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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례의 의미 (수 05:2-9,골 0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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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단어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할례입 니다. 이 할례는 태어나서 가장 먼저, 처음으로 지키는 계명이기도 합니다.

행15장에 보면, 초대교회 최초의 총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바로 이 '할례 문제' 였습니다.

할례란 히브리어로 '브릿트 밀라'라고 하는데, '브릿트'란 계약이란 뜻이며, '밀라'는 남자의 귀두 위에 덮여 있는 표피를 제거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한마디로, "잘라 낸다"는 뜻입니다. 표피를 제거함으로 하나님과 계약을 이 루는 중요한 의식이였습니다.

 이시간에는, 이 할례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 볼려고 합니다.

 첫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할례는 믿는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할례는 우선 믿은 후에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 다.

할례를 받고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은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매우 중요시 여겼습니다.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가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삿14:3절에 보면, 삼손이 이방인과 결혼하려고 하자 그 부모가 말하기를,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고 야단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삼상17:26절에도 보면, 골리앗이 하나님을 욕하자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고 하면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이방사람들을 멸시하였던 것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고, 천국에도 못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 로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육체적인 할례보다 영적인 할례를 더 중요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할례의 기원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진정한 할례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롬4:8-13절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언제부터 인가를 따지면서, 아브라함의 의는 바로 할례를 받은 후가 아니라, 무할례시에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롬4:11절에 보면,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 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할례는 바로 '무할례시에 받은 의를 인친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할례의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기 때문 이 아니고 할례의 목적은 다른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할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먼저 살펴 본 대로, 할례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 이후에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단지 입으로만 "믿습니다" 하고 고백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입니다.

"네가 믿느냐 그러면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이 있느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즉, 할례가 남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믿는다면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모두 다 할례를 받아야 합 니다.

이는 다시 말씀드려서, "너의 몸에서 잘라 내야하는 것을 잘라냄으로써 네가 하나님의 백성임 을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이 단지 믿는다고 하는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믿는다 고 한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가르켜서 사도바울은 '표'라고 하였습니다. 즉, 믿는다면 믿는 '표'를 드러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자의 표시가 우리의 몸에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을 믿으면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상사람들 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큰 오해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믿는다고 다 된 것이 아니다!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이 제는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수5:7에 보면, '길에서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길에서는 할례를 행치 못 하였음으로 할례없는 자가 되었음이라....." 당시에 할례는 난지 8일만에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요7:23절에 보면, 할례는 심지어 안식일 에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광야 노중에서는 할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두명이 안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 전체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들이 다 그토록 중요시 하였던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습니까

본문의 말씀을 잘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 일괄적으로 할례를 시행하지 않 은데는 하나님께서 할례를 하지 말라고 하는 어떤 계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할례는 이미 말씀드린대로 반드시 믿는 사람에게 시행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광야 40년 동안 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습니다.

 수5:5-7절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 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 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 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 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 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는자들이 아니였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믿는자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으면 이제부터 잘라야 할 것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몸에서 자를 것을 잘라서 몸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믿는자들이 잘라야 할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잘라내야 할 것이 어디에 있다는 말씀입 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마음과 귀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할례를 받아야 할곳은 바로 마음과 귀입니다.

그들의 귀는 하나님이 그토록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이방의 신상과 우상을 섬기는 일이 며, 헛된 말에 홀려 그들의 온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의 말에 이끌렸습니다. 모세를 대적하는자들의 말에 미혹되었습니다.

그들의 귀는 마치 뒤에서 들려주는데로 행하는 꼭두각시와 같아서 사람들이 이렇게 하라면 이 렇게 행하고, 저렇게 하자면 저렇게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 주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들이 귀가 엉 뚱한 곳으로 열려 있으니 그들의 마음도 온통 엉뚱한 마음으로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10:16)-"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말라" (렘 4:4)-"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렘 6:10)-"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 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부적이 아닙니다. 할례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복이 되고, 천국에 가게하고, 축복을 받 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는 예수를 믿으면 잘라야 할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를 것을 자를 때 지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자를 것은 바로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잘라내야 할 것들이 많 이 있습니다. 그리고 귀에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는 우리의 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를 행하는 칼은 어떤 칼로 행해야 하겠습니까 할례의 칼은 아무것이나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만 해 야 했습니다.

수5:2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했습니다. 즉, 부싯돌로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당시에 철 이나 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칼로 서로 싸움도 했습니다.

철로 만든 잘드는 칼도 있고, 청동기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는 부싯돌로, 차돌로 할례를 베풀라고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위생적인 이유도 아니였습니다. 다른 칼보다 잘 들어서도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왜 돌멩이로 사람의 몸에 피를 내어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여기에는 영 적인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에서 돌은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나타난 '반석'도 예수그리 스도를 가르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친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 들어 흩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서에도 보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세상을 다 쳐서 멸망시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돌은 역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0:4절에도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 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돌은 곧 예 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자는 할례를 받아야 되는데, 할례를 행하는 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 로 마음과 귀에 할례를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하여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까.....

 당시에 부싯돌은 그냥 쓸 수가 없습니다. 이 돌을 날카롭게 할려면 깨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끝부분이 유리처럼 날카로워져서 할례를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높으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땅에 자신의 몸을 내어 던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1:1-14절 말씀에 밝히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 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 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 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 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 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 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 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습니다.

 주님은 가난과 질병에 몸을 던지셨고, 고통과 저주와 멸시와 천대에 던지셨습니다. 결국 갈보 리 십자가에 자신을 던지시므로.... 주님은 구속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던져 깨뜨려서 만들어진 칼은 곧 성경입니다. 요1:1절 이하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엡6:17절에서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켜 '성령의 검'이라고 했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통하여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 습니다.

좌우에 날선 세상의 어떤 검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마음과 귀에서 베어내야 할 것을 베어버리 는 것은 오직 성령의 검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할례는 고통이 따르고 아픔을 동반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를 믿는 길은 할례를 받는것 과 같아서 어려움이 따릅니다. 고통스러울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아야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가 된 자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마다... 성령의 검으로 마음과 귀를 잘라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검으로도 안됩니다. 창으로도 안됩니다. 다른 칼로서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 다.

오직 성령의 검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간다고 안심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간다고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태연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도 할 일이 있습니다.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인 것입니 다.

 신30:6에 보면, 마음에 할례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너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한다고 했습 니다.

렘4:4절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 으리라" 했습니다.

겔44:7절에서는,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것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요, 가증한 것이 요, 언약을 위반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겔44:9절에서는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엄히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다른 칼로서는 아니되고, 반드시 부싯돌 로 만든 칼로서만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으로 마음과 귀의 가죽을 베어내시 기 바랍니다.

 겔11:19절에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라고 했습니다.

겔36:26절 에서도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 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그 말씀은 내게 성령의 검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 과 귀를 수술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으로 나의 무딘 심령을..... 돌처럼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십니다. 얼 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녹여 주십니다.

불순종의 거치는 마음을 순종의 부드런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고, 늘 불평하고 원망하던 마음 을... 긍정적이고 감사의 마음으로 변화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귀가 세상에 쏠려서 지금까지는 세상적인 쾌락과 즐거움에 관심을 갖았 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쫑긋이 세우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람으로 변화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광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고, 우리의 마음과 귀에 할례를 행하므로, 무엇을 하든지 어 디를 거든지 믿는 표시를 나타내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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