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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열심 (행 0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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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도 벌써 후반부에 들어섰습니다. 어제는 새해 달력을 주문하라는 카다록이 왔습니다. 그것을 넘겨 보면서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또 지난 주간에 어떤 정기 간행물에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우리교회와 저의 목회를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쯤, 지난 8개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 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무엇을 했느냐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고 투자 하므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더욱 받고, 또 하나님이 더 큰 일을 맡기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들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더 큰일,즉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전돕니다.
이것을 빼놓고는 다른 것을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모든 일들이 전도를 위해서 있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고,교회를 세우고, 아름답게 교회를 꾸미는 모든 일들이 복음을 널리 더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전도를 강조하면 가끔씩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자꾸 전도를 하라고 하느냐왜 자꾸 교회를 세우려고 하느냐 교회가 1000명을 넘으면 누가누군지 알지를 못하는데 왜 자꾸 전도전도 하느냐 이렇게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비판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는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 보러 왔다 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간단히 살펴 보면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전도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 소극적인 태도, 무관심한 태도는 하나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도무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안일한 태도나 비판적인 태도는 구름처럼 흩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에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입니까 본문 행8:39절에 빌립과 내시가 물에서 올라 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갈새, 내시가 다시는 빌립을 보지 못했습니다. 흔연히 돌아 가니라.
흔연히 돌아 가니라.-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돌아 갔다는 이야깁니다. 기쁨이 충만하여 돌아 간다는 이야깁니다.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고 돌아갑니다만 마음에 기쁨이 전혀 없었어요. 그 마음은 어둡고 무거웠습니다마는 빌립을 통해 그가 예수를 모시고 세례를 받자마자 그 마음 속에 샘이 터졌습니다. 기쁨이 터졌습니다. 그 무더운 사막 길을 그는 기쁨이 충만해서 돌아 갈수 있었고,그를 전도한 빌립 역시 놀라운 기쁨을 가지고 가이사랴까지 전도여행을 계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을 쓰고,교회가 투자를 하면서 한국에 예수 안 믿는 사람 하나가 남을 때까지 우리가 전도하는 이 일을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전세계에 하나님을 모르는 부족이 한부족이라도 남아 있는 이상,전세계는 전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가장 열심을 내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럴때에 하나님이 기쁨을 줍니다.
교회에 기쁨을 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싹 물리치게 합니다. 아무리 근심과 걱정이 우리의 마음을 짖누르고 내 육체에 약한 부분 때문에 우리가 매일매일 사는 것이 신음으로 시작하고 신음으로 끝내는 때가 많습니다마는 그러나 나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형제를 구원하실려고 하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축복에 참여만 하면,우리 마음 속에는 병을 이길려고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모든 역경과 고통을 이길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이 내시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이었는가를 한 서너가지로 갈라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첫째는 멀리 지나가는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민한 관심에 대해서 좀 보십시다.

우리가 지도를 펴놓고 보면 이디오피아 내시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가하면 예루살렘에서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사라고 하는 옛날 불레셋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그 가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집트를 거쳐 이디오피아로 가게 됩니다. 한 1000KM정도의 거리라고 합니다.
지금 그 광야길을 걸어 내려 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아니,마차를 타고 가고 있는 한영혼입니다.
이 때 빌립은 지금 어디 있었느냐하면 사마리아 지역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어느 동네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북쪽 지역에 있어요. 빌립이 내시를 만나려고 하면 100리 이상을 쫒아가야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춘천쯤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시는 그저 잠간 지나가는 한 나그넵니다. 빌립에게는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사람이요, 어느 사람에게도 관심을 끌수 없는 광야 길을 지금 외롭게 마차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 흑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집요하게 관심을 표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내시를 사랑하십니다.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를 자녀로 삼고 싶어하시는 뜨거운 과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를 놓치지를 않습니다.
에디오피아-얼굴이 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정말 검습니다. 성경에서는 구스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죄와 관계된 말을 할 때마다 구스인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새까만 숯덩이와 같은 죄를 이야기 할 때, 구스인처럼 검은 죄라고, 말을 합니다. 예레미야 13:23절 같은 데는 너 에디오피아 사람들이 자기 피부를 자기 힘으로 희게 할 수 있느냐 만약에 희게 할수 있다면, 너희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에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힘으로 피부를 희게 못하는 것과 같이 어떤 죄인도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없느니라. 이렇게 죄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지목이 될 정도의 사람이니,뭐 대단합니까
그가 지금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하고 돌아갑니다만,그가 어떻게 해서 유대교에 개종을 했는지는 알수가 없어요. 아뭏든 1년에 한번 정도는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를 하고 내려 갑니다마는 예루살렘에 와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든지,VIP room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대단한 권세를 가진 잡니다마는 성전에 와서는 이류 삼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이방인은 성전에 가면 문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문 밖의 광장에서 기다리고 예배해야 합니다. 더구나 그는 내십니다. 내시가 무엇인지 여러분 잘 아시지요. 환관입니다. 육체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율법상 성전 안으로 못들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내시를 보세요! 이방인에다가, 몸까지 불구자이니 성전에 가봐야 저 뒷전에서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기웃거릴수 밖에 없는 삼류 예배자죠. 그러니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잖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사람이 없는 빈들판을 가고 있는데 무슨 그게 대단한 인간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향해서 집요한 관심을 표현합니다.
천사를 동원합니다.
빌립을 부릅니다. 빌립에게 빨리 찾아 가도록 합니다.
오! 우리 하나님,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까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입니다.
온 우주가 그의 것이요. 우주의 공간도 그의 광대하고 위대하신 존재를 포용할 수 없을 만큼, 그는 엄청나게 크고 존귀하신 분이지시만, 먼지보다도 적은 한 개인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표현 할 수 있는 전능함을 가지신 분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예수 믿고 돌아올 때를 생각해 보세요. 나같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만큼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누구누구를 통해서 그렇게 권면해 주시고,기도하게 하시고,때로는 강권해서 구원해 주셨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무엇인데....,
하나님의 이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절대, 전도에 대해서 무관심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에디오피아는 너무나 비극적입니다. T.V를 통해서 잠간 보았습니다만, 너무 비참해요. 명색이 약 80%가 기독교의 콥트파가 지배하는 나랍니다마는 군부의 독재, 전쟁,한발 이런 것들로 인해서 하루에 몇만 명씩 쓰러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우리 눈에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무관심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멀리 지나가는 손님에 대해서,나그네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분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예수님이 한국의 화려한 예배당에 먼저 찾아 오실까 에디오피아나,소말리아,동남아시아의 난민촌에서 굶주려 죽어 가는 그 자리에 가서 계실까 저는 생각하기를 분명히 예수님은 저 불쌍한 사람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로 우리 주님은 달려 가시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99마리 양보다 길잃은 어린양 한마리를 찾으러 나서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 교회를 지나가는 허름한 나그네, 여러분의 마당을 밟고 지나가는 피곤에 지친 사람들을 우리는 무심히 지나쳐 버리지만 하나님은 무관심하게 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에 나같은 것이 구원 받았고, 여러분이 구원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심정에 우리의 마음이 합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 관심에 일치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교횝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의 자녑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내시는 1년에 한번 예루살렘에 올까말까 한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하루내지 이틀이면 전도자가 미칠수 있는 거리에서 벗어 납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핍박이 나자말자 사방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흩어져 가지고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으로 다니면서 전도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예루살렘 외곽 지역을 돌고 있었지, 지금 에디오피아 내시가 지나가고 있는 가사 지역이라든지 저 남방까지 전도자가 내려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 아프리카의 버림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전도자가 미칠 수 있는 거리에서 벗어나기 전에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관심인 이상, 기회를 놓치지 않을려고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내시에게는 여건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은 유대교는 구원이 떠난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시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구원 할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내시는 예배를 드리고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에 마음이 좀 푸근하지 않겠어요! 또 성경을 산것 같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고가(高價)를 주고 구한 것같습니다. 어떤 사람을 말하기를 돌아 가면서 성경을 읽을려고 일부러 광야길을 택한 것 같다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를 갑자기 보내서, 멀리 있는 빌립을 재촉하여 보내므로, 찬스를 잘 이용해서 그 여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만드신 것을 여러분이 한번 보세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신데도, 기회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되는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하나님이 언제 개입하셔서 강권적으로 예수 믿게 하시면 될 것 아니냐 우리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초능력적인 이적만 가지고 행하시는 그런 무분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호기심이나 맞추어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자연질서를 잘 이용합니다.
인간의 심리를 100% 이용합니다.
사람의 방법과 기교를 최대한 이용할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회라는 것 하나님이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 전체를 보고 계셨습니다.
전도자들이 어디쯤 가 있느냐. 전부 보셨습니다.
그리고 내시와 제일 빨리 접촉할수 있는 전도자가 어디에 있는 사람이냐
또 수천명의 전도자 가운데서도 내시에게 보낼 가장 적절한 전도자가 누구냐
하나님이 보시지 않았겠어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빌립을 택한 것입니다. 그가 내시에게 갈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지 아니면 그가 거리상으로는 멀었지만, 적절한 사람이어서 불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이 급하게 그 찬스를 살리기 위해서 부르신 것 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믿고 돌아올 때에 내가 예수 믿도록 하나님이 찬스를 어떻게 이용하셨는가를 우리 각자 한번 돌이켜 보면 은혜스러운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동안 반드시 기회라는 것이 옵니다.
예상 밖의 어떤 큰 사고나 재난을 만나서 위기를 당할 때가 하나님이 찾는 기횝니다.
우연히 종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무엇인가 묻고 싶고 알고 싶어 할 때가 좋은 기횝니다.
이사를 해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서 권면을 받는 것도 참 좋은 기횝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병이 들어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때가 예수를 믿는 유일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업을 실패 하든지,일이 잘 안되는 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좋은 부인을 만난 것이 기회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에요.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우리에게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자신이 기회에 예민하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기회를 잘 이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 이해 하셔야 합니다.

답답하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전도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린다든지,
전도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한다든지,
전도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얼마나 등한히 하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스스로 자칭하면서도 내 가족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가 어떻게 하면 예수를 믿을 수 있을런지 기회를 잡기 위해서 마치 낙시대를 던져 놓은 사람이 고기가 무는 순간을 예민하게 지키듯이 그 기회 포착을 위해서 기다리는 노력을 우리가 얼마나 등한 히 하는지! 그래서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마지막에는 그 영혼까지를 놓쳐 버리는, 안타까워 몸부림칠 수 밖에 없는 실패를 우리가 얼마나 자주자주 체험하는지!
산돌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마리아 교회와 지역사회의 복음화 보다도 에디오피아의 내시 한사람의 영혼을 중요시 하신 하나님의 불타는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빌립을 부르고 계실 때 쯤에, 사마리아에는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빌립 한 사람을 통해서 온 동네가 발칶 뒤집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술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미혹했던 시몬이라는 사람까지 형식적이나마 회개하고 예수 믿고,세례 받고 빌립의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 깊은 관심을 가지고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지금이야말로 사마리아에는 좋은 기회라고 할수 있고,
빌립니야말로 전도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빠져 있는 시점이라로도 할수 있으며,
사마리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빌립은 없어서는 안되는 지도자로 알고 붙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저 광야길을 가고 있는 한 사람을 위해서 빌립을 빼돌리는 것을 한번 보세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거야 당연하지.에디오피아의 재무부 장관하나쯤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그 나라가 온통 복음화 될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런 잠재력을 보고 하신 일이 아니냐
그러나 제가 증거를 하나 제시하지요. 전설에 의하면 이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여왕에게 전도해서 여왕이 세례를 받을 때에 그 사람이 세례를 주었다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근거가 없는 전설일 뿐이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나라가 에디오피압니다. 이집트보다 더 오래 된 나랍니다. 만약에 그 때의 내시가 가서 여왕을 회개시키고 그 나라에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서 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돌아 왔다면 반드시 역사적인 기록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역사의 기록은 전혀 없고,
에디오피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동방정교회에 소속한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처음 들어간 것이 내시가 살던 시대로 부터 300년 후입니다. 그렇다면 내시의 영향이 그렇게 크게 에디오피아에 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계산적인 생각을 가지고 내시 한사람을 귀하게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우리가 잘못 읽는 것입니다.

해답은 이렇습니다.
이미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보다도 저 광야길을 가고 있는 저 잃은 양 한마리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 영혼이 중요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보다도,
그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 보다도, 그 사람의 영혼 하나가 중요했습니다. 그 영혼을 하나님이 아끼셨습니다. 그 영혼이 멸망 받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셨습니다.그 영혼이 죄 때문에 죽는 것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을 빼돌려서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이 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한 영혼을 향해서 이렇게 불타는데, 우리는 얼마나 사람을 골라 잡아 가면서 전도 할려고 노력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잠재력이나,그 사람의 신분을 따져가면서 전도할려고 합니까

산돌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교회가 될려면,
이 하나님의 불타는 마음!
한영혼을 향해서 불타는 마음!
그 한 영혼을 위해서는 자기 아들도 희생 시킬수 있고,
그 한 영혼을 위해서는 사마리아 전부도 희생시킬 수 있으며,
그 한 영혼을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는 한 교회의 부흥까지도 포기할수 있을 만큼 오늘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가 절대로 전도에 무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산돌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20세기의 빌립이 되어 한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광야로 뛰어들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떠돌며, 스쳐 지나가는 한 영혼까지를 놓치지 않고 구원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런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빌립은 세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합니다.

1.그는 성령에게 민감했습니다.

성령이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았습니다.
오늘 산돌교회에 성령이 거하시지 않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성령이 보이지 않게 임재하셔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주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성령에 민감한 사람, 얼마나 중요합니까 빌립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께서 사마리아를 떠나서 저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에게 전달 할 때에 그는 거기에 분명히 순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 근본적으로 성령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내 욕심대로,내 계획대로 인생을 사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오늘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잠간 이나마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성령이 내 마음 속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여러분 들을 줄 압니까
야, 너 오늘 직장에 가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겠구나. 네가 웃는 모습, 너의 표정, 너의 말씨 하나하나, 심지어 네가 다루는 사건 하나하나 전부가 나를 나타내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네가 전도할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너는 준비하고 있어라.
24시간 너희 활동 하나하나를 통해서 내가 영광 받기를 원하면,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한다.
너, 이것을 알고 오늘 하루를 바로 출발하라.
여러분, 성령께서 내 마음에서 말씀하시는 것 들을 줄 압니까
너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에 바쁘겠구나, 청소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자녀 때문에 여러가지 왔다갔다 해야겠구나. 그러나 너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기를 원하느니라. 네가 만날 사람이 누구누군지 마음에 두고 기도하라. 네가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라. 사랑을 베풀고 사랑으로 봉사하라.
여러분,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 들을줄 압니까
예민해야 해요!

산돌교회를 사직동에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100번 질문해 보세요!
성경을 펴 놓고 1000번 질문해 보세요! 대답은 하납니다. 궁극적인 대답은 하나에요.
하나님이 산돌교회를 통해서 이 지역을 복음화 시키며, 산돌교회를 통해서 청주와 멀리 에디오피아와 저 세계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데 이 교회를 사용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이와같은 성령의 요구에 우리는 민감해야 합니다.

2.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사마리아를 두고 어디를 갑니까 지금 사마리아에 야단이 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막 돌아와서 성경도 가르쳐야 되고, 아직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 올려고 준비 중에 있는데, 내가 지금 이 지역을 어떻게 떠납니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유가 있는 말입니다마는 아니요!
하나님 앞에 명령을 받자말자, 두말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찬스를 우리 산돌교회에 주시고,또 하나님이 개개인에게 전도할 수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종해야지요.
머뭇머뭇 한다든지. 주저주저 한다든지. 그저 이 핑계 저 핑계 한다든지 벌써 성령과 거리가 먼 삶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여러분이 아무리 새벽기도를 많이 하시고,아무리 성경을 하루에 몇십장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벌써 마음 속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이미 거리가 떨어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가지고 되겠어요.

3. 빌립은 복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
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가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만, 동서남북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의미를 전혀 몰라요. 그 때 빌립이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받자말자 , 그 말씀을 바로 해석해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 내시를 구원 받게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예수님의 열두제자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세요.
빌립은 집삽니다. 평신돕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 믿은지 불과 1년 밖에 안되는 초신잡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정통했는지 누가 관심이 있어서, 예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물었을 때, 두말 안하고 이야기 할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빌립을 사용하시지요.
하나님은 준비 되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준비 되어 있는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준비 되어 있는 국가를 사용하십니다.

산돌교회가 정말 하나님에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에 예민 합시다.
무조건 순종합시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순종합시다.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 그리스도를 똑바로 증거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이 복음으로 준비합시다.
이것이 산돌교회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요, 이렇게만 되어 있다면,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실지 아직은 모르지만, 절대로 희미하게 사용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 20세기 빌립을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데,오늘 찾고 계시는데,
20세기의 빌립이 누가 되어야 하느냐
산돌교회가 되어야 하고,
황목사가 되어야 하고,
성도들 하나하나가 되어야 하고,
앞으로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20세기 하나님의 요구에 응할수 있는 빌립이 되어야 하겠다.

이와같은 빌립이 우리 청주시의 모든 직장에 흩어질 때,
이와같은 빌립이 가정마다 흩어질 때,
아파트 단지단지마다 주택가마다 흩어질 때,
거기에 내시가 체험한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큰 기쁨이 일어나고,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거기에 우리에게 임할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 옵니다.

누가 오늘 20세기의 빌립이 되시렵니까

제 마음이 몹시 아픈 것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효과적인 전도프로그램을 아직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 산돌교회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뛰어 다니실까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 오시면,
건물도 안 보실 것이고,
전세냐,삯을 세냐 보지도 않으실 것이고,
이 사람들의 직업이 무엇이냐를 따지시지도 않을 것 같고,
그들의 생활 수준을 보시지도 않으실 것이고,
오직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의 영혼 하나하나에 가 있을텐데....
나도 이 하나님의 마음, 이 하나님의 태도, 이 하나님의 관심에서 거리가 먼 것 같다! 하는 아픔이 저에게 있어요.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 자신이 참 마음에 눈물이 있어요.

지난 10여년 동안 카나다에서 가장 위대한 목사로 부각된,소위 캐나다의 빌리그래함이라고 불리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대비드 메인스라는 목사님입니다. 헌틀리 100번지라는 T.V프로를 가지고 캐나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심지어 일본에 까지도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주 방력있는 전도잡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분에 대해서 연구를 해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세요.

그는 처음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카나다 북부 외딴 곳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교회를 맡아 갔습니다. 주일날 저녁입니다. 눈보라가 쏟아지는데 사람들이 문 밖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케나다 북부지역이면 알래스카와 가까운 한대지방이기 때문에 눈보라가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이 데이비 목사는 교회에 가서 문을 열어 놓고, 교인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는 대단히 고집이 센 목회잡니다. 절대로 절대로 영적인 면에서는 뒤로 물러가지 않을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기다렸습니다.
반백이나 된 한 남자가 교회 앞을 지나가다가 집에까지 무사히 가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교회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한사람이 들어 온 거에요.
그러자 목사님은 너무나 기뻐가지고, 앞자리에 앉혀 놓고는 강단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 오늘 저녁이 주일 저녁이니까 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이 오셨으니까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묵도를 시작으로 해서,순서대로 진행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눈을 피해서 잠시 들어 온 사람이니, 찬송가를 부를 줄 알아야지. 그러나 목사님은 한 영혼이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기뻐 가지고,막 기타까지 가지고 강단 위로 올라가서 찬송을 힘차게 합니다. 나중에는 너무 기뻐서 트럼펫까지 가지고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펴 놓고는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한다음에, 결단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여러분,예수 믿기를 원하시는 분 있습니까 이 시간 회개하고 주님 믿기를 원하시는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용히 나와 주십시요.
누가 있나, 그 사람 혼자 밖에 없는데.
아, 그런데 이 사람이 걸어 나와요.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이 젊은 목사가 뛰어 내려가서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데,하나님이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그 시간에 부어 주셨어요.
그가 지금까지 회상 하기를 나의 생애에 가장 행복한 순간, 휘튼이라고 하는 한남자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눈보라치는 북부의 한 조그만한 교회당 안에서 기도하던 그 순간, 회개하던 그 순간이었다.

하나님이 한 영혼에 대해서 이렇게 불타는 심정을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걸고 뛰어 드는 사람을 사용하신다고요.
이 사람이 T.V 방송을 시작하기 6년 전에 토론토에 있는 가장 번화가요, 제일 더러운 거리라고 할수 있는-한국으로 말하면 명동이라고 할수 있겠지요-음란하고, 타락한 모습들을 보면서,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걸었다고 합니다.
그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불쌍해서 가슴에서 울음 솟구쳐 나와서 견딜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의 말이 나는 울음을 그칠려고 노력을 했는데,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울면서 걸어 갔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무엇이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울음을 중단 할 수 없었다.

이런 불타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같은 사람은 너무나 가슴이 냉냉하고, 차가워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아니할 수가 없고,
산돌교회가 아직도 이런 냉담함을 가지고 믿지 아니하는 남편을 쳐다 본다든지, 저 길거리에 술 퍼먹고 비틀 거리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쳐다 보고 있다면 이것은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이요,
이 교회를 보고, 하나님이 실망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사막을 가고 있는 내시 하나를 구원 하기 위해서 뛰어 들던 빌립과 같이 오늘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을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열심을 가질수 있도록,
하나님의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형제 하나하나를 바라 볼수 있도록,
주님 앞에 좀 기도하고,
좀 변화 받고,
좀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제도로 못고칩니다.
대통령 한사람이 이 나라의 밑바닥부터 고칠 수가 없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이 나라가 밑바닥부터 깨끗해 지지 않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대한민국의 믿지 아니하는 75%의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불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 이 심정,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한 교회, 일치한 우리들 되도록 우리 한목소리로 기도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179장 찬송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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