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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왕상 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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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자신의 지병을 고쳐 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한 다음에, 비로소 자신의 지병이 교만을 막아 주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바울 사도였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모든 사람이 복으로 여기는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실은 그 간구는 하나님의 은혜를 쏟아 버리게 해 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복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말 자기 자신에게 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짜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설령,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복과 은혜를 안다고 해도, 그것들을 받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또, 받았다고 해도 받은 은혜와 복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엘리야 선지자와 사르밧의 과부 이야기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주신 지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우상 숭배와 그로 인한 악행을 일삼고, 또한 벼슬아치들은 임금님에게 아부, 아첨을 일삼는 와중 속에서도, 엘리야는 온갖 우상 숭배의 왕초 격인 아합 왕에게 바른말을 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리라 라고 직언을 하고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그릿 시냇가로 피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그 곳에 숨은 엘리야를 까마귀들 을 통해 먹이시다가 그릿 시내가 마르자, 엘리야에게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 공궤하도록 명했으니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지시는 납득하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순종하기는 더욱 힘든 것입니다. 아마 엘리야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가난한 과부에게 공궤하도록 지시하셨을까 이왕이면 부자에게 공궤하도록 지시하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접받게 하셨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3. 과부에게 도움을 요청한 엘리야

엘리야가 사르밧의 성문에 이를 때에, 나무가지를 줍는 한 과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불러 세우고는, 그릇 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사실상, 고대 동방 지역에서는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이 하나의 의무였으나, 이 여인의 처지에서는 그 의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겨우겨우 버텨 오다가 도저히 더 이상 버틸 길이 없어서,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조금 남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에 아들과 함께 죽을 결심을 한 상태였습니다. 눈물조차 메마를 정도의 비참한 처지…그러니까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먹고 죽기 위해 나무가지를 줍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이웃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려고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야는 또 여인을 부르고는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 오라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여인에게는 참으로 기가 막힌 부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보세요, 누굴 약올리나 남의 사정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복장을 보니 하나님의 종 같은데… 라고 할 만도 한데, 그러는 대신에 자기의 사정만 설명하였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런 말을 듣고도 부탁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게 사람입니까 오히려 자기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털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엘리야는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와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나 더구나 하나님의 사자이면서, 지극히 가난한 모자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먹고 죽겠다는데, 바로 그 음식을 먼저 먹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몰인정, 이런 몰상식이 어디 있습니까 먼저 대접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만일에 요즈음에 어떤 목사가 그랬다면, 교회에서 당장 쫓겨날 판입니다. 자, 우리 생각을 조금 바꿔 보십시다. 인정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요구를 할 때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보통 사람도 아닌 하나님의 사자가 온갖 욕과 비난을 무릅쓰고 억지 요구를 할 때에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참 목자는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는 목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목자는 인정상, 이치상 아무리 사람의 말이 옳은 것 같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고 따르는 목사입니다. 예레미야 3:15에 보면,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이 점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4. 눈물겨운 결단

여인은 정말 눈물겨운 결단을 하였습니다. 에라, 이왕 죽을 텐데, 한 조각 먹고 죽나 반 조각 먹고 죽나 마찬가지지. 또, 안 먹고 죽으면 어떠랴 이왕 죽을 바에야 인심이나 한 번 쓰고 죽자. 죽는 마당에 하나님의 사자나 공궤하고 죽자. 여인은 결단만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이 과부는 지극히 가난했지만, 그러나 선행을 좋아하는, 지혜로운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4:18에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대단히 의미 있는 선행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 엘리야를 대접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5. 엘리야를 대접한 과부가 받은 복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하였더니, 자신은 물론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엘리야도 엘리야지만, 보다 더 가난한 과부의 가정을 복 주시기 위해 역사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엘리야를 지극히 가난한 과부에게 보내신 것은 먹여 살리실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비와 지혜와 믿음을 가진 그 과부를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한 마지막 시험은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대접 여부였습니다.

6. 맺음말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서 은혜와 복을 뚝 떨어뜨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유용한 것을 통해서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없어져 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고, 남은 것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풍조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자비와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사자들을 공궤하여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며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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