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세계선교 보고서 : 홍콩

첨부 1


세계선교 보고서 : 홍콩

- 홍콩 선교사 김영종 교수(숭실대) 

1.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마 28:18-20)이고 사명(마 22:37-40)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뜻(요 15:5, 8)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을 선교사로 부름에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었다.

필자는 2007년 12월 9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와 과천교회에 의하여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리고, 12월 27일 현지 선교지에 도착했다. 임지는 홍콩이었다. 이미 홍콩중문대학(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에서 초빙학자(Visiting Scholar)로 정식 초청장을 보내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캠퍼스의 대학생 학원선교를 하기 위하여서는 법적인 요건을 구비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초청장은 매우 유익하고 필요한 절차였다.

홍콩은 어떤 곳인가? 홍콩의 정식 명칭은 ‘영국령 홍콩’이었으나, 중국으로 반환(1997년 7월 1일)된 뒤부터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 행정구(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로 바뀌었다. 주도(主都)는 홍콩섬의 빅토리아시(홍콩市)이다. 주장강[珠江] 하구의 동쪽 연안에 있는 홍콩 섬과 구렁반도[九龍半島] 및 그밖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콩은 영국의 관할에서 중국으로 귀속된, 1국가 2 체제시스템으로 50년간 정치행정이 실시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법적인 근거는 중국의 홍콩 SAR 기본법(The Basic Law of the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다. 외교와 방위에 관한 사항만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결정하고, 나머지 사안은 홍콩 특별행정구(SAR) 정부가 관할한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전적으로 홍콩 주민의 자치에 의해 운영된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수장은 행정장관으로, 주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홍콩 700만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인구는 중국인(95%)이다. 한족(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은 필리핀인, 그 다음이 미국인, 그 다음으로 식민지 시대에 이주한 영국인이다. 그 외의 민족도 거주하며, 한국인 교민 수는 약 12,000명(한국 총영사관 통계) 된다. UN의 조사 발표에 의하면 2003년의 홍콩 인구는 6,900,000명이다. 언어는 영어, 중국어(북 경어, 광동어)이다.

한인들의 거주실태에 비교하면 교회도 매우 적은 편이며 복음 전도와 사역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2011년 세계선교지도에 의하면 홍콩의 평균수명은 82세이고, 개신교는 7.39%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는 59.6%에 이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5,901에 이르나, 참 신인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개인 주택은 물론이고 음식점, 심지어는 컴퓨터 가게에도 사당을 차려놓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보면 얼마나 복음 전파가 시급한가를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필자는 2007년 12월에서 2009년 1월 말까지 약 1년간 선교사역을 하였다. 필자가 한 선교활동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문대학생 학원 선교를 중심으로 하였다. 2008년 4월 25일부터 처음으로 영어성경공부를 시작하여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중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영어성경공부를 하였다. 영어성경공부 후에는 매주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친교를 나눈 결과 비교적 여러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둘째 홍콩에 한인신학교 설립을 위한 프로젝트 작업이다. 홍콩의 한인은 물론 중국과 인근 국가들을 선교하기 위한 지도자와 교역자 양성의 시급성을 깨달은 현지 교역자들의 요구로, 신학교 설립을 위하여 프로젝트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행정적 준비가 완료되었으나, 재정 문제와 경제 위기로 인하여 관계기관에 신청하기 전에 사역지를 이동하게 되어 장기적인 과제로 남았다.

셋째, 국제 선교이다. 기간 중 여러 외국인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교역자들과 친교를 나누며 복음 전도의 관심사와 저변을 넓혔다. 여기에는 오순절 계통의 국제오순절교회(ICA), My Lord is Jesus Christ교회, 꾸어리베리중국인 만선당교회, 타이쿠싱중국인교회, 그리고 샤틴중국인교회 등이 포함돼 있다.

넷째, 노방전도와 전도지의 배포를 통한 전도활동과 선교(학원, 부두, 전철, 거리, 상점 등)다. 관광의 나라 홍콩의 중심지인 하버시티에서 아내 김숙자 선교사와 같이 거의 매주 현지인, 관광객 등에게 무작위로 노방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다섯째, 문서선교다. 홍콩의 중문대학의 도서관에 필자의 졸저 영문설교집을 기증하고 영어를 쓰고 있는 학생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많은 영어성경을 배포하여 말씀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여섯째, 지역교회와 협력선교이다. 아내 김숙자 선교사는 홍콩 동신교회에 출석하여 성경공부를 가르치기도 하였고, 필자는 한인교회에서 말씀선포사역을 하는 기회를 가졌다. 중문대학 채플 출석과 교우들과의 친교를 통한 학원선교이다. 홍콩의 중문대학은 나를 객원교수로 초청한 학교이다. 기독교 학교인 이 대학은 매 주일에도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약 150명-200명 정도의 교수, 학생, 직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 출석하고 있다. 필자는 학교교회에 매주 참석했다.

마지막으로 김숙자 선교사는 필리핀 도우미 구제 사역을 하였다. 홍콩에는 약 15만 이상이나 되는 필리핀 여성도우미(domestic helper)들이 있다. 고용계약이 끝났으나 재계약이 되지 아니하여 하숙집을 전전하거나 본국에 돌아갈 여비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만나, 전도와 기도, 그리고 물질로도 돕기도 하였다.


2. 

홍콩 선교는 비록 1년의 단기간이나 비교적 의미 있는 결과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기간 중 예상치 아니한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외환 위기로 인하여 홍콩에서는 더 이상 선교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당회에 청원하여 승인을 받아 2009년 2월에 임지를 필리핀으로 이동하였고, 총회세계선교부에도 보고하였다.

홍콩 현지 선교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지적하면, 홍콩에는 한인들이 급증하고 국제거래와 지구촌화를 통하여 세계인들이 밀집하고 있으므로, 복음 전파 사역자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성공적인 목회는 목회자 혼자만이 아니라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 지역에 평신도 사역자의 양성을 위하여 신학교 교육의 수요와 공급이 매우 필요하다.

홍콩의 선교 기간 중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영어 성경공부 중 일어난 일이다. 중문대학에서 영어 성경공부를 매주 하는 과정에서 ‘챈 사무엘’이란 공대생을 전도했다. 매주 금요일 교내식당을 쓰는 것을 허락받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교직원들이 많이 올 때는 사범대학의 로비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이곳에서 공부하던 금요일 오후였다. 여러 학생들이 우리 가까이 모여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나는 그 학생들에게 가까이 가서 정중하게 지금 성경공부 중이니 좀 조용히 해주겠느냐고 부탁했다. 챈 사무엘은 공부를 마친 후 나에게 항의했다. 내용인즉 “그들도 우리와 같이 이곳에서 마음대로 쉴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왜 내버려 두지 않고 자기 사정만 보고 부탁을 하느냐? 이런 것이 한국식인가? 기독교 윤리상 맞지 않다. 나는 이 이상 성경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후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 후 필자는 다른 학생들을 전도하여(미얀마에서 온 학생 포함) 성경공부를 계속하였으나, 챈 사무엘은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씁쓸하고 서운하였다. 그를 위하여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후 필자가 필리핀으로 사역지를 변경하여 선교하고 있을 때였다. 이메일을 열어보는 중 영문 편지 하나가 확인되었다. 발신자는 바로 나와 함께 성경공부하던 그 학생이었다. 필자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

내용인즉 오래 전 성경공부를 하든 중 항의했던 무례한 행위를 용서해달라는 간절한 편지였다. 그 일 후에 그는 죄책감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불안하였고, 고민하다가 편지를 쓰게 되었다며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정중하게 사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순간 정말 놀랐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그를 회개하게 하는구나 생각하였다. 그 때 필자는 이미 필리핀으로 온 후였다. 필자는 이미 필리핀으로 사역지를 변경하여 왔다는 것과 “하나님께 자백하면 십자가 보혈로서 용서하여 주시고, 물론 나도 용서하였다”고 답을 하였다. 그는 그 후 답을 통하여 매우 기뻐하면서 ‘이제야 마음이 평안함을 회복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필리핀으로 한번 오겠다고 하였다.

둘째는 노방 전도 중에 일어난 일이다. 필자는 거주하는 곳의 근처에 있던 과일가게에서 바나나와 망고 등을 사면서 두 청년을 사귀었다. 전도지도 주고 일부러 과일을 사면서 격려도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목적은 그들을 전도하는 데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청년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다른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런데 그 청년은 서투른 영어로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동료 청년의 근무 태도가 좋지 아니하여 주인이 그만두게 하였던 것이다.

나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즉시 그의 연락처를 얻어 전화를 하고 장소를 정하여 만나기로 하였다. 이윽고 그는 만남 장소인 식당에 나타났다. 매우 실망한 모습이고 안색이 좋지 아니하였다. 그에게 사정을 들어보니 과일가게 일을 하여 혼자 노모를 부양하고 있는데, 집에서 가게까지 너무 먼 거리이기 때문에 가끔 지각을 했다는 내용이다. 해고 후에 그나마의 수입이 없으니 죽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자살을 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영어성경을 주면서 전도를 하였다. 그리고 자살은 죄이고 절대로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며, 필자도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그 후 실제로 어떤 지인의 배려로 새 직장을 소개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가 계속 일을 하는지는 정보가 없다. 비록 과일가게 판매원이지만 직업이 얼마나 귀한가? 자살까지 생각하니. 그에게는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이다”라고 확신하였다.

과일가게 판매원 실직자에게도 복음이 시급하게 필요하였다. 필리핀으로 사역지를 이동한 후 어느 날, 나는 매우 놀라운 이 메일을 받았다. 바로 그 청년이 보낸 편지였다. 거두절미하고 “Father, Father, Where are you?” 절규에 가까운 편지였다. 나는 기도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 청년을 구원하시고 소원을 들어주시고 복을 주시옵소서. 주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