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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받은 사람들 (골 0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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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사상은 구약과 신약 전편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일관된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첫째:왜 선택하셨는가
1) 수가 작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그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효가 적다는 것은 숫자가 적다는 뜻도 있고 약소민족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모든것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재래식 폭탄은 큽니다만 핵폭탄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위력은 작은 것이 더 큽니다. 반도체의 경우도 작을수록 그 가치와 효용성이 높아집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들을 선택하십니다. 큰 사람은 오만합니다. 큰 나라도 오만합니다. 그러나 작은 자들은 자기 실체를 알기 때문에 오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폐품들을 모아 짜맞추는 예술행위가 있습니다. 일명 전위예술이라고도 합니다만 쓸모없이 버려진 것들을 모아 하나의 조각작품을 만드는 것을 어셈블리지(Assemblage)라고 부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기저기 쓸모없이 버려진 폐품조각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주워모아 쓸모있는 작품을 만드시고 거기다가 존재의 의미까지 부여해 주신 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 가운데 [황소의 머리]라는 조각작품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전거의 손잡이와 자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만일 무명의 작가가 자전거 손잡이와 좌석을 모아놓고 [황소머리]라는 작품명을 부쳤다면 놀림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작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선택하셨다는 것은 선택받은 우리에겐 감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 가운데 의미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땅과 바다와 거기있는 모든 생명체들, 풀 한포기에서 하루살이까지 필요없는 것은 없습니다. 인체에 돋아난 솜털까지도 필요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호주 어느 목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독수리가 양떼를 채가는 바람에 목장주가 화가나서 산탄총을 쏘아 독수리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후로는 양떼들이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 봤더니 독수리가 채간 양은 거의가 다 병든 양들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쓸모없는 폐품같은 나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악기는 다 제 소리가 있습니다. 관악기는 관을 통해 소리를 내고, 현악기는 현을 통해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타악기는 두드려서 소리를 냅니다. 모든 악기는 크기와 생김을 따라 소리가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화음이 이룰 때 음악예술의 극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악기입니다. 각각 제 소리를 내면 됩니다. 큰 소리도 있고 작은 소리도 있습니다. 높은 소리도 있고 낮은 소리도 있습니다. 강한 소리도 있고 약한 소리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필요한 소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하루 아침에 김 일성 찬가를 김 정일 찬가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찬송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찬송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3)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

물론 이 사랑은 일발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일시적인 만남은 사랑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 만남의 시간이 길수록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차 한잔을 나누는데는 사랑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되려한다든지 부부가 되어 일생을 함께 살기로 한다면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

사랑은 늘 함께 가까이 있고 싶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늘 가까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하나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기도도, 찬송도, 감사도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4)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결정적 이유는 구원입니다. 죄에서 건져내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버려진 폐품같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모 일간지에 실렸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로스앤젤스에 [리언 그레이브스]라는 흑인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81년 어느 날 그 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옆방에서 사흘간이나 아기 우는 소리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고아원에 보낼 생각을 했으나 그 아기가 천사처럼 보여 기르기로 작정하고 지금까지 키웠는데 그 아이가 금년 13살난 [정로이]군 이라는 기사였습니다. 흑인노인 [그레이브스]씨가 아니었더라면 그 아이는 울다가 질식해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죄에서 건져내지 않으셨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미 내 영혼은 죄에 눌려 죽었을 것이고 천하의 개망나니로 살다가 제명에 살지도 못한 채 지옥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 은혜입니까 웬 사랑입니까 웬 축복입니까 왜 이토록 날 사랑하셨습니까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갈보리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예수님 갈보리 가야했네. 왜 날 사랑하나” 아멘.

둘째로:택함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선택하신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선택하신 후 아브라함의 후손을 그곳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나안은 지금의 성지 이스라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의 대장정 끝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 역시 모압땅으로 이민 갔다가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은 그 전통 그대로 성지를 지키며 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주 넓은 땅을 다 빼앗긴 것처럼 저들도 넓은 땅 다 빼앗기고 지금은 비록 강원도 크기의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 민족 가운데 자기네 땅을 성지(Holy Land)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유대인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경우는 어느 곳이 택한 곳입니까

첫째는, 주님의 품입니다.

그 곳을 떠나면 안됩니다. 시인은 “내가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하리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주님의 품은 나의 영원한 처소이며 성지입니다. 주님의 품 밖으로 벗어나면 죽게 됩니다.

둘째는, 교회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버리고 등지고 외면하면 안됩니다. 구약의 성전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유대민족이 성전중심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간혹 교회가 병들었다느니 썩었다느니 라며 공격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교회자체가 병든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모인 사람이 병든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교회가 병들었다 손치더라도 버리면 안됩니다. 병원만큼 병자가 많고 병균이 많은 곳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병원을 외면한다면 병을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성문교회 교인은 이 성문교회가 하나님의 택해주신 성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문교회 교인들은 다음 몇 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첫째, 성문교회는 주님이 계신다.
둘째, 성문교회가 제일이다.
셋째, 성문교회가 내 교회다.
넷째, 성문교회를 끝까지 섬긴다.

2) 택하신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법을 지키고 살아야 했습니다만 오늘 우리에게는 사랑의 법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택한 백성은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법을 민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잘잘못을 가리고 결정하는 법을 형법이라고 합니다.
입법부인 국회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그 법을 진행합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택하신 자들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우린 이 구절 속에서 택함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부관계를 예로 들겠습니다. 부부는 일종의 계약관계입니다만 계약조건을 따지면 살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법 아래 있으면 문제될게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참으로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율법은 정죄가 있습니다만 사랑은 정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강조한 것입니다.

3) 택하신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과 북 경계선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군이나 북군을 다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가열되자 그는 고민 끝에 바지는 남군이 입는 것을 입고, 저고리는 북군의 것을 입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군이나 북군이 자기를 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 날 그는 밖에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북군은 그의 남군바지를 향해 총을 쏘아대고 남군은 그의 북군 저고리를 향해 총을 쏘아 대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합니다.
저는 그것을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화목하고 위해주고 도우며 삽시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주님 앞에 서는 시간까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해야 합니다.
세째는, 교회를 받드는 일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몸을 받드는 것은 주님을 받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택한 곳에서 살고 택한 법을 지키고 택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택한 곳에서 살고 택한 법을 지키고 택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 가장 멋지고 복된 사람들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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