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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벽은 언젠가 허물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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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그는 흑백 혼혈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미국 시민권이 없는 케냐 출신 하와이 유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수업을 같이 듣던 17세의 백인 처녀 앤(Ann)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랑에 빠져 마우이섬으로 도망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는 집을 떠나 하버드대로 유학을 떠났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케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일 때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Lolo)와 재혼한 뒤 그를 데리고 자카르타로 갔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살았습니다. 소년 시절 인종 차별을 받으며 아버지가 '케냐의 왕자'라고 허풍을 쳐대기도 하였습니다.

고교 시절엔 '아버지 없는 흑백 혼혈'이라는 출신 배경 때문에 정체성 고민에 빠져 마리화나와 코카인에까지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만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디딤돌로 삼아 극복하였습니다. 오바마는 "나는 인도네시아 아이이자 하와이 아이로, 흑인 아이이자 백인 아이로 자랐다. 그 과정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배웠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 시절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며 하루에 4.5㎞씩 달리고 일요일에는 금식을 했으며 열심히 공부하며 삶의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머물지 않고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진학했고 흑인으로 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시카고 로스쿨에서 12년이나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인권법 변호사로 "관용과 평등을 지키고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 편에 서라."는 어머니의 말을 새기고 빈민을 위한 지역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정치인으로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한 친구는 "아직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는 안됐어" 라고 출마를 반대했지만 그는 인종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흑인은 1776년 미국 건국 당시 전체 인구의 19%(현재는 12%)에 달했지만 노예 해방(1863년) 이후, 1870년 수정헌법 15조(흑인에 참정권 부여)가 발효되기까지는 투표권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인종적 편견은 미국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 연방 상원의원 중 흑인은 오바마가 유일합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도 오바마를 포함해 3명에 불과하고 연방 하원의원도 42명으로 전체의 10%에 불과합니다. 흑인 주지사는 지금까지 4명뿐이었습니다. 흑인운동가 메드가 에버스(Evers)와 킹 목사가 암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종편견의 벽을 깨고 최초 흑인으로 미국 대통령으로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었습니다. 벽은 언젠가 허물어 집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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