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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신앙 (막 13: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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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금은 서로가 행복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많으며, 남들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은 그리 많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감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력을 나타내며,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대우받으며 살고 싶어하는 문화적 욕구가 요구되는 비교에 익숙한 시대에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감동이 요구되는 시대에 신앙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와 능력과 문화적 욕구가 요구되는 시대에 신앙은 오히려 불편한 가치관으로 대우받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더 어려운 영적 전쟁에 시달리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예배 처소에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저는 잔잔한 감동을 받으며 아주 행복했습니다. 아무도 목수처럼 능숙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교회 이전 경험이 없었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서투른 열심으로 철탑을 제거하며 먼지가 가득한 지하에서 숨을 몰아쉬며 쓰레기와 전쟁을 했습니다. 경험도 기술도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머리를 합했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학원시험을 포기하며 열심히 일한 사람도 있었고 고시공부를 잠시 휴식하고 한 주일을 대전에 머무르며 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휘청거리면서도 아침부터 밤12시가 넘도록 열심히 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그러한 열심에 격려와 관심을 가져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열매를 누리고 있습니다. 제게 한 주일은 너무도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생활속에 잔잔한 감동이 스며드는 그런 시간들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에 나타난 한 사건을 통해 순수한 마음으로 참된 신앙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과부의 이야기 입니다. 그 과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성경은 전혀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단지 한 과부가 연보를 하는데 두 렙돈을 연보 궤에 넣었다는 그 사실에 대해 예수님이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감동받는 그 신앙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보셨다(막13:41-42)
예수님의 감동은 친히 연보 궤에 앉으셔서 연보의 장면을 보심으로 경험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없으셨다면 마가는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본문에 관심을 갖는 방법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얼마나 많은 연보를 했느냐 하는 것은 본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관심에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진정한 신앙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헌신은 예수님을 감동시킵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감동이 경험되는 생활은 함께 있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동은 드라마로 경험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감동은 생활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은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이 연보의 사건은 예수님이 그 상황에 함께 있음으로 인해 우리에게 신앙의 교훈을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감동이 상실된 시대에 여전히 감동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함께 있고자 하는 헌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감동은 능력과 성숙한 사람들에게서만 경험될 수 있는 특권적인 감정이 아닌 것입니다. 감동은 순수한 사랑과 관심에서 경험될 수 있는 선물인 것입니다. 예나와 정해의 졸업날 교회 청소를 했습니다. 예나와 승례와 승훈이가 물속에서 맨발로 궁둥이를 높이들고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먼저 교회에서 이사할 짐들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시간에 함께 저희 집에 모여 저녁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재춘이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재춘이 손에는 한 송이 꽃이 들려있었습니다. 재춘이는 아주 쑥스러운 모습으로 예나에게 던지듯이 주었습니다. 예나는 아주 쑥스럽게 그 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재춘이는 옷 속에서 예쁘게 포장한 무엇인가를 꺼내어 별거 아니듯이 주었습니다. 재춘이는 결코 세련되게 선물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예나도 세련되게 그 선물에 답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아주 아름다운 감동을 모인 우리들은 선물로 받았습니다. 함께 있을때 우리는 감동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감동은 아름다운 언어와 계획된 인간관계에서 경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마음 고생도 해보고 이게 사랑이냐고 하소연도 하면서 그러다 문득 자기를 겸손이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 그때 감동이라는 아름다운 생활의 선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감동의 시작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경험적인 질문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는가(막13:42-44)
예수님은 이 연보의 장면을 통해 무엇을 보셨기에 그렇게 과부의 신앙에 감동을 받으셨을까요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과부의 비밀을 가르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이 내가 원하는 연보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바친 사람의 믿음이니 그렇게 가르치라고 제자들에게 이 비밀을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이 과부의 헌금 사건을 통해 생활비 전부라는 단어에 시험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 가르침의 비밀은 신앙을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연보처럼 체면과 명예가 요구되는 구체적인 헌신속에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과부를 통해서 본 것은 절대 신앙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축복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은 서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과부의 신앙에 중요한 것이 생활비 전부라는데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 보상에 대한 축복의 말씀이 언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 과부도 결코 그런 보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과부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작은 돈이 과부의 생활비 전부라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작은 돈이었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적은 돈을 연보 궤에 넣을 수 있을까 하고 오해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풍성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비밀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앞에 최선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 동안 과부의 두 렙돈의 헌신을 보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서투름을 무안해 하는 우리 교회의 영적인 과부들의 신앙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신령과 진정으로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름다운 신앙은 아름다운 감동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순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헌신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헌신속에 우리의 풍요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감동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우리는 감동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며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감동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감동이 누려지는 것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서로 모였을 때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 예수님이 드러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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