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만군의 여호와 (학 02:10-23)

첨부 1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어다’ 라는 말은 학개 1장 5,7절에 나오는 말로서 본문에는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너희는 그때를 추억해 보라는 말씀과 같은 뜻으로 은혜를 기다리려고 합니다.

1.이상한 원리

하나님과 인간 혹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두 가지의 이상한 점이 나타납니다.
1).거룩함은 전달되지 않는다.

(학2:12)“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에게 저절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거룩하다고 자식이 거룩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제사장들에게 묻는 것이 본문의 12절입니다.
이에 제사장들은 거룩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만졌다고 해서 그 물건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2).악은 전달됩니다.

(학2:13)“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거룩은 전달이 안되는 반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악은 그 결과가 후손 만대에 펴져 나갑니다.
시체는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시체, 즉 부정한 것을 만진 사람이 다른 것을 만지면 그것은 부정해집니다.
부정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을 때 그 죄가 온 백성 중에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저주 아래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패하게 되면 우리의 자손이 타락하게 되고 모든 일들이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원함에 이르는 길은 개인의 문제로서 개개 인이 구원을 받아야 되며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2.오늘부터

(학2:15)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15절 초두의 ‘오늘부터’ 라는 말은 15절뿐만 아니라 18절과 19절에도 나옵니다.
축복이냐 저주냐가 판가름나는 기점으로 긴박감을 줍니다.
지금부터 너희는 복을 받겠느냐 하는 매우 긴박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든지 현재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에 내가 무얼 했고 가 아니고 현재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는가 입니다.
이북에서 피난을 오신 분들을 보면 전부 고대광실 큰 집에 사셨고 금송아지 안 매고 사신 분 없다고 합니다.
이북에서 안 넘어오신 분들이야 모르니까 실컷 거짓말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말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지금에 와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유명한 분, 굉장히 경건한 분의 성함을 대고서는 자기가 그 분하고 국민학교 동창이었다느니 유치원 친구였다느니 같은 동네에서 살던 후배라느니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소용없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오늘부터 내가 어떠할 것인가. 지금 내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란 후회해도 소용없고 자랑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오늘부터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병이 들었으니 병이 나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병이 들어도 믿음을 가지는 하나님의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비록 늙어 기동을 못해도 의식이 있느니 누워서라도 자녀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교역자 님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됩니다.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그를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해야 됩니다.

3.마지막 예언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주시는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스룹바벨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지도자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몹시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살 길이 막연하고 절망으로 가득한 암흑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성전을 세울 것을 약속해 놓고는 주춧돌만 세우고 15년의 세월만 흘렀고 게다가 스룹바벨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일어나던 때입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 스룹바벨의 어려움이 극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1).축복과 저주

(학2:19)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주님이 오시면 축복과 저주는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복을 받는 시간이 됨과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한 자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받아들이면 축복이 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자주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오시는 날을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되지 않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웠던 일들로 인하여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이라는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2).사랑의 회복

(학2:23)“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인을 삼는다는 것은 능력의 상징이요 권위의 상징입니다.
당시에는 진흙을 이겨 놓고 그 위에다가 도장을 찍어서 표를 삼아 그것을 손가락에 끼거나 목거리로 만들어 목에 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손에 끼거나 목에 건 사람에게는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레미아 22장 24절을 보면 스룹바벨의 조부 여호야김의 인장 반지를 하나님께서 빼앗아 원수의 손에 끼워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렘22: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다시 말해서 여호야김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폐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빼앗긴 축복을 스룹바벨에게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존귀가 하나님의 종 스룹바벨에게 덧입혀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하여 스룹바벨에게 이와 같이 예언하시며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복되고 위대한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아버지, 선생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을 산아 주신다고 하시니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보호가 약속되는 시간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