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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참된 선생 (요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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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에 의하면 예수님은 큰 '실패자'였다. 그의 탄생은 귀족적이 못되었으므로 실패였다. 짚으로 된 마굿간의 침대는 아무리 보아도 귀족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장차 유명해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수님은 교육을 받는데도 실패하셨다. 예수님은 국민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했다. 예루살렘 본바탕의 신학도 공부하시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논문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배운 사람마다 완전한 변화와 놀라운 행복의 체험을 하였다. 성질이 아주 급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셨고 우뢰의 아들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다.
예수님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후에 그분에 대해 거대한 분량의 책들을 저술할 수 있었다. 그는 수백개의 합창과 교향악의 주제가 되었으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많은 대학들이 창립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썸머스의 말과 같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미친 공헌은 이루 말할수 없이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유일한 참된 선생이십니다. 얼마나 많은 인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교훈과 변화와 은혜를 주셨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을 원하십니까 행복을 원하십니까 기쁨을 원하십니까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우리의 선생과 주가 되시는 예수님.
13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우리 선생님은 참으로 권세있는 선생님이십니다. 막1:21,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생의 실재적인 삶을 패턴을 바꿔 놓습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드리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독산동 말미교회 전도사로 있을때 이야기입니다. 주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교회 여자 청년2명이 저보다 50메타 정도 앞서 가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전도사님 하면서 저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어느 못된 두사람이 희롱을 한것입니다. 그래서 그사람들보고 왜그러느냐고 하니까, 다짜고짜 주먹으로 저의 코를 때렸습니다. 그러니 제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옆끄리에 끼고 있던 성경책을 흔들면서 ‘너희들 오늘 예수가 살린줄 알아라’ 하면서 사건을 끝냈던 일이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변화를 주시고 제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못된 사람이 덕을 보니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선생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해결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어느날 길을 지나 다가 아들을 잃고 애곡하고 있는 한 부인을 만났습니다. 이 부인은 석가모니를 보고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간구 했습니다. "크신 선생님, 죽은 저의 아들을 살려주세요." "네가 만일 삼대 부자 조손이 구존하여 삼대 동안 한번도 장사를 치러 보지 아니한 집에 가서 백미 한되를 구하여 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죽은 아들을 살려 주리라." 이 부인은 아들을 살릴 욕심에 삼대동안 초상을 한번도 치르지 않은 집을 찾아서 사흘을 헤맸습니다. 그러나 그런 집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는 그 부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는 집집마다 임하고 사람마다 당하는 일이니 네홀로 애통해 할 것이 무엇이냐" 이 말을 듣고 여인은 석가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석가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석가모니도 죽을때 ‘생자는 필멸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하고 유언을 했던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인성을 지나가실 때에 한 과부의 독자가 죽어 성밖으로 나가는 상여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해 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관 위에 손을 얹고 명하셨 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 하셨던것입니다.
12살 먹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셨고 그분은 또한 친히 부활하셔서 인생의 최대의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후 승천하신 다음에도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에게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할때에 그사람이 온전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교훈에는 무한한 권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요12: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길을 채는 교훈이 아니라 길 그 자체이며 진리를 추구하 는 교훈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며 생명을 채는 교훈이 아니라 생명 그 자 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권세있는 교훈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 강력했습니다. 그 당시 신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 그 사람 진실한 사람이다’ 라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신자라고 외치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게 인정 받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된 선생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신자라고 하며 예수의 제자라고 하며 또 교회에서 직분자이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는 자기가 선생이요 자기가 주인이요 자기가 최고며 자기 만을 알고 자기 것만 챙깁니다.
말로는 주님의 종이지만 세상에서는 세상의 종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예수는 나의 주님이라고 외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주님 이런 때는 좀 가만 계십시오, 주님 방법대로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요즘에는 거짓과 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하면서 주님을 밀쳐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주인이 됩니다.
아르헨티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후앙 까를로스 라는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듯한 조직과 그럴듯한 교회건물과 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강단과 목사의 그럴듯한 까운. 이런 조직에 참여하면서 신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후앙 목사님은 그것이 참 신자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조직이 나에게 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내가 주의 말씀이 진리인줄 알고 순종할 때 주님 자신이 나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진짜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참된 선생 예수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
14절,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께서 보이신 가르침은 놀랍게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이 교훈은 제자들에게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한결같이 예수 선생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키고 나라를 세우면 선생님 우편이나 좌편에 앉아 남을 부리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자기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 선생께서는 다른 사람을 생각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제자들에게 하나의 큰 변동이었습니다.
중세때 천동설(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설;아침과 저녁이 있으므로)이 지배하고 있었을 때 갈릴레이나 코페르니쿠스(목사) 같은 과학 자들이 지동설(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아간다 는 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중세 교회의 신부들은 갈릴레오를 붙잡아다가 그런 설을 가르치지 말라고 협박했습니다. 갈릴레오는 그 자리에서는 알았다고 했지만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아간다 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죠. 중세의 신부들은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라는 오만을 가졌습니다만 지구가 중심이 아니요 태양이 중심입니다. 나중에 갈릴레이나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자 천문학계와 사상계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별의 움직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로케트를 발사하고 인공위성을 띠우는 것도 다 지동설에 입각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교훈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 다른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가장 위대해 질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나만을 알고 나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자는 진정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씻은 것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이었습니다. 냄새나는 발. 이 일은 겸손과 긍휼한 마음이 아니면 하기 힘듭니다.
여러분이여, 우리가 처한 곳에서 겸손과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는 주님의 교훈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교만하게 가르치려 하지 말고 몸으로 손과 발로 본을 보이는 겸손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교회 가보면 말로만 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배우는 곳이지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 이 가르치시고 우리 모두는 다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에게서 배워 모두가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겸손과 긍휼의 삶을 사십시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같이 살아가는 아내나 남편, 또는 가족 식구가 너무도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하면 구박하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자리에 계시면 어떻게 하실까요 윽박지르기 전에 먼저 그 심령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내 아내가 뭔가 어려움이 있나보다. 내 남편이 뭔가 괴로운가보다. 긍휼에 풍성하신 주님은 분명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이 말씀을 전하면서 참 찔리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 주님은 누군가 자기를 핍박하면 그 영혼을 저주하지 않고 그 영혼을 위해 복을 빌어주실 것입니다.
존 브라운 박사,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이 마땅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므로써 스스로 불행을 느끼는 적이 많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자신들을 더 작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참된 행복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참된 행복의 비결은 예수님의 품을 영원한 거처로 삼고 자기를 주는 희생이다."

3. 16,17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이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예수님보다 크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우리는 대접만 바라고 있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대접받고 칭찬받고 높은 자리에 있고 큰 소리치는 위치에 있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베풀고 섬기고 발을 씻기는 나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우리의 선생과 주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보이신 모범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게 내 짐은 가벼움이라." 아직도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는 없습니까 아직도 천동설의 시대에 계신분은 없습니까 아직도 스스로 선생인줄 아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예수님처럼 살아 제자의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 소망교회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 모형을 이루워 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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