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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빚진것이 없습니까? (마 18: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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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빚을 지는 경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빚을 지지 않고 살기를 원합니다.
빚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싫어하는 단어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할수만 있다면 빠른 시간안에 빚을 갚기 원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설명할 때 빚을 진 사람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금전적으로 빚을 지지 않았을 때는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자세히 돌아보면 우리는 금전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고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산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지은 빚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갚을 빚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해 분노하며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인간의 잘못된 욕심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모두 잘알고 있는 상식적인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상식이 우리의 생활속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우리는 모두 빚진자다.(23-27)
성경은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모두 빚진자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은 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빚진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빚진관계와 인간과 인간의 빚진 관계를 왕과 동관을 통하여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빚을 진 사람들인지 우리의 과거를 다시한번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도록 합시다.
예수님을 만나기전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는 교육 받은데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고백하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심각한 모습으로, 또 어떤 사람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혹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등등. 죄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따라서 반응이 다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의 현실에 어떠한 관계로 나타나는 말일까요
우리는 죽음에 공포와 생활의 불행과 자신의 연민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환경에 의한 고통으로 우리는 삶의 몸살을 앓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식이나 가치관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비교적인 삶을 통하여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이기적인 욕망에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과거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었으며 진리에 대해 무지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체 그저 살아가는 스쳐가는 사람들에 불과 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와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망가진 모습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도움을 청했을 때 조건없이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사랑에 빚진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영원한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빚진자 혹은 죄를 가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건은 말 그대로 복음을 가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이 빚을 탕감받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 충분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용서에 대해 물어왔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비유를 들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는 평생 어떠한 순간에도 잊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2.우리는 탕감된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28-34)
성경은 이어서 탕감받은 자의 어리석은 욕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에게 인색하게 대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빚을 탕감받은 자는 자신이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자에게 분노를 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순을 우리는 범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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