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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삶 (몬 0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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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순간 달라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욕구는 해가 바뀌게 될 때마다 더욱 강하게 노출 됩니다. 생활에서나 신앙에서 더 나은 삶으로 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더 나은 어떤 삶으로 변하기를 기대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데 우리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할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많은 인물 가운데 자주 기억되는 사람은 성경에서 신앙으로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생각해 볼 사람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 사람 오네시모입니다. 짧은 빌레몬서는 바울이 바로 이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우리는 이제 오네시모의 삶의 변화를 통해 우리의 삶의 변화의 원리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의 삶의 변화를 원했습니다.노예의 인생에서 자유인의 삶을 갈구했던 오네시모는 이제 결단을 내립니다. 주인의 재물을 훔친 오네시모는 로마로 도망을 갑니다.
성경은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록해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바울을 만난 상황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도덕성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절대적 관계였습니다. 로마의 노예법은 노예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법이였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주인의 재물을 훔쳐 도망갔다는 것은 엄청난 죄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노예들에게는 독특한 표식이 있었기 때문에 오네시모는 항상 불안한 생활을 도망자로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의 변화를 기대하고 결단했었지만 결국 그에게는 죄인이라는 신분만이 더 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을 떠나고 환경을 바꾸면 달라질 줄 알았던 자신의 인생은 오히려 더 악화된 삶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이때 성경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네시모의 삶은 그가 기대하지 않은 방밥으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본문을 통해 오네시모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Ⅰ.오네시모의 변화의 시작
오네시모의 진정한 변화는 어디서부터 였을까요
아마도 그 자신이 새로은 삶을 그리워 했을 때부터 변화는 시작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강열한 변화의 욕구가 없이는 어떤 형태든 결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의 삶에 변화를 열망했다는 것입니다. 강열한 욕구가 그로 하여금 어떠한 방법으로 살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욕구를 풀어 나가는 방법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근거된 행동이었으며 그 결과로 그는 죄인이라는 더 큰 인생의 짐을 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변화의 시도는 실패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더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시도한 변화의 삶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때 그는 바울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그리스도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네시모의 삶에 변화는 그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Ⅱ.오네시모의 변화된 삶(몬1:8-21)
오네시모의 변화된 삶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오네시모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중보자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오네시모의 문제 해결은 처음 잘못된 시작으로부터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오네시모의 열망은 이해 되었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생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던 그는 이제 더 이상 노예는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빌레몬과 동일한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형제 자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노예의 신분을 자유인으로 풀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16)오네시모의 변화는 오네시모가 생각지 않았던 방법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제 오네시모가 결단해야 할 것은 다시 빌레몬에게 돌아가는 것이었고 가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겸손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결과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고 있으나 우리는 이 문제가 신앙의 방법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오네시모는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는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의 삶은 그렇치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자는 내 심복이라” 오네시모의 놀라운 변신을 우리는 바울의 진술을 통해 듣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인생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네시모가 개인적인 변화의 욕망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능력으로 결단했던 결과는 그를 더욱 비참한 인간으로 실패된 인간의 경험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순간 그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삶의 변화를 쉽게 경험되었던 것입니다.아마도 오네시모는 자신이 예수를 믿으면 이런 인생의 보너스가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을 것이며 자신의 죄된 삶을 절망했을 것입니다.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듣고 그는 신앙을 결단했던 것이였습니다.
오네시모의 문제가 이제 바울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신앙에 호소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오네시모의 인생을 통하여 한편의 드라마틱한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멧세지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1995년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오네시모의 인생속에 간섭된 주님의 인도는 우리에게도 동일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오네시모가 경험한 것처럼 자신을 포기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느냐 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를 기대하는 강열한 욕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로부터 변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욕구가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에 매이게 된다면 오네시모의 경험처럼 오히려 죄를 짊어지는 더 큰 인생의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하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파괴인 것입니다. 그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결코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를 경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변화를 기대하는 우리라면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앞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아집과 욕망을 고백하면서 주님이 내 인생에 주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용서와 순종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가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신의 인생이 변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이 땅에서 주님의 약속대로 풍성한 삶이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지식과 환경에 대한 믿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방법으로 누려지는 그런 삶을 1995년도에는 체험되기를 권면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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