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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망도 있어야 한다 (고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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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과에서는 이 땅에서 보람 있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 지 요소 중에 소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희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 은 소망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일반적으로는 희망이라는 말을 씁니다. 희망이란, 현재보다 나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기대감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고전 13:7) 고 했습니다.

당신은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안고 살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언젠 가는 나의 자녀들이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남편이 예수를 믿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사업이 잘될 것이다. 그날이 곧 올 것이다.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감, 이것이 희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소망을 표현해 놓은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저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저 사람은 좋 아질 수 있다. 저 사람은 괜찮다. 지금은 저 사람이 문제가 있 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적인 생 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을 포기해 버리면 그 사람 은 쓰러집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까 각양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희망을 잃었 기 때문에 잠깐 동안에 그 삶이 사그러드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 니다. 비교적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6개월 정 도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더니 거의 죽을 상이 되어 병원에서 나옵니다. 그 후에는 가슴 속에 절망을 담고 하루하루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것입니다. 의사의 한마디 말이 그 사람에게 그렇게 중요했습니다. 희망이란, 앞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이것 이 없이는 삶을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소망이란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소망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고, 그 소망에서 사랑이 꽃피는 것입 니다. 사실상, 내가 바라보는 저 미래가 현실화되고 성취되었을 때보다도 그것을 바라고 나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그때가 참 행복을 누리는 기간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0절에서는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 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부분적이 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완전한 것으로 대치될 때 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도 소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지금 당장은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지만 언젠가는 장성한 사람처 럼 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주위에서 참고 격려하고 기다려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인 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열일곱 살이나 되어서도 그 모양이냐?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니까 그렇지요. 인생은 70까지 살아야 한 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은 좀 모자라는 아이들이라도 하 나님께서 너를 반드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고 난 기도하고 있다라면서 부모가 희망을 표현해 줄 때 아이들도 용 기가 납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한 자로 설 날이 반드시 올 것입 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 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 당장은 분명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보는 것같이 분명해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를 바라보는 자세, 이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당신의 말 속에는 희망적인 표현이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방 을 죽이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까? 싹수가 노랗다느니, 어째서 그 모양이냐느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느니 하는 말들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박힐 경우 그를 죽게 만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 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 입술에는 언제 누구를 만나든지 희망적인 언어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언어를 훈련하십시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희망적인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하반절에도 이제는이라는 말과 그때 에는이라는 말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지금은 내가 아는 것이 부분적이요 불완전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 면 나도 깨닫고 이해하고 내 세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희망이 있 어야 인내할 수도 있고 열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 람들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희망 적이고 언제나 믿음이 있고 언제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올 그때를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힘 있게 나아갑시다.

소망이 중요한 이유 첫째로, 소망이 없으면 인간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젊은 여성도가 저를 찾아와서 남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 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아직 서 른다섯밖에 안 되었는데 삶의 의욕이 전혀 없어서 하는 일 없이 방안에서만 빈둥빈둥 허송세월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겨우 서른다섯의 나이에 인생을 포기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지금 환경이 여의치 않아 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오리라 믿고 새로운 희망과 힘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희망이 없으면 죽습니다 . 희망이 없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보면, 지옥 문 앞에 다음과 같은 간판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여기는 슬픔의 거리로 가는 입구, 여기는 영겁의 오뇌로 가는 입구, 여기는 멸망의 백성들을 위한 입구이다. 여기로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리라.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낙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성 경에서도 모든 피조물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고통하고 함께 신 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이 어렵다 할지라도 장 차 모든 것이 회복될 날이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사는 것, 이것이 믿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당신의 가슴에 희망이 없다면 오 늘부터 하나님, 저를 좀더 희망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제 가슴을 에워싸셔서 저를 좀더 주님 안에서 적극적이 며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철저히 기도하십시오.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든지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 달라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서 있다가 살아난 사람 중에 빅터 프랭클이란 유명한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책을 한 권 저술했는 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나치 수용소 안에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서서히 죽어 갔다. 그 수용소 안에 들어간 것 자체를 죽음과 동일시하고, 살 수 있 다는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들은 서서히 죽어 갔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성경적인 말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벌써 움직이는 것부터 다릅니다.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보고 열정을 갖고 일에 임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희망이 있으면 살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희망의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어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소망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슬퍼하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둘째로, 소망은 불행한 사람을 살려 내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희망입니다. 살다 보면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들이 가끔 생깁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과 상담하면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를 종종 경험 합니다. 그럴 때는 솔직히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내가 뭔데 하나님께 서 창조하신 이 사람을 포기하는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포기 할 권리가 있는가? 하나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 너를 맡기겠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기도하십시오. 절대로 사람에 대해 포기하는 말을 하지 마 십시오. 절망에 대한 대답은 희망입니다. 희망 그 자체가 행복입 니다. 소망의 근거 첫째로,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엘서 3장 16절에는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 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소망이 되심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 지이시고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예레미야서 17장 7절에서 여호 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시편 39편 7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절망할 때,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소망으로 붙잡으십니 다. 내가 무엇을 바라볼까? 오, 주여. 제가 무엇을 기대합니 까? 주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당신의 가슴에는 새로운 소망이 솟아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있는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 속 에 임재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 노력과 지혜와 능력으로만 살려 고 하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주님과 함께 거 닐고 주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을 앞세우면 절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에 소망을 두라(시 119: 8 참조)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수많은 약속 을 하셨고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 뢰하지 않을 때 힘이 없고 절망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 는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벌써 성경을 놓은 지가 6개월도 넘었 습니다. 기도를 안 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손 에서 멀어지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절망해도 핑계할 것 없습니다. 절망이 되고 낙심이 되면 즉시 성경을 꺼내십시오. 하나님의 말 씀을 읽으면 반드시 우리 안에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영광스런 부활을 맞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언젠가 우리 낮은 몸은 영광의 몸 으로 변할 것입니다(빌 1:20). 사랑하는 가족이 먼저 떠나도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는 않습니다(살전 5:8).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죽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더라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실 때 완전한 세계가 임할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를 바 라보면서 인내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우리에게는 구원과 영원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 구원의 소망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곳, 눈물도 없고 한숨도 없고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는 그 영 원한 곳에 가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과 만나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사람이 희망을 갖고 여호와의 구원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애 3 :26)고 했습니다. 희망은 마지막까지 필요합니다. 희망이 사라 질 때 인간은 죽습니다. 영원한 삶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소망의 유익 첫째로, 소망은 인생을 쉽고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는 것이 쉽다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갑니다. 신앙을 떠나서 생각해 보면, 사실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가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거나 텔레비전에 나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뉴스 시 간에 러시아 사람들이 길바닥에 우두커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생 동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살 수밖에 없다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요? 아마도 그들에게는 인생을 사는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인생에 쉼이 있습니다(시 16:9).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있고 예수님이 있고 하나님의 말 씀의 약속이 있고 영원한 삶이 있고 나와 함께 사시는 여호와 하 나님의 신(神)이 계시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을 수 있 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으니까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습니 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롬 12:12). 소망이 사라질 때 인간은 죽습니다.

둘째로, 소망은 인생의 고통을 견디게 해 줍니다. 지금은 고통이 있지만 이 고통이 지나면 무언가 좀더 나은 세계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때 우리는 고통을 참아 낼 수 있습니 다. 고 3(高三) 학생들이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며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은 대입 시험을 치른 뒤에 펼쳐질 생활들 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서 나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또 대학을 못 간다 하더라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힘든 고 3 기간을 버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포로들은 언젠가는 자유를 누릴 수 있 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석방될 그날을 바라보면서 고통을 참을 수 있습니다. 또 병든 사람은 치료를 받고 나면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 람은 지금은 힘들지만 열심히 일해서 언젠가는 재산을 모을 수 있 다고 하는 소망 때문에 고통을 이겨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 을 치료해 주시기 위해서 희망과 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실 밤새 푹 자고 나면 전날의 걱정, 근심, 피곤이 사라지고 다시 희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쉼과 희망을 주 셔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셋째로, 소망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살겠다는 의욕과 살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이 있을 때에 생명이 연 장됩니다. 저는 저희 형님을 볼 때 이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3 0년 전쯤, 형님은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아이를 살리려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그 아이를 건져놓고는 갑자기 병을 얻었습니다. 온 몸에 열이 나더니 마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가 치료를 하다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형님은 그 날부터 서서히 죽어 갔습니다 . 희망이 사라지니까 모든 것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형님의 모습이 얼마나 안 되어 보이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분이 오셔서 부산 동래에 있는 외국인 의 사한테 가 보자고 하면서 형님을 모셔 갔습니다. 그 의사가 제 형님을 보고 하신 말씀이 당신은 나을 수 있다고, 낫는 것은 시 간 문제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때 형님의 얼굴을 보았습니 다. 희망이 생기니까 그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30여 년 동안 형님은 몸은 온전치 못했지만 아버지로서, 선생 님으로서, 남편으로서, 할아버지로서, 교회 장로로서 풍성한 인생 을 살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과 희망이 없 는 사람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입니다. 당신의 가슴에 언제나 희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절망 중에 있는 사람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소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인도해 줍니다. 희망이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 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희망을 가지고 100을 원해 서 100을 향하여 가다가 50을 받는 것이, 30을 원해서 3 0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100을 원했을 때에 50이고 70이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10을 원한 사람은 1 00%를 다 얻더라도 10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희망적인 사람 만이 이 땅에서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포기하 고 절망할 때, 그때 삶의 실패가 찾아옵니다.

다섯째로, 소망은 인간에게 용기와 의지를 줍니다. 희망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 닙니다. 희망은 언제든지 우리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사실 상 희망처럼 돈 안 드는 것도 세상에 없습니다. 희망적인 생각을 품고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슨 대학 졸업 장을 필요로 합니까? 아니면 죽도록 어디 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희망은 마음 상태입니다. 누구 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십니다. 그 희망은 우리에게 굳센 용기와 삶을 향한 의 지를 주고 마음을 굳세게 해 줍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시 31:24).

여섯째로, 소망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시편 71편 5,6절에 보면 주(主)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 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희망에 찬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 다. 돈이 없어도, 따뜻한 가족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 니다. 일생을 찬양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당신의 소망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일곱째로, 소망은 사람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에 주를 향하여 이(재림) 소망을 가진 자마 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 시는 그날,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깨끗하 신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완전히 변화되서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 고, 죄도 없고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영원히 사는 나라로 옮 겨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의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 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는 그 시간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지진이 난 땅에도 샘은 있으며, 초토 속에서도 나무는 자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 떤 슬픔의 순간에도 쓰러지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 을 붙들고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전진하는 희망적인 사람들이 되어 야겠습니다. 희망이 당신의 남은 생을 사로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낙망시키는 세력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 습니다. 저 자신의 죄성(罪性)을 볼 때 낙망이 되고, 죄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낙망이 됩니다. 그러나 죄의 문 제를 해결하고 인생을 변화시키며 좀더 나은 미래와 영원한 소망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오늘 우리들은 희망을 갖 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간절히 원하옵건대 우리 개인의 삶에 소 망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망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직장에서 열심히 주님을 사모하며 일 하기 때문에 소망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 의 사업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 소망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민족에게 통일의 날을 주시고 좀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희망으로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또한 이 땅에서 우리의 생 을 마치는 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소망 가운데 인생을 마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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