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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아들과 심판 (요 05: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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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이 일로 인해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안식일법을 생명같이 지키던 유대지도자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 예수님을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습 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들이 만든 유전이 더욱 중요했으 니 그야말로 법이 사람잡는 격이었습니다. 이렇게 독을 품고 달려드는 유대 인들앞에서 한발 물러서면 좋으련만 예수님의 대답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 얹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17절) 이 대답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안식일을 고의로 범했을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되게 높이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로인해 예수님은 남은 생애을 위기속에서 보내게 되었 습니다. 5장을 보면 예수님은 살기등등한 무리들 앞에서 시종일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후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했던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19:7) 예수님은 왜 이런 위기속에 몰 리시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않으셨을까요 그것 은 기독교의 생명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세기적인 사기극이요 예수는 구원자의 자격이 없는 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죠시 멕도웰의 말처럼 예수는 마귀요 바보일 것입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하 나님의 아들이라 우겼으니 말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은 기독교의 기둥입니다. 그것이 부인되면 기독교는 쓰러지기에 교회사를 보면 사단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것이 바로 이 교리 였습니다.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 위기를 느낀 교회는 니케아회의라는 종교 회의를 소집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부인 하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아다나시우스의 견해를 올바른 신앙고백 으로 확정지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니케아 신조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한 번 참패했다고 절대 포기하지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전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송장처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단 은 지금도 할수만있다면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믿지 못하게 만들려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기독교의 심장과도 같아서 이것을 부인하 면 기독교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지고 말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 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어야만 합니 다. 그래야 사단이 손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은 자기만이 아는 비밀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은 하 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다보았고 이제 그대로 행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일을 맡기셨는데 그것이 곧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라는 것입니다. 더나아가 23절을 보면 부자의 권위가 동일하므로 아들을 공경하는자는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는 선언까지 나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충 격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말 씀앞에서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24절 이후는 이 심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위임받은 심판권은 인류를 앞에 놓고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결정하는 생사권을 의미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하나일 뿐 입니다. 뿐만아니라 이것은 한 번 선고되면 물려질 수 없는 결정적인 선언 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는 마지막 재판인 것입니다. 물론 그 기준은 예수를 어떤 분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 심판을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 심 판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24절) 살자와 죽을 자는 이미 갈리고 있는것입 니다. 믿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선고받았고 그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고 주님으로 영접하면 죽은 자들이 일어납니다. 영적인 부 활, 놀라운 중생의 축복은 지금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믿지않는자를 향 한 심판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3:18,36) 그들은 이미 죽음의 권세 아래에 있기에 마지막날의 심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운명에 대 해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죽고 사는 문제는 오늘이 내일을 주관합니다. 인간 재판관은 가끔씩 오판을 하지 만 예수님의 심판은 한치의 실수도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꿰뚫어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심판에 대해서 믿고 싶지않아합니다. 그러나, 지브롤터해협 너머에 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것처럼 세상사람들도 예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 어야만 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 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을 해도 바꿀 수 없는 날이 올것입니다. 그날이 오 기전에 주님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던 유대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처음보는 낯선 사람의 손가락에 의해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보고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 이 분명한 현실이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것입 니다. 물론 우리의 심판주는 결코 낯선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이 심판주로 서 실때에 모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심판은 기준없이 제 멋대로 하는 심판도 아닙니다. 이미 진행된 심판의 마지막 선고를 하실때에 누구도 불공정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 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심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영생의 축복이 선언되었으니 이 얼 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은혜가 너무도 크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고통과 슬픔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 들이라고 고백하는 그 믿음 하나를 보시고 세상에 있을때부터 영생을 선물 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제 믿지않는 자 들에게도 이 사실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는 자는 누구나 살아 날 것이라고 증거합시다. 우리의 가정에, 이 사회에 이러한 살아남의 역사, 치유의 역사들이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의 입을 엽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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