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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함정 (행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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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물질에 대해 관념적으로는 관대합니다. 자신의 수중에 많은 물질이 없을 때는 타인의 물질 헌신에 대해 비판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얼마든지 많은 것들을 하나님앞에 드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갑에서 지금 물질을 헌신하려면 우리는 무척이나 망설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도 생각 날 것이고 자신의 가난한 혈육이나 철친한 친구도 생각날 것입니다. 이왕이면 그렇게 쓰면 아깝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은 어차피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야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도 이러한 마음에 동조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이유로 많이 있는 사람의 헌신이나 적게 있는 사람의 헌신이나 헌신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며 존경 받을 수 있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물질의 헌신으로 신앙의 명예가 상실되고 육신의 생명이 파멸되는 참으로 비극적인 인생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신앙에 모습을 다시한번 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그들은 부부였으며 초대교회에 신앙적으로 위치있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영적인 범죄에 대해 심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헌신의 동기
신앙의 헌신은 철저하게 자발적인 감사와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헌신의 금액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이 원리는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잘못된 신앙의 동기로 헌신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 결과는 너무도 많은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헌신의 배경은 당시의 초대교회의 성령충만한 분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4장 31절 이하로부터 보면 그 배경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에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처음 나타난 교인들의 변화는 실제적인 생활에 대한 나눔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재산을 사도 앞에 내어놓아 당시의 교인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어 굶주린 자가 없게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 우리의 행동을 주목하게 할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나바라는 레위족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사도들의 발앞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위와 풍요를 포기하고 모두의 생활을 나누고자 하는 이 위대한 헌신은 많은 신앙인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존경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신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2절에서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았을 때는 모두 헌금으로 드리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그들은 소유의 일부를 감추고 전부를 드린다고 거짓을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볼 때 이들의 헌신은 문제가 있는 헌신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추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는 그들은 바나바와 같이 타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신앙인이 되기를 갈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갈망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도전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보다 우월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원했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감사와 기쁨이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데 헌신 되었다면 이 헌신은 매우 아름다운 헌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헌신의 배경에 사람을 의식한 헌신이었기에 그 헌신은 아름답기 보다는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물질에 대한 아까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아무 댓가 없이 누군가에게 주고자 한다는 것은 매우 아까운 일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동기로 베풀어지는 헌신은 그 아까움을 극복하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헌신은 신앙적인 동기가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산의 많은 부분을 헌신하고도 가장 어리석은 신앙인 중 하나로 역사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우린의 신앙은 이러한 잘못된 동기에 기인하여 매인 헌신이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시간이나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을 돕는일이나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모든 것이나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물질이나 시간이나 육체적인 수고를 하는 이유가 진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 감사와 기쁨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겸손인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은 결코 드려지는 헌신을 인간적인 생각과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은 영적인 분별로 해석되야 하는 것입니다.

2. 헌신의 과정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신의 과정을 보면 어떤 단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헌신의 동기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부정적인 추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동기에 근거해서든 그들은 구체적인 헌신을 계획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보적인 행동도 했습니다. 즉, 그들은 재산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쓰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었지만 여기까지의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많은 물질을 접한 후에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현실적인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적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세상의 누림을 공유하는 손해보기 싫어하는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헌신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몰고가고자 합니다. 결국 그 가치관은 그들의 헌신의 계획을 수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전부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부분을 교회앞에 헌신합니다. 이때 사도들에게 그들은 자신의 재산 전부라고 거짓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은 시작된 것입니다. 헌신의 계획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그러나 그 헌신의 배경에 영적인 교만이 있다면 그 헌신의 결과는 뜻밖의 경험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찾아 보아야 할 것은 헌신의 동기도 중요하지만 헌신의 과정이 진정한 신앙으로 이어지고 있느냐에 대한 점검일 것입니다.

3. 헌신의 결과
이들의 헌신은 참으로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들의 처분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남보다 훨씬 더 큰 헌신을 하였으며 그 헌신의 드러난 가치는 분명히 과소평가 될 수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명이 그 순간에 끝났다는 것은 왠지 우리의 신앙을 긴장 시키는 도전으로 다가옴을 부인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4절에 보면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다시말해 그 땅의 주인은 아나니아며 그 소유의 처분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거짓을 말해야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드린다고 말했다면 그의 헌신이 인정 받았을 것인데 그는 거짓으로 자신의 헌신을 과장하였기에 그는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나바와의 비교 감정은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가장 큰 불행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잘못된 헌신의 교훈은 우리에게 다시한번 신앙의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 받은 사랑을 표현할 때 헌신이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다시말해 헌신이라는 말은 주님께 대한 감사의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헌신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의 표현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 헌신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우리의 현실은 경제적인 차이가 있음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헌신으로 공동체가 운영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의 소유를 모두를 위한 사랑으로 헌신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불신앙인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삶의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헌신은 아름다운 일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헌신은 오히려 많은 갈등과 아픔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헌신은 끊임없이 비교적 감정과 그로인한 미움과 편애가 계속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되 정직한 헌신으로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 능력 이상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하게 자신의 헌신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신이 아닌 바나바의 헌신이 우리의 생활속에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실제적인 영적인 축복으로 즉각적인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삶의 가치를 깨닫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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