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뜻이면 (약 04:13-17)

첨부 1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대부분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관심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님을 모르고 사는 자연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기적인 욕망이 지배하는 삶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을 보세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사하는 일에 이미 대단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상술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 그 당시는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신도시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상권 형성에 크게 기여 하였기 때문에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신도시를 찾아 무역의 범위를 확장시켜 나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시대적인 상황과 배경에서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부유한 상인들은 앉아서 새로운 개척자로서 신흥도시에 가서 장사를 해서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사업을 계획하며 의논하고 앞으로 얼마나 이익이 생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향하여 야고보는 “들으라”고 성령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없이 자기 욕망을 따라 뜻없는 삶을 꿈꾸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 사람들은 행선지가 분명합니다.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체류 기간이 확실합니다. “일년을 유하며”할 일이 뚜렸했습니다. “장사하여” 더구나 그 결과가 자신 있었습니다. “이를 보리라”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까 1세기의 상인들의 가치관은 철저한 물질주의였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이며 이것은 임박한 심판의 징조라고 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법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만 도취되어 영원한 삶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이러한 삶, 다시 말하면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에게는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했습니다. 잠언 27장 1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했습니다. 하루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에서는 사람들이 일년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년을 계획하면서 눈 앞의 내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성경은 게획성 있는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없는 계획은 미래가 보장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어리석은 부자는 농사가 잘 되어 소출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자, 금년에는 농사가 잘 되어서 현재의 창고로는 다 보관할 수가 없구나, 창고를 좀 더 증측해야지.’ 그래서 창고를 많이 늘렸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창고마다 풍성한 농산물로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이 부자는 자기 영혼을 향하여 독백처럼 속삭입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것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모토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날 밤에 부자에게 나타나셔서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자는 농산물이 잘되는 것을 보고 창고를 넓히는 일에 착수 할 만큼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의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미래는 확실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들의 삶은 허무합니다.

14절에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아주 철학적인 표현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짙은 안개도 해가 뜨면 언제 사라졌는지 찾아 볼 수가 없이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함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인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풀의 꽃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다고 했고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 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영도자였던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우리의 날이 매일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날마다 걸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이 잔치집에 있어도 지혜있는 자는 그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인류 역사에 비하면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여기 보인다는 헬라어의 뜻은 ‘빛난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잠깐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헬라의 철인(哲人)이 제자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생님 인생은 이렇게 짧고 허무한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날까요” 그때 철인은 제자의 질문을 받고 한참 있다가” 그것은 영원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허무를 통해서 비로소 영원의 의미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허무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의 값어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의 의미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짤막한 인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삶은 허탄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6절에 보세요.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자랑은 다 허탄한 것입니다. ‘허탄’이란 말은 ‘방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중심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들의 계획에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없습니다.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했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의 삶을 계획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계획 속에는 하나님이 들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고 계십니까 존 칼뱅 선생의 삶의 모토는 “하나님 앞에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은 정말 소중합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의 삶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면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심을 보았더라”했습니다.

요셉은 비록 이방 나라에 팔려 갔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스 스스로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은 다른 사람들이 간증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구체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활이 형통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5절에 보세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서 일을 하겠다는 자랑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말하기를’이란 말은 무심코 하는 말이 아니고 생각하고 계획한 말입니다. 삶을 계획하면서 1년의 게획을 다 세워놓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랑을 허탄한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 계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17절에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그 일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을 실제적 무신론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가운데도 실제적 무신론자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그 사람의 생활은 하나님이 없는 것같이 살아갑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고 말해도 그의 생활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교만 때문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굳이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당장 벌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묻기 전에 자기 생각대로 선택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믿기 싫어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세워 주신 목표를 벗어난 삶이 곧 죄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우고 그 다음에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하나님, 왜 내게 축복을 안주십니까” 그런데 처음부터 그 일을 하나님과 의논하고 그러십니까 모든 책임과 비난은 주님께, 그리고 모든 영광은 나에게,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니, 계획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것을 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상급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한번 구원 받으면 구원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그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 까 두려워 함이로다” 여기서 ‘버림’이란 말은 ‘자격 없고 쓸모없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을까 두려워 했습니다. 이 땅위에서 우리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써 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로마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중요시 했습니다. 그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대해서도 주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말 중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정말 주님이 원하시면 제가 이 일을 하고, 원하지 않으시면 않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에 순종할 때 우리는 잘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옛말에도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사람에게 부자유한 것이 아닙니다. 기차는 레일 위에서만 자유롭고, 새는 하늘에서 자유롭고, 물고기는 물 속에서만 자유럽습니다. 물고기가 자유를 얻겠다고 물 밖으로 나오면 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까 우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아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분별한다’는 말은 경험함으로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행함으로써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저 알아 보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알아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경험으로만 증명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했을 때 그대로 되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의논하셔야 합니다. 기도로써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과 막힘 없는 관계 속에서 주님과 의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획하세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생활을 계획없이 일시적 감정에 따라 사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잠언 16장 1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계획의 성취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계획하고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며 그 일을 하나님과 더불어 열매를 맺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계획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행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의 삶에는 축복이 있습니다.

어떤 축복이 임합니까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럴 때 주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요한 1서 3장 22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든지 받습니다. 그런데 받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책에 기록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만이 영원한 가치를 남기는 삶입니다. 요한 1서 2장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후회 없는 영원한 가치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습니까 조지 트루엣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가장 위대한 지식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업적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