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랑을 낭비하신 예수님! (롬 05:6-8)

첨부 1


우리는 모두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그리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연구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 중에 하나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줄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할 사람을 고릅니다. 그러다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후회합니다. 결코 자신이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를 그리워 하면서도 자신의 변화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손해 보는 사랑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의 방식은 경제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의 비극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형제 자매 들에게 우리가 신앙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두 가지에 대하여 밝히고자 합니다.
하나는 비뚤어진 우리의 사랑이며 또 하나는 가정을 잃어버린 우리의 어리석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진지하게 우리의 어리석음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우리의 교만까지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그렇게 어렸웠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에서 벗어나 주님의 사랑을 깊히 이해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주님의 사랑은 낭비하는 사랑이었다.(롬5:6-8)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방식을 고집하는 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방식으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감격해 하며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살아있음의 이유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우리는 결코 손해보는 사랑을 하지 않으려 하며 낭비하는 사랑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을 위한 사랑은 경제적이지만 타인을 위해 사랑을 소모하는 것은 낭비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감정과 무관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경제적인 사랑에 익숙한가를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너무도 견고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컸습니다. 어느날 그들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불행히도 한 친구가 병이 들었습니다. 유감스럽게 치료할 수 없는 병이였습니다. 두 친구는 그 친구를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한 마을을 지나는데 그 마을은 식인종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식인종 추장과 그 친구들은 타협을 했습니다. 한 사람만 그 마을에 남으면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남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죽을 병에 들은 사람이 남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이 경제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러한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사랑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잃어 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고귀한 사랑을 낭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얼마나 낭비적인 사랑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우리같은 죄인을 위하여 주님이 죽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날 사랑 하셨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그렇게 어리석게 사랑을 증명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지금 우리는 여기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지신 이 사랑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아닌 것은 결코 주님의 사랑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에 사랑이 아닌 것에서 우리는 주님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주님의 이 낭비적인 사랑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변화는 열매없는 비극적인 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통하여 위로와 격려를 그리고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선포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 주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풍요를 위해 가정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잃어버린 가정(요1:12-13).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육적인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린 비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외로움에 기쁨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그에게 아내로 허락 하셨습니다. 여기에 인류의 첫 가정이 역사속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와의 권유 중에 하나님을 포기하고 범죄에 동참하게 되는 인류의 비극의 장본인이 되고 맙니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했다면 하와도 살았을 것이며 인류는 모두 다른 삶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후로 하나님 보다 육적인 가정을 더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가정 우상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가정의 행복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육적인 가정을 떠나도록 종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정을 떠나도록 명령하셨으며 또 이삭을 자신에게 받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하시는 것일까요 아니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보호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와서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육적인 가정이 자신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서로가 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육적인 가정의 이유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삶를 우리는 쉽게 보게 됩니다. 주님은 육적인 가정이 영원한 가정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참된 가정은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태어난 교회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인 부모가 형제가 주님 밖에 있다면 그들은 우리의 전도 대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생각, 같은 소망, 같은 삶에 감정은 바로 여기에 있는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형제 자매들에게서 경험되는 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입니다. 주님은 요1:12과13절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가정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영적인 가정에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질서를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아비의 삶에 모든 것을 헌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주님안에 있는 한 형제요 자매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사실 이러한 삶을 부분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서로가 어려울 때 우리는 함께 있어 주었으며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위로를 주기 원했습니다. 육적인 가정으로 부터 상처를 당했을 때도 우리는 그 상처를 치료해 주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적인 가족이라는 확인이었던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여지껏 그 사실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진정 소중하고 귀한 우리의 가정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풍성한 삶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하고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우리가 잃어 버렸던 우리의 영적 가정을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며 아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하면서 아쉬움이 있었다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러한 삶을 누릴 수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을 섬기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를 영적인 아비로 인정 하신다면 이제 부족하지만 주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저의 사역에 순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증거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