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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은 용서로부터 (골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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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로시푸코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용서한다”라고 말했으며, 톨스토이는 “서로 용서하라. 이 세상에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용서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막11:25)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의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긴장과 갈등을 주며 삽니다. 때로는 이 긴장이 지나쳐 정신적으로 심각한 증세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정상적인 건강한 사람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최근 정신병원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아주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역할극’이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이 ‘역할극’의 핵심은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대화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는 연극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관계속에서 서로에게 기쁨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1. 용서의 대상(골3:13)
용서는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본문에서 이렇게 제시해 줍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이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바꾸면 “어떤 사람이 너에게 어려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거든” 이렇게 의역이 됩니다. 다시말해 용서는 용서받을 사람이 있는 것이며 이 용서는 인간의 관계에서 경험되는 영적인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네덜란드의 코리 텐 붐이라는 87세의 할머니는 1974년 스위스 로잔느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나치스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학살당한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크리스쳔이 되자 독일 교회에 나가 간증을 했습니다. “ 그러나 이제 나는 마음속에서 독일인에 대한 미움은 사라졌어요 나는 그들을 완전히 용서 했으니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마치고 나니 회중 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수용소에서 여동생을 죽이는 일을 거들은 간호원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코리 텐 붐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용서한다고 말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용서의 복음도 전했습니다. 용서는 용서가 필요한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능력을 생활속에서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이제 신앙의 능력이 인간의 삶을 떠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치 않습니다. 신앙의 체험은 바로 서로의 삶속에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속에 우리 예수님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이 한 명 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 때문에 때로는 우울하고 분노하고 억울해서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로 피해자 이전에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가혹할 정도의 상처를 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배신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그 욕망과 이기적인 존재가 바로 나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용서를 확증하여 자신의 사랑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D. 함마슐트는 용서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서란 깨어진 것이 온전히 만들어지고 다시 깨끗해지는, 어린이의 기적의 꿈에 대한 회답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분노의 대상을 이제는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 대상이 혈육일 수도 있으며 친구일 수도 있으며 여기에 있는 서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세상 전부가 우리의 용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 얼마나 많이 있든 이제는 용서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용서의 아름다운 체험을 갖고 싶다면 우리에게는 극복해야 할 용서의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2. 용서의 방법(골3:13)
이제 묻고 싶을 것입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로부터 자유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고 우리의 정직한 마음은 소리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성경은 인간관계속에서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바로 그 순간 그도 나로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만 몰입하기 때문에 결코 자신 역시 상대에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서로 용납하라고 말합니다. 피차 용서를 권면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하거나 의미있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소중한 사람일 수록, 의미있는 사람일 수록 우리는 작은 것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상처를 받는 순간 상대에게도 그런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에만 분노합니다. 서로가 그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관계의 비밀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용서의 근거를 이렇게 말해줍니다.

3. 용서의 근거(골3:13)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다시말해 주님이 나에게 베푸신 용서의 사랑만큼 너도 너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그러한 사랑의 용서를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용서의 기준과 용서의 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으로부터 용서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용서를 받아 본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내 자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통해 받은 용서가 큰가를 고백할 수 있는 믿음과 비례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용서를 감격해 하였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간 인간인가에 대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도 크기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과 평안과 위로를 주시며 우리의 절망에서 소망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잊으셨습니다. 용서는 바로 잊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는 하되 잊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면 H.W.비처의 “용서는 하되 잊을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결코 용서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를 하시되 우리의 죄를 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용서의 방법이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적용하며 증거해야 할 용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고통의 삶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악의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결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자신의 상태에 따라 스스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직과 용서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나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용서의 체험은 기도에서 경험될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용서의 체험은 정직한 만남과 용서의 만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과 교제를 하기원한다면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의 죄를 용서받는 체험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너라는 형제의 용서는 바로 서로가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관계에서 경험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서로의 만남을 두려워해서는 않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바꾸어야 합니다. 타인의 변화를 요구하기 앞서 내가 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용서를 기대하기 앞서 내가 먼저 용서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96년 1월이 끝나갑니다. 이 한해를 주님과 함께 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나를 용서하고 서로를 용서하는 신앙의 결단이 지금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용서를 기억하시기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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