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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문제 해결은 어디에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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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연약함과 욕망은 기적을 그리워합니다.

이루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자신이 그 욕망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인간은 기적을 그리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욕망을 위한 하나님의 전능은 경험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그러한 우리의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해 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소경 바디매오가 주님의 권능으로 눈을 뜨는 기적을 다룬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기적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는지 찾아 내야 할 것입니다. 이 기적의 내용은 소경들만을 위한 메세지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모든 눈 먼 자들이 이 말씀을 보는 순간 눈을 뜨는 기적을 경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비밀이 있을까요 우리는 이제 이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이 기적의 사건 속에 들어가 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은 바디매오라는 소경 거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눈이 뜨이게 되는 경험이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사건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소경이 눈을 떴다는 단순한 기적의 사건으로 보기 보다는 한 사람의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소경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바디매오가 문제에 봉착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안요한 목사님은 정상적인 시력에서 소경이 되어 오히려 더 큰 감사와 사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을 때 바디매오가 단지 소경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디매오의 문제는 소경으로 인해 파생된 당시의 사회적 냉소와 인간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거지라는 신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눈이 먼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의 관심으로 부터 소외 당하고 무시 당했던 것은 그가 눈이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소경은 하나님에 저주로 이해하는 종교적 편견이 있었으며 죄의 댓가로 생각하는 도덕적 편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가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문제의 해결은 바디매오가 소경에서 정상인으로 변모하는 기적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의학적 수준이 눈을 이식 시킨다거나 백내장을 치료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의 사건은 기적이라고 말하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진정한 비밀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Ⅰ.바디매오의 기적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시작됐다.

바디매오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소경이었으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소외 당하는 버려진 존재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절망과 함께 살아가는 거지에 불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시인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타인의 동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비참한 현실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신의 인생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자신이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데 있다는 사실을 그도 잘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소경이 존경받고 존중받는 사회에서 그가 살았다면 결코 소경이라는 이유가 불행과 절망의 이유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디매오가 소경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인생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문제는 바로 소경이라는데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대는 예수님에게로 집중되어 있었음을 우리는 본문에 나타나는 바디매오의 외침을 통하여 쉽게 추리하게 됩니다. 그는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이렇게 바디매오와 예수님은 한 시점에 현실적 만남으로 우리의 생활에 다가오게 됩니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디매오가 주님을 만나기 원했다는 것입니다.

 Ⅱ.바디매오의 기적은 문제를 감추지 않고 인정하므로 현실화 되었다.

바디매오는 주님과의 만남앞에 대단한 흥분과 기대와 열망을 나타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디매오의 마지막 기대의 흥분앞에 냉소적으로 대해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냉소적인 군중의 반응을 바디메오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주님만을 집중하는 바디메오의 절대믿음을 보게 됩니다. 그의 문제는 이제 모든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거지 바디매오가 많은 사람의 관심이 되던 순간은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문제를 주님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외쳤습니다. 이제 상황은 점차적으로 긴장감이 도는 순간으로 몰고 갑니다. 만약 바디매오의 외침을 주님이 무시하신다면 바디매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주님이 많은 군중에 의해 바디매오를 만날 수 없었다면 바디매오의 절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바디매오의 사건은 절정적 상황으로 접어듭니다.

 Ⅲ.바디매오의 기적은 주님의 사랑으로 완성되었다.

이제 바디매오의 문제는 주님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우리의 주님은 이제 바디매오의 문제앞에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이 바디매오에게 어떤 관계인지를 나타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집니다. 주님은 바디매오의 절망을 이해하셨으며 그의 외침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주님에게는 사랑의 순간으로 다가온 현실에 불과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반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우리의 주님은 바디매오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바디매오에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경험합니다. 그는 이제 주님의 부름 앞에 격정의 모습으로 반응합니다. 성경은 그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그는 그의 마지막 재산마저 내어버립니다. 그는 지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그 기쁨만이 그를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이제 주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순간을 갖게 됩니다. 주님은 이제 따뜻한 음성으로 직접 바디매오에게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순간의 바디매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순간의 기분이 바로 바디매오의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이제 자신의 문제를 말합니다.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드디어 기적의 순간이 바디매오를 방문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쫓으니라” 그리고 이 사건은 막을 내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자신의 능력이 바디매오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시되 자신이 대신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의심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 매일매일의 생활속에서 작은 문제든 큰 문제든 주님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음을 믿고 신앙으로 인생을 풀어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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