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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낡은 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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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는 낡은 경대가 있다. 혼수품으로 장만했던 것이다. 신혼 시절 이사하다가 교각에 이삿짐 트럭이 부딪히는 바람에 장롱이 망가진 후 짝을 잃고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버린 경대이다.
21년 동안 한 번도 제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거울이 몇 번이나 떨어져나갈 뻔하여 못으로 고정시켜야 했고, 거울마저 흐릿해져서 닦아도 표가 안난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찍어 곰보 투성이가 되었을 때, 거울이 자꾸만 덜렁거릴 때, 어울리지 않는 가구들 늘어선 방 안을 둘러보며 고물집합소 같다고 넌더리를 냈을 때, 가구들을 새 것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었다. 이사할 때마다 버리자고 다짐을 했건만 어느새 따라와
식구들보다 먼저 안방에 떡하니 들어앉은 경대. 그것에는 삶의 흔적들만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건 아닌가보다. 거울 속에는 내 마음의 변화들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 같다. 결혼을 기념하는 경대만은 못 버린다고 남편이 우길 때 예쁜 가구를 가지고 싶어 몸살을 앓던 마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좀더 윤택한 삶을 기대하며 참고 기다리던 마음, 소비를 줄여야 사람과 자연이 살아남는다는 생태적 사고들을 접한 뒤에는 이 경대를 절약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껴안고 놓아주지 않던 마음. 세월따라 변해온 자잘한 마음의 무늬들이 거울에 박혀 있는 것 같다. 작년에 이사할 때 경대의 한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얇게 붙인 무늬목이 떨어져나가 속살이 드러나고 날마다 나뭇가루가 떨어져내린다. 그런데도 버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결혼기념일이 올 때마다
똑같이 나이를 먹는 경대. 닳아지는 내 살을 닮은 경대가 숨을 쉬는 것만 같다.
- 황혜원, 서울시 금촌구 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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