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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번째 주신 기회 (욘 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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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봉독하신 말씀 중에 요나서 3장 1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요나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요나에게 첫번째 임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 하나님의 선교명령을 순종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선 니느웨 성은 유대 나라에서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막길을 멀리 가야하고 그 길이 아주 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때 유대 사람에게 있어서 니느웨 성을 수도로 하는 앗시리아는 그들의 원수나라였습니다. 사실 그들의 북편 나라인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아주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가 복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멸망을 당하는 것이 국가적 견지에서 나으리라고 하는 민족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나도 그 시대 그 나라 백성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편협한 민족주의 사상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니느웨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대로 자기 나라에 있자니 불안하고 해서 결국 니느웨와는 반대 방향인 서편으로 발길을 돌이켜서 항구 욥바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욥바에 가면 여러 나라의 배가 와서 기항하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어느 곳으로 가는 배를 탈까하고 생각하다가 여러 배로 다니면서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이 배는 어디로 갑니까” “구부로로갑니다.” “거기는 너무 가깝지!” “이 배는 어디로 갑니까” “두부로갑니다.” “아, 거기는 안돼” 또 다른 배로 가서 묻습니다. “이 배는 어디로 갑니까” “애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로 갑니다.” “거기는 멀긴 해도 그렇게 멀지는 않아” 또다는 배로 가서 “이 배는 어디로 갑니까” 물어보니까 “이 배는 스페인에 있는 다시스로 갑니다.” “아, 그래요 이 배를 타는 게 좋겠어 나는 좀 멀리 가야 하니까” 그래서 뱃삯을 내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배 밑으로 내려가 잠을 청했습니다. 배 밑으로 내려간다고, 다시스로 간다고 하나님을 피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배 가운데에도, 바다 위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을 피할수는 없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얼마 가지 못해서 지중해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파도는 더욱 높아만 갔습니다. 모든 선원들은 어찌 할 줄을 몰랐습니다.

배는 깨어질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적을 가볍게 하기위해 배에 실었던 모든 물건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사람들은 당황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각자가 믿는 신에게 부르짖으면서 야단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때 보니까 배 밑에 잠자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선장은 화가 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감당키 어려운 풍랑을 만나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잠만 자고 있는가 그래서 선장은 “자는 자여 어찌된거요. 당신도 어서 일어나서 당신의 하나님께 구해 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요나가 깨어보니 배 안이 말이 아닙니다. 풍랑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 이건 어떤 죄인이 우리 배를 타고 있어서 이와 같은 풍랑이 이는 것이니까 이 죄인을 잡아서 처치할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몰려들어 요나의 신분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나의 고백을 듣고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하며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요나를 아주 죽게 하지 아니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다가 요나로 하여금 아주 죽는것은 면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주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던 길을 통회하고 죄악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회개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우리가 읽은 대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이에 요나는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1장에서는 요나가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했습니다. 그러나 2장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달려왔습니다. 2장 4절에서 “내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했습니다. 여기서 ‘다시’라는 말이 강조되었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노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요나를 보십시오.

그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3장에서 중요한 말씀은 3절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 길이라” 3장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달리고 있는 요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2장에서 그는 그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했던 요나가 3장에서 하나님과 함께 달리며 하나님과 함께 일합니다.

1장 2절에서 하나님은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주신 말씀과 비교해 보세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똑같은 말씀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에게 한 번 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두번째 주신 기회였습니다. 다시 주시는 은총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만 말씀하시고 그것으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두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하나님은 나에게 한 번더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 생애 속에 얼마나 자주 두 번째 은총의 기회를 주십니까 이 은총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시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주님과 함께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두 번째 주시는 말씀을 들은 요나는 3절에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부딪쳐 왔을때, 주의 말씀이 나를 향해서 교훈하실 때, 우리는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까 성경은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을 읽을 때 들어보세요.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했습니다.

그렇게 악하던 니느웨 성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외친 결과 임금으로부터 시작해서 서민에게 이르기까지 온 성이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는 새로운 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니까 이렇게 회개하는 니느웨 왕과 니느웨 백성들의 행한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셨다고 했습니다.

회개는 입술만의 자복을 뜻하지 않습니다.참된 회개는 죄를 버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자백은 단순한 입술만의 자백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죄를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신 이유와 그 백성들에게 은총의 기회를 다시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회개의 뚜렸한 증거를 이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의 기리에서 죄를 버리고 떠나는 역사가 일어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이 구체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날 때 동일한 사실로 강조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했습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임한 경우가 바로 니느웨 성의 사건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약속하셨습니까 ‘내가 하늘에서 듣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고 있을 때 우리가 드리는 그 수많은 기도는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귀가 어두워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심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냈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간격을 가져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기도의 응답이전에 나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는 죄가 없는지 살펴보세요. 그리고 우리는 그 죄를 버려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때 성경은 주께서 내 기도를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고’ 그 땅을 ‘고쳐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참으로 겸비하여 죄를 떠나고 주님 앞에 돌아올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열납하십니다. 그리고 치료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나 개인을 고치십니다. 우리 가정을 고치십니다. 교회를 고치십니다. 우리 민족을 바꾸어 주시는 개혁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흥입니다.

요엘서 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12-14) 여기 ‘복을 끼치사’하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은 언제나 축복 이전에 회개를 강조합니다. 회개 없이는 축복이 없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비극은 회개 없는 축복이 강조되고 있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는 하지 않고 축복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는 아니하고 복을 구하기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축복 이전에 회개를 강조합니다. 부흥 이전에 회개입니다. 참된 회개가 없는 곳에 부흥은 없습니다. 축복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니느웨 성의 왕과 그 백성들이 참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에서 약속하신 그대로 그 땅을 고치시고, 그들을 향해서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긍휼의 역사를 행하십니다. 요나가 하나님이 두번째 주신 기회에 순종했을 때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온 도성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십니다. 나를 통해서 내 가정을 새롭게 하시고, 나를 통해서 내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나를 통해서 내 나라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두 번째 기회에 순종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했던 요나를 구약 성경 가운데 제일 위대한 전도자로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실패를 하고,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하지마는 그가운데서 뉘우치고 회개할 때 제 2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마지막 날 저녁에도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자기는 생명을 버릴지언정 절대로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 제사장 앞에 끌려가셨을 때 멀리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심문 받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혼자서 많은 원수들 사이에서 같이 불을 쪼이면서 그 광경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때 한 비자가 하는 말이 “너도 역시 갈릴리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니냐” 그 말에 갑자기 겁이 나서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한 번만이 아니고 세 번까지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때 닭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닭이 두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하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나가 바깥 어두운 곳에서 통곡을 하며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복했습니다.

며칠 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다시 불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중심에 더듬어보니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이 “그러면 됐다. 내 양을 먹여라.” 이렇게 베드로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주어 주님의 양을 먹일 위대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는 큰 죄를 지은 베드로이지만 회개할 때 두 번째 기회를 주어서 주를 섬길 수 있고 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한 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실수와 실패가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운동경기도 그렇습니다. 어떤 선수가 달려가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경주를 계속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를 얻습니다. 2차 대전 때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연합국 측이 처음에는 패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영국 할 것 없이 독일에게 첫번 전투에서 전부 패전했습니다. 그래서 다 쫓겨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다시 유럽을 점령하고 히틀러도 온전히 굴복시킨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도 역시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에게 영국과 미국이 완전히 패했습니다. 진주만이 다 부서지고 말레이지아를 다 빼앗기고 싱가폴를 다 점령당하고 필리핀도 다 점령당하고 마지막에 맥아더 장군도 쫓겨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전쟁뿐만 아닙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사업도 하다가 실패한다고 낙심할 것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마지막에는 성공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나는 원치 않지만 모르는 가운데 유혹에 들기 쉽고 죄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시험에 드는 것을 아는 대로 곧 뉘우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두 번째 은총의 기회를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패를 했거나 시험에 들었을 때 기억할 것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시험에 들기 전에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아시니까 그 정도는 다 이해하셔”하면서 유혹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뒤에는 뭐라는지 아십니까 “옳지, 너 죄 지었지. 너는 소망이 없어. 누가 다시 너를 신용할 것 같아 누가 너를 다시 사람으로 볼 줄 알아” 이렇게 마귀가 시험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한 번 돌아온 다음에는 다시 뒤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했습니다. 만일에 요나가 하나님이 두 번째 기회를 주셨지마는 뒤를 돌아보고 용기를 잃었다면 어떻게 니느웨 성을 회개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한 그 잘못을 잊어비리지 못하고 뒤만 보았다면 어떻게 오순절에 담대히 서서 3천명을 회개시켰겠습니까 요한 웨슬레 같은 사람도 처음에 미국에 가서 전도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큰 은혜를 받아서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를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할 것은 내가 다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죄를 다시 짓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에 빠졌다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실수 하였을지라도, 한 번 실패했을지라도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낮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실패하신 분 계십니까 시험에 드신 분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맙시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반드시 두 번째 기회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문민정부 시대라는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나라를 세워보라는 기회입니다. 전에는 부정했지만 이제는 다시 부정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전에는 뇌물을 주고받았지만 이제는 다시 그런 일 해서는 안됩니다. 전에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법을 안 지켰지만 이제는 그런 일 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주간 국회에서 정치법이 통과 된 것은 퍽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귀한 두 번째 기회를 주실 때 우리 민족 전체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정신을 가지고 이 두 번째 주시는 은총의 기회를 감사히 받고 이 나라를 바로 건설하기 위해 우리 모두 힘차게 나아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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