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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룩한 어두움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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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어두움에 대한 감사

- 강준민 목사 (LA새생명비전교회)            


어두움 가운데 거룩한 어두움이 있다. 우리는 어두움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어두움이 모두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머니의 태는 어둡다. 우리는 어두운 어머니의 태에서 성장했고, 어두운 태에서 태어났다. 어두움은 창조가 있기 전에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성령님이 품으셨던 것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다(창 1:2).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흑암은 깊었다. 성령님께서 흑암을 품으시는 중에 빛이 창조되었다. 

성경을 읽는 중에 한 때 하나님께서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사 45:3)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은 흑암 중에 보화를 담아 두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속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새 역사를 창조하기 전에 어두움을 통과하게 하신다. 수 몽크 키드는 이 어두움을 ‘거룩한 어두움’이라 불렀다. 수 몽크는 한 때 칠흑같이 어두운 날들을 보냈다. 그 날들을 통과하는 중에 문득 깨달음이 임했다. 그는 ‘기다림’이란 책에서 그가 깨달은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계란은 부화를 통해 병아리가 된다. 부화한다는 것은 발육에 필요한 조건을 조성한다는 뜻이다. 그 조건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때 퍼뜩 깨달았다. 어둠이었다. 모든 생물은 어둠 속에서 부화한다. 비로소 나는 내가 처한 어둠이 거룩한 어둠임을 알았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부화하고 있었다. 새 생명이 자라 출현할 때마다, 그 과정에 어둠이 꼭 필요하다. 번데기 안의 애벌레든 땅 속의 씨앗이든, 태내의 아이든, 영혼 안의 참 자아든, 모두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수 몽크 키드.「기다림」복 있는 사람. 207면)

어두움을 통해 새 생명이 자라고, 새 역사가 창조된다면, 어두움의 기간 동안에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에는 양면이 있다.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이다. 기다리는 동안에 때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냥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기다리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엄마의 태 안에 있는 아이는 기다리는 동안에 열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애벌레 속에 있는 나비도 각양각색으로 자라고 있다. 어미 닭의 품고 있는 계란 속에 있는 병아리도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모두 다 한결같이 어두움 속에서 기다리는 동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특별히 생명에 관한 일은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은 어두움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신다. 밝은 미래를 보게 하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눈을 잘 관찰해 보라. 우리가 물체를 보는 것은 흰자위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니다. 검은자위 곧 눈동자를 통해 보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검은자위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을 식별하도록 만드셨을까? 탈무드는 이 인생의 신비, 검은 눈동자의 신비를 이렇게 풀어 준다. “너의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고 할지라도 너희 현실이 눈동자와 같이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 오히려 그 어두움을 통해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두운 시절을 통과하게 하신다. 요셉은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졌다. 감옥에서 2년 동안 어두운 세월을 보냈다. 그 어두운 기간 동안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역사의 무대를 준비하고 계셨다. 요셉이 기다리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 그 꿈은 엄밀한 의미에서 바로를 위한 꿈이 아니라 요셉을 위한 꿈이었다. 다윗은 한 때 아둘람 굴에 머물렀다. 굴은 어둡다. 다윗은 한 때 어두운 날들을 통과했다. 그 어두운 날들 동안에 하나님은 다윗을 키우셨다. 어두운 굴에서 그를 성화시켰고, 그를 지혜롭게 만드셨다. 아비 양을 치는 목동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왕으로 변화시켰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지금 이 시대는 속도에 중독된 시대다.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다. 급하기 그지없고, 더 이상 인내가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속도중독증에 걸리고 만 것이다. 기다릴 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영혼은 느린 것을 좋아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느림이 게으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혼의 느림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느림이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느림이다. 또한 삶의 맛을 음미하는 느림이다. 간디는 “삶이란 그 속도를 높이는 것 이상이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어두움을 통과하게 하실 때,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속도를 조절하시기 위해 거룩한 어두움을 허락하신다. 거룩한 어두움 속에서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중에 기다리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드리라. 인내하며 기다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밝은 미래를 경험하게 되리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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