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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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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거룩한 공회’를 고백합니다.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1. 교회에 대해서 “내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희랍어의 교회 개념은 구약적인 ‘카알’ 즉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의 번역이다. 부름을 받은 무리, 세계에서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대답으로서 모여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란 “에클레시아”라고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불러 낸 사람들의 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불러낸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러낸데는 무조건적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께서 불러 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택함을 받아서 불러냄을 받았는데 이것은 아무 조건도 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되어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에 대해서 무한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역사 가운데 보면 자격이 없는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 불러 세움을 받은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세리 마태라든지, 어부 베드로, 사도 바울, 성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나 어떤 공로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깊으신 뜻가운데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교회라는 것은 주께서 불러 모은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을 했어도 그 목사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분이 많은 헌금을 해서 교회를 설립했어도 결코 그것은 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건물을 지을 수는 있지만 그 교회의 성도들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교회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 교회’라고 말하시는 분은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교회를 ‘내 교회’라고 하엿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가리켜 공회라고 합니다. 교회를 공회라고 한 역사적인 연유를 살펴보면 맨 처음에 신약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그 교회를 예루살렘교회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다음에 빌립보 지방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이 교회들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전체 교회를 카톨릭교회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의 교화를 거룩한 공회라고 했는데 영어 성경에는 사도신경의 “홀리 카톨릭 처치”라고 쓰고 있습니다. 원래 라틴어로는 “샹카 에클리샤 카톨릭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카톨릭이라고 하면 우리가 로마 천주교를 생각하는데 그러나 카톨릭이라는 뜻은 ‘우주적이다’‘보편적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카톨릭이란 것이 공회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카톨릭이란 말을 종교개혁할 때 좋지 않은 어감이 있기에 ‘공회’라고 번역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공회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사도신경에 공회라고 고백하는데 이 공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보이는 교회
이것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입니다. 한국에 교회가 있고, 일본, 필리핀, 미국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눈으로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② 보이지 않는 교회
이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개개인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은 이 교회를 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칼빈은 “당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면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 반석을 베드로의 인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예수님의 대를 이어 교회의 후계자가 되었고, 그들은 이 베드로의 후계자로 교황을 선출해서 교황에게 전적으로 교회의 주권을 행사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는 바로 이 반석이란 말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바로 이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인격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12 제자 중에 수제자였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는 무서운 책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을 하였습니다. 아니 저주까지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고도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의 모순된 인격위에 어떻게 교회를 세우겠습니까 교회는 인격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는 이 신앙고백이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은 인격이 좋아야 합니다. 믿고 난 다음에 사람들에게 신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서 우리의 언어가 보증 수표요, 우리의 인격이 곧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증거가 되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교회는 인격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격의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공동체입니다.

3.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초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당시 교회가 당하는 환난은 핍박과 고문과 처형입니다. 또 재산을 몰수하고 직업을 박탈당하고 그러므로 많은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난해지고 예수님의 일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런 고통은 일시적인 고통이 아니라 100년 200년 계속되엇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킬 수가 있었고 환난을 이겨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결코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모든 악한 세력을 이기셨고, 교회에 분명한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힘을 가지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성도(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왜 교회가 거룩한 공회입니까
① 거룩한 하나님을 믿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가운데 구별된 하루 또 그 중에 구별된 시간에, 이 집 즉 다른 집과 다름 없는 집이지만 그러나 이곳을 거룩한 장소로 예배를 드립니다. 세상 밖의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룩한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구별됐다는 의미에서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 제조업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든지 아브라함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았다는 그런 기록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건 그가 의로워서 부른 것이 아니라 다만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서 구별시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었기에 거룩한 백성인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백성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름다운 것은 어디를 가든지 돌을 모아 재단을 만들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힘썼습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드려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거룩한 공회의 뜻입니다.

② 거룩한 공회는 예배 드리는 성도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는데로 고린도 교회 자체는 거룩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우상숭배라든가 혹은 소송사건, 간음문제, 은사문제, 여러 가지 분쟁으로 시끄러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고린도 교회를 성도라고 부르기에 거룩한 공회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이 성도라고 부르는 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비난하기로, 바울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바울의 사생활을 트집잡던 교회였습니다. 있는 말 없는 말을 가지고 빈정거리므로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동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우리 성도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구원받은 죄인”이면서 “죄인이면서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죄와 허물이 많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혈로 깨끗이 씻어주시고 그의 옷으로 우리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보혈로 죄와 허물의 씻음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한 공회입니다. 구원받은 거룩한 자들이 있는 곳(모임)이기 때문입니다.

③ 거룩한 공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거룩하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시며 몸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야 합니다. 일치되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이며, 지체의 사명을 감당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5. 교회를 통한 축복
신앙생활에는 3가지가 중심이 되야 합니다.
① 교회중심, ② 예수님 중심, ③ 말씀중심
광야의 이스라엘이 그 어려운 시절을 이기고 가나안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성막 중심의 생활입니다.
다니엘의 축복은 바벨론 포로 가운데서도 하루에 3번씩 성전을 향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중심의 신앙의 복
① 임마누엘의 축복
왕상 9: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② 말씀과 은혜가 약속된 곳입니다.
왕상 8:58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그 모든 길로 행하게 하옵시며 우리 열조에게 명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솔로몬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가 넘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③ 기도의 응답과 승리의 생활이 약속되어 있는 곳이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상 8:49-50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왕상 8:59-60 “여호와의 앞에서 나의 간구한 이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 대로 돌아보사/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것은 솔로몬이 길게 기도한 것인데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지만 성전에서 기도했을 때 그것을 들으시고 죄를 사해주시며, 전쟁에 승리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교회중심의 신앙생활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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