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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느부갓네살왕의 하나님 (단 0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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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느부갓네살왕의 두번째 꿈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꿈은 첫번째 꿈과는 달리 느부갓네살 왕 개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실 뿐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도 친히 역사하시고 간섭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Ⅰ. 느부갓네살왕의 꿈 (1-18)

느부갓네살왕이 3장에서 금신상 낙성예식을 거행한 것은 B.C.585년이고 4장에서 조서를 발표한 것은 B.C.562년입니다. 그러므로 3장과 4장 사이에는 23년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본문은 1-3절은 느부갓네살왕이 회심한 후 조서를 발표하는 내용이고, 4-36절은 느부갓네살이 과거 자신에게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는 신앙간증이며, 37절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느부갓네살왕의 조서(1-3)

1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의 조서의 내용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대 바벨론 제국의 왕인 자기보다 훨씬 높으신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조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권병,dominion)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조서 내용을 볼때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정확히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여년전 내린 조서에서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한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3:28-30) 그러나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유일한 하나님이요 자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바벨론 왕국을 포함하여 세상나라는 결국 망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고 그 통치도 영원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상 숭배자요 교만하고 포악한 이방 나라의 절대 군주가 변화되어 신앙 간증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간증대로 하나님의 큰 이적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왕의 생애에 친히 간섭하셔서 교만으로 쓸모없이 되어 버린 그를 낮추시므로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세계선교를 위한 역사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4절부터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 어떻게 간섭하시고 큰 역사를 행하셨는지를 간증하는 내용입니다.

둘째, 느부갓네살왕의 두번째 꿈(4-18)

느부갓네살왕은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간증하기 시작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이 말씀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왕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줍니다. 이때는 애굽과 동맹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고 대제국을 형성한 때였습니다. 그는 정복 전쟁을 마치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부가 그의 창고에 쌓여갔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정복전쟁을 할 필요도 없었으며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마음껏 즐기며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와같이 고생하지 않고 편안히 평강을 즐기며 살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당장 그런 생활을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을 희망하며 고생을 참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안일은 부패의 온상이 됩니다. 영적 소원을 잃어 버리고 안일하게 되면 자연히 정욕의 노예가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앞에서 겸손하였으며, 인간 장갑차인 골리앗을 물리칠 만큼 용맹스럽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사랑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기뻐하시고 그를 양치는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통일 이스라엘을 이룩하셨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다윗은 신복들을 다 전쟁터에 내 보내고 그는 늦게까지 침상에 누워 잠을 즐기며 안일한 삶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때 그는 정욕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이 죄를 은폐하고자 우리아를 맹렬한 전쟁터에 내 보내어 죽게했습니다. 안일한 삶은 그때 그때는 좋은 것같지만 내면을 부패시키므로 각종 악의 온상이 됩니다. 이뿐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 내면이 자만심과 교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나라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가난하였던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제국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를 도구로 사용하사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셨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왕은 자신의 힘과 지혜와 열심으로 이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대신에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었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렇게 교만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그를 당장에 짤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꿈으로 간섭하셨습니다. 어느날 그가 한 꿈을 꾸고는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번민하였습니다.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바벨론 모든 박사를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꿈 내용을 설명해주며 그 해석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능히 그 해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후에 다니엘이 다시 왕 앞에 들어 왔을때 왕은 다니엘에게 꿈을 해석해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다니엘을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는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능히 해석해 줄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불신자였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영적인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기서 볼때 우리는 세상 지혜를 가진 자들이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을 당할 수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세상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자는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임을 배웁니다. 세상 지혜를 가진 자들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는 잘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은 모든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문제의식은 많이 제시하지만 해답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은 인생의 본질을 알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같이 영적 지혜를 가진 자들을 통해서 구속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10-17절까지는 왕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그의 꿈은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 1부는 한마디로 영광스런 꿈이었습니다. 왕이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였습니다. 그 나무 그늘에는 들짐승들이 나아와 안식을 얻었고 그 가지에는 공중의 새들이 깃들었습니다. 그 나무는 중앙에 있었고 크고 높고 강하였으며 아름답고 풍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영원히 그 잎이 마르지 않고 지속될 것같았습니다. 아무도 이 나무가 망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부는 두려운 꿈이었습니다. 왕이 침상에서 뇌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에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 꿈을 통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역사의 주관자가 되셔서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원하시는 누구에게든지 주십니다. 또한 지극히 천한자, 곧 겸손한 자를 높이셔서 그 위에 세우십니다. 사람이 고난의 때, 어려움이 있을 때는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뢰하지만 축복을 많이 받고 부하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됩니다. 과거에 자기가 얼마나 천하고 비참한 자인가를 잊어 버리게 되고 이런자를 높이 세우시고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찌기 느부갓네살왕에게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교만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교만하고 배은망덕한 자는 절대 주권가운데 짤라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그를 포기치 않으시고 다시 한번 그에게 꿈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아무도 멸망받기를 원치 않으시고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Ⅱ. 꿈을 해석하는 다니엘(19-27)

왕의 꿈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은 얼마동안 놀라 벙벙하여 마음이 번민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큰 권세와 부귀 영화를 가진 왕이라도 하나님께서 하루 아침에 폐하시는 것을 볼때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자 할때 마음이 번민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놀라고 번민하는 것을 본 왕은 다니엘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도록 재촉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충심으로 말했습니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원수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그는 왕에게 진실되게 꿈 해석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번째 꿈은 세계역사에 관한 것이었으나 두번째 꿈은 왕 개인의 심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해석에 의하면 나무는 곧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왕의 권세는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여 하늘에 닿고 땅끝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와 그 영광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 잎사귀가 아름답고 풍성한 것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영광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는 건축 애호가로서 바벨론 제국의 곳곳에 대 신전들을 세웠습니다. 그 중에는 8층으로 된 거대한 벨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또 유명한 공중정원(hanging garden)이 있었는데 이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질 만큼 신비스런 것이었습니다. 또한 백개의 문이 있는 높은 성벽 위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그 위에서 회전을 할 만큼 넓었습니다. 또한 높이 약 100m가 되는 성전 타워가 있었고 수톤에 달하는 금 신상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당시 왕의 권세와 그 영광이 어떠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권세와 영광은 너무나 엄청나서 아무도 도전할 수 없고 영원할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하늘에서 내려온 한 순찰자로 인하여 순식간에 베임을 당하고 맙니다.

한 순찰자는 깨어 있어서 파수하는 자, 곧 천사를 말합니다. 나무를 베도록 명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아무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찰자를 보내어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옷깃을 여미고 살아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감찰하고 계심을 증거해 줍니다. 역대하 16:9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또한 시 138:6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루 일과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중심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등 우리의 모든 삶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느부갓네살 왕을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자신의 허세를 부리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위에서 내려다 보시다가 한 순찰자를 보내사 심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왕에게 임한 심판은 왕으로서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박탈당하고 사람에게서 쫓겨나 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를 7년동안 하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하여 느부갓네살 왕은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7년동안 그를 철저히 낮추심으로 겸손케 하시고 영적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 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를 뿌리채 뽑아 버리지 않으시고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습니다. 이는 그를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를 낮추시고 회개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에게 꿈을 해석해 주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이 말씀은 느부갓네살왕이 공의롭지 못하고 긍휼이 없는 포악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그는 그의 왕국과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악한 일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여 무자비하게 죽이고 파괴하였습니다. 또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와서 제국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했습니다. 그러다가 필요없게되면 그 수에 관계없이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실때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불의와 무자비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죄악을 속하소서’라는 말씀은 속전의 의미가 아니라 “죄들을 벗어버리라. 죄들을 깨뜨리라. 죄들을 포기하라”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공의와 긍휼을 베풀므로 의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이처럼 담대하게 왕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분명한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잔인하고 포악한 왕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줄여서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편에 서서 심판을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에게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용기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편에 서서 분명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임한 심판은 그의 죄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이 왕에게 그가 죄를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조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 할찌라도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주시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심을 잘 알았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느부갓네살왕의 문제는 범죄했다는 그 자체보다 회개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진실되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그를 계속해서 높이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왕에게 회개하라고 조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또한 왕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왕의 관계는 신하와 왕의 관계 이전에 목자와 양의 관계였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왕에 대한 목자의 심정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메세지를 간절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이 메시지는 왕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무례한 말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구원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Ⅲ. 느부갓네살왕을 훈련하시는 하나님(28-37)

왕은 다니엘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또 동시에 그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교만해졌습니다. 그의 교만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열 두달이 지난 어느날 왕이 바벨론 궁 지붕에서 바벨론 성를 내려다 보며 자신이 이룬 업적으로 인해 자만심에 빠져 독백을 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여기서 주어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입니다. “내가, 나의 도성, 내 위엄의 영광”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는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일이 이루어지면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자기자랑’과 ‘자기불의’로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섬기는 것같지만 실상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일을 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기에 용감합니다. 무슨 문제를 만나더라도 하나님편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유익을 돌리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최경룡 목자님은 군의관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이때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빨리 마치고 선교사로 나아가도록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하고 인생방향을 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분이 기본적으로 겸손한 내면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것으로 인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만심에 빠졌을때 하나님은 그를 여지없이 낮추셨습니다. 왕의 교만한 말이 그 입에 있을때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그리고 왕은 백성들로부터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의 몸은 하늘 이슬에 젖고 그의 머리 털은 독수리 털과 같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 이상의 무엇이 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짐승보다 더 못하게 낮추셨습니다. 왕은 심한 정신 질환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성을 앗아가시고 짐승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훈련에 걸리자 그는 짐승과 같이 되어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었습니다. 인간의 죄의 뿌리는 바로 교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자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고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버렸을때 인간의 고귀함을 상실하고 짐승보다 못한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무제한적 육신의 자유를 갈망하여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몰아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후 7년이 지났습니다. 이때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하나님께 절실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겸손하게 되었을때 그의 훈련은 끝나고 그의 이성이 회복되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왕권도 회복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겸손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음을 심령에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자가 없도다” 왕이 회개했을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의 정신병은 치료되고 왕으로서의 그의 지위와 명예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이전보다 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날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한 후 최후로 말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말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느부갓네살왕은 하나님의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느부갓네살왕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자기가 세운 나라를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왕보다 더 높은 곳에 계셔서 세상역사를 그 뜻대로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역사를 주관하실 뿐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사화복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로,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느부갓네살왕이 겸손 훈련을 받고 배운 바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범사에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자하는 자는 인간 조건, 남녀 노소 할것없이 누구든지 낮추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높이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는 투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할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세상만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같이 배은 망덕하고 포악한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하나님은 세상만민 누구나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이 하나님으로부터 훈련을 받고 영적인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찬양하며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은혜를 반포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하나님은 지금도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셔서 당신의 영광을 온 땅에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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