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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턱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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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 산악회
           
- 정석환 교수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


몇 년 전 나는 지천명의 생일을 맞으며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함께 산악회를 만든 적이 있다. 매주 토요일 건강과 친목을 도모하며 서로의 근황도 챙기고 적적함도 나누자며 만든 산악회였다. 나이도 있고 하니 너무 무리하게 정상을 탐하지는 말자여 일명 “중턱산악회”로 부르자고 서로가 의기투합했던 그 산악회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제는 나만 생각하는 내 골짜기에서 빠져나올 때다. 나만 생각하며 살지 말고 남 생각도 하고 살자. 둘째, 매사에 감동받고 남에겐 감동 주는 사람이 되자. 셋째, 쓸데없이 화내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재미있게 살자. 넷째, 설익은 논쟁에 휩쓸리지 말고 잘 듣고 칭찬해 주자. 다섯째,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집착하지 말고 놓아주자. 여섯째, 자주 온몸을 흔들며 웃어주자. 웃음의 잔칫상이 최고의 보약이다. 일곱째, 산에 오를 땐 무리하게 정상정복을 꿈꾸지 말자. 중턱도 축복이다.

한마디로, 경쟁의 사닥다리 타는 삶은 이제 그만! 나를 돌보고, 이웃을 돌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이 순간들을 축하하며 이웃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생명들과 함께 나누며 즐기는 춤을 추며 살자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성취·결과·소유 지향적인 이야기들로만 물들어가서 우리들 삶이 숨 막히듯 답답해지고 사는 재미와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우리만큼이라도 늘 남과 비교하며 사는 남의 박자에 춤추는 삶의 리듬을 접고 중턱을 노니는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나잇값을 하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이제는 우리 몸으로 느끼며 정말 나잇값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산악회의 강령이었다고 참여한 모두가 즐거워했다. 이 땅에 왔다가 너무 자신만을 위한 몸부림으로 이 아까운 시간들을 다 보내고 말면 우리는 하나님께 가서 인생의 소풍길이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 반추해 보며 한 주일에 한 번 산행길을 재미와 의미로 채웠던 기억이 난다. 

중턱산악회를 만들고 슬픈 듯이 빠른 세월이 한참이 지난 지금, 이 꿈이 우리 친구들의 가슴속에서 그리고 생활속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중턱산악회를 만들 때의 다부졌던 결심과 달리 바쁜 생활에 밀린 친구들이 자주 모여 산의 중턱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우리 중턱산악회 멤버들의 삶의 걸음 한편에서 그 꿈을 향한 춤사위를 발견하곤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변화가 진행되는 사회라 말한다. 하루가 다르게 경제 규모가 변화되고 그에 따라 경쟁의 속도가 변하여 ‘빨리 빨리’가 한국인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수식어가 되어가고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치며 이웃을 잃고 자신을 잃고 저 높은 곳을 향하고만 있을 때 중턱을 사랑하며 이웃과 자신을 참되게 돌볼 줄 아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삶의 속도가 그리워진다. 

이 가을, 하늘이 높아만 가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우리들 곁으로 더 다가올 때 중턱산악회 멤버들을 불러내 그동안 다시 빨라진 우리네 삶의 속도를 조율하며 느리게 느리게 걷고 싶어진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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