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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 (요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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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부터 16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시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고별설교를 한 때는 언제입니까
"저가 나간 후에." 곧 가룟 유다가 나간 후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치 금덩이에 섞인 불순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욕심과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있는 한 예수님은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가 나간 후에는 깊은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모두가 다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거리낌없이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예수님의 깊은 설교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는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33절의 "소자들아"라는 말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들을 뜻합니다. 이들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 순간에는 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알려고 애쓴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깊은 설교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유다와 같이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도 제자들 가운데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1. 첫번째 주님의 말씀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이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밖으로 나간 때입다. 바로 그때에 예수님은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생각에는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곧 모욕적인 십자가에 못박히실 터인데 반대로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정말로 영광스럽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먼저 마3:17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내리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얼마나 영광스런 사건이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소리가 있었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 위에 내리셨으니.
또 막9:2-8에 보면, 정말로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제자들이 보니까 예수님의 옷에서 광채가 났는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이 하도 찬란하고 영광스러워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랍비여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 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이 보기에 영광스러운 장면에서 예수께서 내가 지금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실 것같은데, 오히려 예수님은 그때 그 장면에서는 가만히 계시고 지금 십자가를 앞두고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생각과 우리 주님의 생각이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귀중한 그리스도의 사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영광은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시간 예수님의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예수님을 찬송 합니다. 과연 그 찬송의 제목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신 희생입니다. 이 희생의 십자가없는 예수님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 거민들이 예수님을 찬송하는 제목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은 빌2:8-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성도들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 있다. 가장 영광스런 삶은 희생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월이 지나 우리의 후손들이 한때 어려웠던 이 교회를 생각할 때 누구를 가장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이 교회를 위하여 가장 희생했던 사람을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의 영광된 신앙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침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엘리야-북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바알 우상에 홀로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던 의로운 선지자였습니다. 왕과 신하와 모든 백성들이 바알을 섬기는데 그는 끝까지 혼자 남아서 투쟁하는데 그 얼마나 힘들었든지, 한번은 하나님,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호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은 희생에 대하여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후11:23-28,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복음찬송에 우리가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하고 노래하는데 그렇게 노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희생입니다.
여러분이여, 가장 영광된 삶은 희생하는 삶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자신의 동상 제막식 전날 오산학교의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기 내 동상이 이렇게 섰지만 내 생각에 오늘이 있게 된것은 내가 똥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오산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화장실 시설이 좋지 않아 겨울이면 화장실의 똥이 얼어 붙어서 산을 이루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치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손수 남강 선생이 도끼로 그것을 찍어냈고, 그때마다 얼었던 똥이 튀어 입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상 제막식이 지나고 닷새 후에 그분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시체를 땅에 묻어 썩히지 말고 뼈를 생리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연구하는 데 쓰게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반대로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십시오. 을지로의 빌딩 재벌은 자기가 젊어서 번 돈이 너무 아까워 죽는 순간에도 라면만 먹다가 죽었답니다. 절약이라는 면에서는 존경스러울지 모르지만 이 사람의 삶은 결코 영광스러운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얼마나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습니까 오늘까지 나만을 위하여 살아오지 아니했습니까 내 것, 내 몫만 챙기고 살아왔습니까 주님의 삶을 본받으십시다.
우리의 짧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가장 영광스럽게 장식할 수 있는가 그것은 많은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2) 이러한 확신 가운데 에수님은 모든 의심과 갈등을 해결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일지라도 두렵고 떨리는 무시무시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길이 영광의 길이라는 것을 아시고 모든 의심과 갈등을 물리쳤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일을 하거나 가정의 일을 하는데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면 조금도 의심하거나 갈등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희생이란 나의 인생을 가장 영광스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여, 안일함이냐 희생이냐는 갈림길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과감히 희생의 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에게도 영광이지만 누구보다도 그를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부모가 가장 큰 영광을 얻는 것은 그 자식이 부모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첫째,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즉,인간의 죄에 대하여 형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에 나타났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 하나님은 패역한 인생일지라도 인생을 사랑하시사 그 모든 죄를 그 아들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합니다.
특히 모세와 비교해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메마른 땅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을 공박했습니다. 그러면서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불평했습니다.
이들은 전에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이적,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이적을 보았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번 내리 쳤습니다. 우리는 어떠했을까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세의 큰 잘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럴지라도 저들을 사랑하시고 저들에게 축복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라는 모세가 이렇게 자기의 분을 참지 못하고 잘못을 저질렀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졌던 것입니다.
다시금 예수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립시다. 참으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으나 이 빛되신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끝까지 용서와 사랑을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진정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아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사랑으로 잘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남편이나 아내가 나를 이유도 없이 핍박하거든 같이 분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요즘 신혼부부가 결혼하자 말자 이혼하는 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요 그렇게 하면 당장에는 편할지 모르지만 결코 영광스런 삶이 아닙니다.
서로를 위해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 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허물이라도 용납하십시오. 이러한 믿음의 행위로 내가 영광을 받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 예수 그 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너머에는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온 우주에 대한 통치권을 얻으시고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바울도 고난 이후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았다(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영광된 삶, 후회없는 인생을 원하십니까 그것은 내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인 삶입니다. 나의 희생을 통하여 먼저 내 자신이 영광을 얻고 하나님이 영광을 얻습니다.
진정 여러분은 영광된 삶을 살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주님의 뜻을 위해 주님이 사랑하는 모든이를 위해 여러분을 희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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