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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생활2 (벧전 02: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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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난을 딛고 승리하는 생활--사도 베드로는 이제 2장 19-25절에서 고난을 딛고 승리하는 생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인내의 덕을 가지십시오--"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19절> 애매히 고난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애매하게 억울한 누명을 쓴 일이 있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경험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할 때가 많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20절> 다시 말해서 고난을 딛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여러분은 참을 수 있습니까 그때 우리의 기질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성격을 가다듬지 못해 길길이 날뛰면서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슬픔을 참으면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억울해서 어떻게 합니까
오늘 우리의 현실은 자꾸만 권리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현대의 철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그 권리를 주님앞에 다드려 보십시오 그러면 주께서는 아름다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면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6-19절>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일임하지 않고 내가 하겠다고 내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내가 하겠다고 날뛰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월권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일을 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에도 진정하십시오 그리고 이 순간이야말로 주께서 나에게 인내의 덕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주신 삶의 중요한 기회로 받아들이십시오
둘째로, 그리스도를 모본으로 삼으십기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21-23절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고난을 딛고 승리하는 생활을 하면서 인내의 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인내의 덕을 가지고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21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바로 이러한 삶을 위해서, 즉 애매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맡기고 참고 인내할 수 있는 이런 삶을 위해서" 라는 말로 이 말씀이 시작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모본,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토마스 아켐피스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잇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중요한 일입니까 여기에서 [본]이라는 말은 "아래서 열심히 쓰다," 더 정확히 말해서 "베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삶을 베껴야 합니까 예수님의 삶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를 닮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을 모방해야 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애매히 고난을 당하신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편을 잘 이해하십니다. 내가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 그때 나는 그리스도에게 가장 가까워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정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22절 말씀을 보면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일단 내가 애매하게 고난을 받았을 때 그것은 물론 상대방이 잘못한 것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억울하게 고난을 받을 때 그 반응을 잘못해서 내가 분에 못 이겨 날뛰다 보면 나도 범죄하게 됩니다. 범죄는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죄를 범했어도 우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가 억울한 일을 만날 때 우리 몸 가운데 제일 먼저 활동을 시작하는 부분이 어디입니까 "입"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억울하게 애매한 일을 당하시면서도 그 입에 궤사가 없으셨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부분을 얼마나 잘 묘사했습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오해받고 괴로운 일을 만날 때 최선의 삶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침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침묵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난당하고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시면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거리를 걷던 예수 그리스도의 침묵을 생각해 보십시오.
23절 말씀을 봅시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욕하기 쉽고 상대방을 위협하기가 쉽습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욕하지 아니하시고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그리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 앞에 부탁해야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이 주장하시도록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타인의 유익을 구하십시오
본문 24,25절을 보면 예수님은 타인의 유익을 구하셨습니다. 그 애매한 고난을 받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이웃의 유익을,타인의 유익을 구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애매히 고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치료하고자 하셨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고난의 와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주님은 그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생각지 말고 주님을 위해 몸된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유익을 위해 기도하며 희생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희생도 해 봅시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영광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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