 직장 동료나 이웃 가족들 사이의 인간관계에 의한 “상처받은 자존심”, “굴욕감”에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당시에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우울증이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정신분열증이 10%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중 약 25%가 술 중독 문제를 같이 가지고 있으며, 그밖에 여러 가지의 약물 남용의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로 인한 손실은 막대하다고 합니다. 국립서울병원은 한 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액을 3조 856억 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자살 바이러스가 어떤 바이러스보다 강하게 생명을 해치는 시대입니다. 기독교인도 자살 바이러스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은 대부분 그 장례식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로, 자살은 죄이며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모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고 생명 자체로 존엄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453년 알레스 회의에서는 자살을 정죄하였고, 533년 2차 오를레앙 회의에서는 자살자에 대한 헌금을 금했으며, 639년 톨레도 회의에서는 자살 기도자에게 2개월 출교시키는 징벌을 내렸습니다. 자살자의 시체는 신성 모독이라고 하여 길거리에 팽개칠 때도 있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은 하나님께 대한 죄로(신32:39),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치명적인 죄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자살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이 낳은 아들로서 이복형제 70명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집권 3년 만에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뼈가 파쇄 되자 병기 잡은 자에게 자신을 치게 하여 자살했습니다(삿9:52-54).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도 블레셋 전쟁에서 중상을 입자 스스로 자결하였습니다(삼하31:4). 압살롬을 도와 부왕 다윗을 배반하고 정권을 잡게 한 아히도벨도 모략이 수포로 돌아가자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삼하17:23).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시므리가 집권 7일 만에 왕도가 포위되자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죽었습니다(왕상16:18). 은 30에 예수님을 인신매매한 유다가 그것을 성전에 던져 놓고 물러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마27:5). 성경은 이들의 자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평하지 않지만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거부이며(창2:16-17),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파괴이고(막8:36-37), 가혹한 자기 처벌임과 동시에(마27:3-5),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잘못된 방법으로 벗어나기 위한 가학적 생명 파괴입니다.

인도에서 남편을 여윈 아내를 남편과 함께 화장하는 수띠(Suttee), 일본의 할복자살처럼 미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네카는 자살이 인간의 고유한 권리이므로 죄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흄은 자살은 인간을 다시 본래의 타고난 자유에로 환원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살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의 제 6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자살을 금하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신자의 몸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고전6:13), 그 몸은 성령의 전(고전6:19)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인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신성성과 존엄성을 가진 생명은 스스로 자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자살은 결코 해서는 안 될 무서운 죄악입니다. 자살할 결단력이 있다면 죽기로 살아 보아야 합니다. "자살"을 꺼꾸로 하면 "살자"입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얼마든지 살길은 있습니다. 주님을 피상적으로 만나지 말고 진솔하게 내 인생의 주님으로 만나면 인생은 어떤 경우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섬기는 언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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