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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요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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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중에 군목으로 있을 때 당시 지휘관으로 모시었던 군 고급 장교 몇분의 안부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다 군에서 높은 자리에까지 진 급을 한 기독장교들입니다. 군인들 중 기독교 장교들의 모임을 O.C.U 라고 합니다. 이 기독장교회의 표어가 멋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조 국을 위하여'입니다. 참으로 기독장교회다운 표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 람들의 인생의 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그렇습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해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는 삶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군목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만, 매번 장교 진급 때가 되면 교인들은 자연히 기독교 신자가 얼마나 진급했는 지를 관심하게 됩니다. 어려운 경쟁 을 뚫고 진급하면 모두 '하나님께 영광돌렸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신자들 이 진급에서 누락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다'고 몹시 부끄러워 하거나 신앙에 시험이 생기기도 하는 것을 보앗습니다. 이런 점은 대학입시나 직장 취직, 각종 선거 때마다 겪는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도들이 무조건 잘되 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어려움 겪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몸에 중한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교인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 가 아프다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염려해서라고 합니다. 과연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오늘 성경 본문인 요한복음 17장은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두신 예수님 의 유명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많이 기록되어 있지 만 이처럼 그 기도의 내용이 자세하게 알려진 것은 드뭅니다. 아마 제자들 이 다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기도의 첫부 분인 본문은 보통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설명되지만 사실은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한 기도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예수님의 기도에서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려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심을 보는 놀라운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 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을 것 같은 경외감에 사로 잡혀 떱 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의 영광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한 하나님의 참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입 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 리가 살고 있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고, 당연히 하나님의 솜씨가 그속에 잘 나 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저와 여러분, 곧 우리 자신의 모습 그대 로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놀랍게 드러내는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우 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유일한 존재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 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6:3에서 성경은 "여호와께 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게다가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의 죄가 많아지면서 자연도 오 염되기 시작하여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보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솜씨를 찾아 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것 은 태양은 여전히 비취지만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햐빛을 차단하므로 태양 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 이 떠난 것은 아닙니다.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서도 자연에 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몸은 죽은 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살았다 하 지만 죽은 자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과 죄로 물든 삶을 살면서도 태연한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와같은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엇 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 를 제거하고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회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하나님께서 회개의 눈물을 기뻐하시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하셨는데 애통하는 것이 어째서 복이 되겠습니까 그 이유는 회개의 눈물이 죄를 씻기 때문이 고 죄가 씻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군목에 있을 때, 지휘관들 중에 부대에 어떤 사고가 생기면 자신의 부족인 줄 알고 책임을 지고 애통하는 지휘관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화를 내며 징계함으로 모든 책임을 떠 넘기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회개할 줄 아는 지휘관에게 부하들의 더 큰 신 뢰가 가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앞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 니다. 우리에겐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나라에도 교회에도 가정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길은 참 회개 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놀랍 게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1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 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 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치욕과 고난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어 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모순도 이만저만 모순이 아 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하나님의 가장 크신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에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죄인된 한 사람 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 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사랑과 공의와 능력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인 것입니 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큰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 것 만으로는 단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사람의 영광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기준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어 떻게 널리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에 쓰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 에 쓰임받지 못하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세 상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었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는 자가 될 뿐입니다.

문둥이 성자로 널리 알려진 다미엔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지중해 한 섬 문둥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이 다 미엔 신부의 호소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 었습니다. 그때 다미엔신부는 자신이 문둥병자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결 국 그는 문둥병에 걸렸고 그로인해 문둥병자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들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다미엔신부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인생의 성공자입니 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 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그 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 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오늘날도 기적은 일어나는가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 는 요즘 소련과 동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소련과 동 구의 몰락은 세계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서방국가가 승리한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대단한 오해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련과 동 구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음의 역사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니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 려 그 반대입니다. 동구 공산주의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계기가 동독의 몰락 입니다. 그런데 동독이 무너진 배경에는 동독교회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음 을 알아야 합니다.

동독의 공산정권 아래서 라이프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의 퓨헤라 목 사를 중심으로 월요 기도회가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불과 50여명의 기도회 였으나 공산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에는 10만명의 대 기도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회로 모일 때 라이프찌히 공산경찰들이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할 때 그 누구도 돌하나 던지지 않고 맞서는 사람도 없이 그대로 맞고 감옥으 로 끌려 갔으면서도 계속 모였습니다. 그러더니 동서독은 기적과 같이 통 일되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유명한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가 있었고, 불가리아에는 하랄란포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설교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하여 그 무섭고 기세 등등하던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났던 것입니다.

전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중보기도의 십자가를 졌던 성도들은 오직 그 의 골방에서 저 북쪽의 적 그리스도의 왕국 얼어붙은 소련 땅에도 마음놓고 복음이 전파되기를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지금 소련 은 경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어서 그들 스스로가 개방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 데, 그 결과 소련 내의 교회성장만큼은 현재 세 계1위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한 것은 또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 니까 현재 중국정부는 한국정부에 복음 선교를 스스로 자제하지 않으면 중 대 조치를 취할 것을 공식적으로 경고하였는데 이는 현재 중국교회 부흥이 중국정권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부한을 위한 우리 교회의 눈물의 기도는 또 어떻습니까 북한은 경제지원을 얻어 보려는 생각 에서 북한정권위 예산으로 스스로 교회를 지을 수 밖에 없었고 한국교회가 번역한 공동번역을 그대로 베껴 성경을 찍어 냈고 찬송가도 우리가 쓰는 찬 송가를 몇 곡은 뺏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출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죄악으로 영원히 멸망당 할 영혼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성도들의 기도와 십자가를 짐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째,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 게 전하는 일에 우리는 온전히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4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 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 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받으실 모든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는지 아 니었는지 평가 받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 나 잘되었는지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 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겠다고 여겨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우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 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멋잇고 화려하고 높아져도 그 자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광만 돋보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잘된 것을 통하여 얼마나 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까 바로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돌린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이 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복음전도, 영혼구원의 문제가 별로 매력없는 주제일지 모릅 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까지는 요구하지 않으셨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 저 나 혼자서는 열심히 교회 빠지지 않고 헌금도 잘 내고 할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 이 세상에 그 정도로 내버려두셨으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어떤 삶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의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를 묻어 둔 종이 어떤 책망을 받았습니까 이 악 하고 게으른 종아 어두운 데로 쫓겨나 이를 갈며 울게 된다고 했습니다. 영 혼구원을 대신할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일에 바쁜 우리는 다 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향한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기가 너무나 도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우선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 므로 순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말인 것을 이해하시 겠씁니까 복음 전하는 일 , 십자가를 지는 일,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이 쉽 다면, 하나님께서 왜 순종을 요구 하셨겠으며, 예수님은 왜 겟세마네 동산 에서 기도하셨겠습니까 형편과 여건이 어려운 것, 생활이 바쁜 것, 자신이 없다는 것 이 모두가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폴레온은 이집트 원정길에 많은 학자들을 데리고 갔는 데 어느날 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 웅려한 밤하늘은 도데체 누가 지었는가"하는 질문 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 었습니다. 만약 그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면 그 개인 과 세계 여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한때 천하를 얻었으나 그 마지막 은 너무나도 쓸쓸했습니다. 세상사람은 나폴레온을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아 닙니다. 그는 바보 천치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따금 이라도 밤하늘의 별 을 볼 수 있다면, 눈을 높이 들고, 우주를 보고,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 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지혜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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