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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와 보라 (요 01: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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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바라는바는 성도들의 신앙이 굴곡이 없이 계속하여 성장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소원과 같이 성도들이 자라주지 못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신앙에 굴곡이 있습니다. 울라갈때도 있는가 하면 내려갈때도 있습니다. 도약할때가 있는가 하면 침체될때도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신앙이 계속해서 침체되고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는것을 보게 될때면 목회자는 죽을 맛이 되는것입니다. 허긴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다 구원을 받은것은 아닙니다. 제멋대로 따르다가 제멋대로 가버리는 이름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었으니까요.

그러나 어쨌든가에 성도들이 신앙이 문제가 생기게 되면목회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멧세지도 강하게 책망도 해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해보고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를 어느정도 해보면 사람들의 얼굴만 처다봐도 그사람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습니다. 이사람이 정말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억지로 나와 앉았는지 은혜를 받는지 지금 딴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지를 알게 되는것 입니다.

여러분 제가 설교를 잘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것이 아닙니다.사도 바울이 말씀하신것과 같이 은혜받기로 작정된자 구원 받기로 작정 된자는 다 은혜를 받는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문장력이 좋고 논리적이고 웅변적이어야 되는것만도 아닌것 같습니다.

문제는 은혜받을수 있는 그릇이 되어 있으면 저절로 은혜를 받습니다. 또 은혜라고 할때에 많은 사람이 어떤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데, 은혜는 첫째가 깨닫는것 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최 권능 목사님은 무식하기로 유명합니다만 그분의 멧세지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라는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가장 짧은 설교가 예수님의 닭울음 설교 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 그의 완악한 마음이 깨어지고 통곡을 하게 되었던것을 보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이 소년시절에 어느 시골 교회당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날밤 설교자는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밤 설교제목은 ‘나를 바라보고 구원 얻으라’라는 말씀인데 본문 말씀외에는 별로 할말이 없는 설교 였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여러분,이것은 정말 간단한 본문 입니다. 그냥 보라는 말씀 입니다. 보는것은 별로 수고 스럽지 않습니다. 그냥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십시요 그냥 바라 보십시요.” 이렇게 10여분을 설교를 한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발코니 쪽에 앉아 있는 스펄전을 바라보면서 물어 보았습니다.“젊은이여,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한마디 말에 스펄전의 무릎을 꿇게한 설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은혜는 얼마던지 넘칠수가 있습니다.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님앞에 나오면 바로 거기서 놀라은 신앙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는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말을 바울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은혜받는 중요한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목청을 돋우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아름다운 문장으로 설교를 만들어 웅변적으로 설교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씁으로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제가 틀린 말을 하지않기 때문에 당신말이 옳아 하면서 참고는 할런지는 몰라도 순종하여 살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은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은혜의 생활도 할수 없는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인간적으로 여러분 보다 우월한 부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 부분은 하나님의 전권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멘으로 순종하여 은혜받으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세례요한이 자기의 제자 안드레와 요한을 예수님께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과연 예수님의 제자이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따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이십니까 혹시 마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재물 때문에 따르지 못하고 결국은 멸망의 길을 선택하여 간것 처럼 다른길을 걷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따르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까이 따르셔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디 계시오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왜 입니까 주님이 계시는 곳에 저들도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2:26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와 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과 함께 하자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예수님을 배울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짧은 한마디의 설교에 안드레와 요한이 깨어지고 수가성 여인이 새 생활을 시작할수가 있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될때에 “모세의 율법에 기록했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다고 할때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날수 있느냐고 부정적으로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빌립은 “와 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와야 만날수 있습니다. 사실 나다나엘도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의 고정관념 어떤 틀 또는 나름대로의 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어떤것을 평가 해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전 T.V에서 보았는데 일본에서 버리는 쓰레기 옷을 수입해다가 그것을 세탁하고 다림질을 잘하여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합니다. 외국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저들이기에 쓰레기 까지 수입하는 부끄러운 모습 입니다.

나다나엘도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빌립은 “와 보라”고 한것 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단순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식의 한계를 깨고, 지성,감정,편견의 한계를 깨고 겸손히 하나님앞에 서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수 없습니다.

교회의 외형이 어떻든간에 목사가 어떻게 생겼든간에 흥미가 있건 실망스러운 사람이 있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겸허히 나와 설때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작년에 안강자 집사님의 간증 집회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전도의 대상을 만나게 될때에 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올때 까지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절을 당합니다. 욕을 합니다. 경비에게 신고를 해서 끌어 내기도 합니다. 물바가지를 뒤집어 쓰기도 헀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으니까 9천명씩이나 전도를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 여인의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쫒아와 자기의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합니다.그런데 예수님은 못들은척 하시면서 그냥 지나쳐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계속하여 예수님의 뒤를 쫒아 오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면서 끌지기게 조르고 따라오니까 결국 예수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면서 고쳐 주신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모인곳이기에 부딛치는 일이 많이 있을수 있을 것입니다. 내 지성에 부딛치고 내 상식에 부딛쳐고 내감정에 부딛쳐도, 예배에 열심을 내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충성하야지, 아니면 천국에 안갈것 입니까 여러분 내 기분에 따라 천국이 주어지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것 입니다.

안드레와 요한이 와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제자가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나다나엘도 예수님께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와 보라 ”는 말에 순종하므로,“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고백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이 예수님이 당신의 생애를 주장하시는 왕으로 모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있어 무엇보다 최우선이 예수님이 되시는지 여러분은 솔직히 자신에게 물어 보셔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 질문 앞에 여러분의 대답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여러분은 빨리 회개 하시지 않으면 안될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것을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 입니다.이런 사람은 대개가 마19장의 부자 청년과 같이 결국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됩니다. 바울을 따르던 데마와 같이 세상으로 가버릴수 밖에 없기 때문 입니다. 또 신앙생활을 한다해도 항상 은혜밖의 생활을 하다가 확신없이 생애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와야 믿음의 체험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롬1:17에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믿음이라는것이 가만히 집에 앉아 있어도 자라는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고 믿음으로 봉사도 하고 믿음으로 전도도 할때에 그믿음이 자라게 되고 더 큰 믿음의 역사도 체험하게 되므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는줄 믿습니다. 요한복음1장50절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이 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에 열심을 내야 믿음이 있고 믿음도 생기고 또 믿을떼에 축복도 경험하게 될것이고 능력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발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열심있는 신앙이 아니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장사하고 나서 예수님을 쫒겠습니다.식구들과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했는데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이 어떠한가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소망교회가 아니면, 열심을 낼텐데 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기꺼이 보내드리오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열심히 못하는 사람이 다른곳에서 열심히 할수 있을까요 여러분 신앙은 취미가 아닙니다. 악세살이 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생명입니다. 목숨을 걸고 해야합니다. 대통령과 같이 바쁜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분도 주일을 범하지 않고 지키는데 신앙에 생명을 거세요 제가 수지맞을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명에 관한 일이 되기 때문 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오기전에 자신이 예수님께로 나온줄로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나오고 나서 깨달은것은 주님이 그를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있지 않고 테레비 앞에 계실때도 지켜보시고 가족과 어울려 야외에 나가 노시고 계실때도 지켜 보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아마도 아파하실 것입니다. 왜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더욱 아프실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내가 기대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거나 기대한 만큼의 사랑을 해오지 않을때 마음이 아플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 대해서는 세삼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또 제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을 한들 그사랑에 대해서 만분의 일도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어떳든간에 예수님은 나의 죽는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내 대신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사랑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를 짝사랑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리고 계신데 우리는 엉뚱한 데서 다른것으로 기쁨을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것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간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셔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오셔야 합니다. 찬송의 자리에 나오셔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오셔야 합니다.나오셔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이 있는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 입니다.몸이 드려지지 않고 마음이 드려질수가 없습니다. 아내에게 입술로만 사랑해요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한두번은 속일수 있을런지 모르나 안속을 것입니다. 주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실망 시켜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앞에 나오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신앙으로 복된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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