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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는 자여 일어나라 (욘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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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는 하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던 요나 선지자가 겪었던 일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들어가 그 성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한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특히 본문은 배 밑창에 내려가 잠을 청하고 있던 요나를 발견한 선장이 그를 깨우며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책망한 내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린 여기서 주객이 바뀌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풍랑 만난 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사람은 요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뭔 줄도 모르는 선장이나 선원들에게 “당신들도 기도하라”고 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요나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잠을 청하고 있고 선장과 선원들은 깨어서 풍랑 만난 배를 건져내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기도하라고 요나를 깨웠습니다.
이것은 불신자가 신자더러 “왜 기도하지 않느냐 기도하라”는 충고와 같은 것이며 평신도들이 중직 맡은 이들에게 “왜 기도하지 않느냐 기도하라”는 권면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서 기도하라”는 선장의 충고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충고이며 책망입니다.
어떤 여자 교인이 남편에게 예수 믿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한마디로 남편이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조그마한 일만 생기면 당황하고 걱정하는가 하면 믿는다면서 기도는 안하고 한숨만 내쉬는 당신 꼴을 볼 때마다 믿을 마음이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는 안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이면 등산이다 운동이다해서 교회를 안 나오고 놀러다니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남편은 아내더러 함께 가자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타일렀지만 아내는 거절했습니다. 그 때마다 남편은 섭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로서는 주일날 교회 안 가는 남편을 따라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남편이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내일 딱 한번만 나와 함께 운동을 하러간다면 그다음 주일부터는 교회를 나가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아내는 그 주일에 남편을 따라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운동기구를 챙기며 교회 나가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난 주일까지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는 교회에 나갈 생각이었소 그러나 당신은 놀러가자는 내 유혹에 넘어가 교회를 가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당신같은 가냘픈 믿음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소”라고.
나의 신앙태도와 기도생활은 내 가족과 이웃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당료병에 심장병을 앓고 있는 김모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문동 종점에서 후암동 종점에 있는 교회를 빠지지 않고 출석하셨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주일밤 그 교회의 헌신예배를 인도하러 갔다가 그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예배후 차를 한 잔씩 나누며 물었습니다. “몸도 불편하시고, 댁도 먼데 어떻게 저녁예배까지 출석을 하십니까”라고. 그분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침 일찍 1부예배에 나오면 3부예배까지 봉사하고 몸이 피곤하기 때문에 이문동 집에 돌아가 3시간 정도 쉬신 다음에 저녁예배에 다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가뜩이나 저녁예배 나오는 수가 적은데 나까지 빠지면 자리가 비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내 자리가 빈 것을 보시면 허전해 하시고 걱정하시기 때문이고,
셋째 장로가 저녁예배에 안 나오면 교인들에게 덕이 안 되기 때문이고,
넷째 교인들이 저녁예배에 안 나와도 목사님이 야단 치실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그 장로님의 손을 두 손으로 덮석 붙잡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드렸습니다.
하기 싫어도 체면 때문에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가기 싫어도 입장 때문에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먹기 싫어도 인사 때문에 먹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체면이나 입장이나 인사치레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펄젼은 “기도없는 영은 그리스도가 없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 쉬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안 하면 안 되는 것,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1 기도할 때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언제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하나님이 다 아시고 들으신다는 생각과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태여 교회까지 그것도 추운 새벽이나 늦은 저녁에 나가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그들은 기도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었습니다.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시간은 세 시간 간격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제 9시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앉은뱅이를 고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정한 시간에 교회에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적당히 해 치우고 마는 기도 생활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둘째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미리 다 아신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태도나 생각은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 안 하려는 핑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미리 아시고 통촉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언젠가 어느 교인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접을 하겠다고 했지만 기어이 그분이 대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대신 선택은 제가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설렁탕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목사님도 설렁탕 잡수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잡수세요라니요”라고 반문하자 그분 말씀이 자기 구역 아무개한테 들었는데 목사님은 입이 짧고 고급음식만 찾기 때문에 아무나 대접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아무개가 누구인가 물어 보았더니 이름을 대는데 저하곤 커피 한 잔도 함께 마셔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굶겨 죽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군요 저는 라면, 된장찌개, 김치겉절이 체질이랍니다.”라고. 하나님의 뜻을 속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도의 경우도 해 본 사람만 하나님이 얼마나 기도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셋째 나 같은 사람의 기도도 들으시겠느냐는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껏 하나님을 생각해 주는 것처럼 그러면서 하나님의 기억력을 염려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컴퓨터냐 하나 둘도 아니고 너 같은 것까지 기억을 하고 있겠느냐라며 빈정거리고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판사에게 들은 애기가 생각납니다.
민사나 형사 사건 가운데 크고 작은 것을 포함해 단 한번의 심리로 판결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교통법규 위반한 직결재판 정도일 뿐, 그 외에는 1년 길면 10년씩 걸려야 판결이 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직결재판이 아닙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인스탄트가 아닌 것처럼 기도응답을 인스탄트 식품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2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내 영혼이 허약해 집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무력증세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전신의 힘이 빠지고 의욕상실에다 식욕까지 없어지는 것이 무력증세입니다. 기도 안 하면 그런 증세가 일어납니다.
둘째 시험이 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않고 잠자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란 나를 넘어뜨리는 다양한 도전과 사건을 의미합니다.
셋째 손해가 옵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과 삶을 지키는 파숫군이기 때문에 기도를 쉬거나 중단하면 마치 전선이 무너지는 것처럼 손해가 들어옵니다.
건강에 손해가 오고 물질의 손해가 오고 사업이나 가정에도 손해가 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백번 손해입니다.

3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학자들은 사람에겐 탈진상태가 찾아오는데 갑자기 어떤 충격적 사건으로 찾아오는 탈진상태가 있는가 하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탈진상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탈진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 탈진상태에서 해방되고 탈출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기도시간을 디시 찾고 포기했던 기도를 다시 찾고 핑계댔던 기도를 디시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내 영혼이 힘을 얻고 되살아 납니다. 영혼이 활력을 찾아야 육체가 활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문제를 풀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이 걸렸을 때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5년을 더 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금식령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앗수르의 침략군을 물리쳤습니다.
국가적인 위기나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기도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대형사고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봇물 터지듯 터지는 사건들, 북한의 핵 위협과 전쟁소문, 쌀 수입개방과 관련된 정국의 경색, 경제침체, 도덕과 윤리의 붕괴 등등... 어떻게 다 그것들을 옮길 수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기도제목이 더 많아졌습니다.
허셀포드(Hussel Ford)는 “마귀는 기도 안 하는 것을 제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시내 모교회 부흥회를 인도 하는데 첫날 밤 기도 순서를 맡은 장로님이 “목사님 오늘 저녁 제 기도가 조금 길더라도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라고 묻자 급한 회사일로 미국 출장을 갔었는데 부흥회 첫날 기도 순서를 맡게 됐다는 부인의 전화를 받고 오늘 오후에 도착을 했다는 것입니다.
은혜받고 기도순서 맡기 위해 태평양 건너 왔으니 좀 길게 해야겠다는 얘기였습니다. “마음 놓고 하라”고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분의 기도는 정확하게 2분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 책임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서 일부러 일찍 돌아온 것입니다.
기도의 포기는 신앙의 포기와 같습니다.
기도의 재발견은 희망의 재발견입니다.
기도의 새로운 시작은 인생의 새출발입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 기도하라.
쉬는 자여 일어나 기도하라.
졸고 있는 자여 일어나 기도하라.
탈진한 자여 일어나 기도하라.
기도는 능력이며 열쇠이며 위대한 해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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