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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우리왕 (눅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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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 신 날입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모든 유 대인들도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때였습니다. 유월절이란 우리나라의

8.15해방절과 같은 이스라엘의 해방 기념절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의 종살 이를 청산하고 출애굽한 날입니다. 이 절기의 중요한 행사는 유월절 전날 밤에 어린양을 죽여 그 피를 받아 문설주에 바르고 온 가족이 쓴나물과 함께 양고기와 누룩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 전날밤 모세를 통하여 히브리 노예들에게 명한 행위였습니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한 것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마지막 재앙으로 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설주 에 바른 어린양의 피를 보고 재앙이 그 집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이란 말의 뜻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애굽을 징켸하는 장자 사망의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구 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 행사입니다.

어린양을 잡아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혜를 감사하는 유월절 절기에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입 니다. 죄악과 영원한 멸망의 사슬에 묶여 종노릇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 린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성전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누차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고 난을 받고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이제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웠읍니다. 예수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며 살기등등한 유 대교의 실권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휘발유를 끼얹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이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8절 이하를 보면 유 대교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살기등등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말하기 를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려 하시나이 까"라고 하며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베다니로 가는 것조차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 하시며 기어코 가시겠다고 하자 제자 중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 자."고 하며 비장한 각오를 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이와는 달리, 유대인들은 명절도 명절이지만 최근에 예루살렘 근처 동리인 베 다니에서 나사로라는 남자가 죽은지 사흘이나 되었는데 나사렛 예수가 이 사나이 를 살렸다고 하는 놀라운 소문을 확인하고자 하는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예루 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 관등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와 그가 행한 여러가지 기적으로 인하여 예수의 새로 운 가르침에 쏠리고 있는 백성들을 어떻게 지도하는냐는 문제와 어떻게 하면 예 수를 제거하고 민심을 수습하느냐 하는 문제로 촉각이 곤두서 있었읍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모여드는 이 명절에 소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여 민 심을 살피면서 병력을 증강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알고 있는 제자들은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좌불안석 (좌불안석)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아도 살기등등한 종교지도자 들에 대해서 정면대결의 자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불안 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 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하시며 제자들을 격려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참으로 이상 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왔을 때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 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의 이 말씀은 기이한 면이 있읍니다. 남의 나귀를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돈주고 사오라는 것도 아니고 주인에게 말하여 빌려오라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그 때 주인이 보고 왜 남의 나귀를 끌고 가려고 하느냐고 항의하면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행위를 예수께서는 자연스럽게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아무런 의의없이 순종하였습니다. 또 나귀의 주인 역시 이상스럽게도 '우리 주님께서 쓰시려고 한다.'는 제자들의 말에 대해 그러라고 말하며 자신의 나귀 그것도 아직 한번도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져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빌려주 었습니다.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귀가 매여 있는 것', '남의 나귀를 말도 없이 끌고 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이의없이 순종하는 제자들', '자기 나귀를 가져가는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말 한마디를 듣 고는 아무런 이의없이 나귀를 내주는 사람'등 이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 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통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있 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 서 즉흥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에서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구약성경 스가랴서의 메시야 예언을 인용하 고 있습니다. "시온 사람들에게 말하라. 보라! 너희 왕이 오신다! 그가 겸손하 여 나귀를 탔으니 어린 나귀, 곧 나귀새끼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곧 예수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하시고 계획하 신 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후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발적이거나 즉흥적으로 되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등에 펴자 예수께서 나귀에 올라 타셨습니다. 그 주위에서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겉옷 을 벗어 길바닥에 펴고 나뭇가지를 꺽어 깔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앞 뒤에서 호위하면서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찬양 을!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면서 왕이 행차하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환호하 였습니다. 예루살렘 시내가 들끌었습니다. 말을 타고 순시하는 로마 병정들이 몰 려들고,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등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눈이 휘둥그 래 지는등 예루살렘은 온통 떠들썩하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어깨를 움크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분위기를 살피던 제자들은 어깨를 어쓱거리며 예수님을 호위하 였습니다.

이제 얼마 후에 죽으실 분께서 왜 이렇게 떠들썩한 행차를 하셨는지 참 이상 한 일입니다. 죽기 전에 오기를 한번 부려보는 그런 것도 아니라면 왜 이렇게 하 셨을까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꾸 주 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주님,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말입 니다. 진리는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깨달음을 허락합니다.

그것은 당신이야 말로 세상의 진정한 왕이심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들에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표방하고 나서지만 사실은 자신의 권력욕에 사로잡 혀 자신의 권력의지를 위해서 국가와 백성들을 희생시키곤 했습니다. 오늘도 세 상 곳곳에서 정치불신으로 인한 소요와 쿠데타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의 악순환은 끊임없는 소란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 모든 백성들이 바 라는 진정한 지도자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세상의 진정한 왕 이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진정으로 섬기 는 왕이십니다. 백성들이나 당신의 제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왕이 아니라 모 든 죄의 책임을 당신이 지시는 왕이십니다. 진정 백성들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 는 왕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주께서 오늘 이 날 어린 새끼 나귀를 타 신 것도 바로 당신의 평화의 왕이심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말은 고대에 군대의 병기였습니다.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왕이었습니다. 당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희 생하는 왕이었습니다. 만민은 이런 왕을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왕이 세워지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를 환호하며 환영한 무리들이 다시 예수를 죽이시요 하고 외치듯이 백성들 역시 자기들의 이기심을 충족시켜줄 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보다 바라바를 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에서는 백성이 악 하며 독재자가 선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의 이기심이 이기적인 왕을 세우는 것이 며 거친 백성들이 포악한 지도자를 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를 바라는 우리가 먼저 선한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는 백성,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나를 드리는 백성이 되도록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때에만 진정한 지도자 가 이 나라에 세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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