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의 생활1 (벧전 02:11-25)

첨부 1


베드로전서 전체의 주제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고난 속에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고난의 목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난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1장에서 우리가 요절로 삼을 수 있는 것은 7절 말씀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고난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볼때에 한번 받을만 것이 고난인 것 같기도 합니다.
2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고난의 참된 모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장의 요절은 21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 고난의 모본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2장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0절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산 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제사장"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또 우리는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에 대한 가르침에 이어서 이 분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양식]에 대해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본문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양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복음 전도 생활] 입니다. 새로위진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마디로 복음 전도적 삶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째로,[순종하는 생활] 입니다.
셋째로,[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1.복음 전도하는 생활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가 복음 전도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나그네와 행인 의식을 갖고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가 됩니다. 이 땅이 삶의 전부인 것으로만 알고 이 땅을 살아가는 믿음없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나그네가 아닙니다. 이 삶이 그들의 전부 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영생을 소유함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신뢰한 그 순간부터 이 땅에서 나그네가 됩니다. 그리고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나그네가 나그네다운 삶을 승리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1절과 12절 말씀을 보면 특별히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로, 육체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11절> 나그네가 길을 가는 도중에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에게 정욕을 갖고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는 그가 가야 할 목표를 향해서 계속 발걸음을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육체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로, 선한 행실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로, 선한 행실을 통해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나그네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로, 육체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 속에는 우리 영혼의 거룩한 욕망과 대적하고 있는 부패한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부패한 욕망을 우리가 어떻게 다스려서 우리의 영혼이 찾고 있는 그 거룩한 본향을 향해서 계속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나그네의 삶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사실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인 욕망을 다스리며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면서 주께서 우리를 향해서 보여 주신 그 영광스러운 삶의 목표를 향해서 계속 삶의 발걸음을 옮겨나갈 수 있는가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둘째로, 선한 행실에 힘써야 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12절상> 여기에서 [선한]이라는 말은 "보기 좋은, 가치있는, 덕스러운" 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기에서 [선하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올바른 일을 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방인들이 내 삶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자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 불신자들은 여러분을 쉴 사이 없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우리 동리의 이웃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그 순간부터 나를 쉴 새 없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방인 가운데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셋째로,하나님께영광된삶을살아야합니다.<12절하> 불신자들 사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성별되어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눈동자는 계속 우리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하에 따라서 그들이 그리스도 앞에 올 수도 있고 또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작은 실수는 실수로 여겨지지 않습니다만 신자들의 작은 실수는 얼마나 크게 부각됩니까 그러므로 항상 선한 행실에 힘써 불신자들이 보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날에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간증이 나타나고 있는지요 우리가 언어로 아무리 전도해도 우리의 삶이 우리의 언어를 뒷받침 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전달하는 그 멧세지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삶이 우리가 말로 하는 그 전도의 멧세지에 얼마나 큰 능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 사도 베드로는 새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양식에 있어서 복음 전도하는 생활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하기에 합당한 생활, 내 삶이 불신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복음 전도적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2. 순종하는 생활 본문 13절에서 18절까지는 "순종하는 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순종해야 할 대상> 본문에는 두 가지 사회 제도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정부 또는 국가이고<13절-17절>, 하나는 직장<18절>입니다.
국가 안에서, 정부 안에서, 이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순복하는 삶의 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직장에서 윗사람들에게도 순종하는 삶의 모습으로 삶을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성경은 이 사실을 가르칩니다. "순종하는 삶" 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가르칩니다. 반항의 기질을 타고난 우리는 인간이 가진 반항 의식을 지성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말씀은 가르칩니다. 참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직장의 상사와 국가의 대표에게 순종하는 삶이라고 이러한 원리를 젊은이들이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순복하는 삶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동기> 베드로는 어떤 의미에서 국가와 직장에서의 순종을 강조했을까요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 를 위하여] 순복하되" 이 말씀을 보면 우리의 순복의 가장 깊은 동기는 어떤 지도자에게 아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주를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하나님이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정부라는 제도를 인간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보면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고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훌륭한 정부, 훌륭한 정권"이란 악을 잘 징벌하고 얼마 만큼 의를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정부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정부입니다. 또 그런 정부야말로 바람직한 것이며 우리는 그런 정부가 세워지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비단 정치 지도자에게만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권위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권위에게 순복하는 삶을 배우라"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 순복의 삶의 모습을 배우지 못할 때 우리 사회의 모든 질서와 제도는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질서를 강조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순복해야 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이 권위자들을 세우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라고 <로마서 13장 1절>이하에서 바울 사도가 가르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권위들이 무엇을 하도록 세우실까요 악을 징벌하고 선을 격려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십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질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회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이 될 때에는 더 높은 권위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사람에게의 복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복종이 된다면 언제나 더 높은 권위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며 그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위에 있는 지도자들이나 권세자들을 향해서 때때로 우리는 명확히 "아니오" 를 선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이 정부는 모효다!" 그는 제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감옥에 투옥되는 판결을 받았을 때 그 판결을 말없이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모가 나에게 도무지 몰상식한 어떤 요구를 했을 때 또 그대로 하면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해치는 것이 될때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부모님께 "아니오"를 말하고 그런 다음 "그것만은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버지의 말씀을 언제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주십시오" 라는 순종의 태도를 보이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가 나에게 어떠한 처벌을 내리든지 그대로 대가를 감수할 때 나는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우리의 신앙 양심을 지키면서도 언제나 순복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다니엘서 3장을 보시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는 우상 숭배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이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들은 우상 앞에 절하라는 그 명령 앞에 "아니오" 라고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그들을 풀무 불 속에 집어 넣을 때 거기에서 시끄럽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대로 불 속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이때에 이렇게 순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사드라그, 메삭, 아벳느고를 누가 지켜주십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설 줄 아는 삶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정부가 잘못될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로서 예언자적 양심의 발언이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제도를 부인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사도 베드로가 살고 있던 그 시대의 로마 황제나 정부도 그렇게 좋은 왕이나 정부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여전히 성령의 붙들림을 받아서 권력에 순종할 것을 가르쳤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상황을 바꾸어 그것이 정부가 아니라 직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안에서 당신은 순복하는 태도로 일하고 있습니까
18절 말씀을 봅시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나에게 잘 대해 주고 또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주인들에게만 잘 대해 주고 또 인격적으로도 훌률하고 존경할 만한 주인들에게만 순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까다로운 주인, 나를 못살게 굴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까다로운 상사에게도 여러분은 의연히 순복하는 자세를 가지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