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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의 하나님 (고후 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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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열변을 토하는 후보들의 유세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한번 실망할 인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대통령이 해결해 줄것 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로 한편 후보들의 말을듣다보면 우리의 삶이 금방 부자가되고 유토피아의 세계가 열려질것같은 착각에 빠지게도된다.

그러나 유토피아라는 의미가 살상은 없는것이라는 말처럼 한낮 무의미한 공약이라고 생각하면 속 편하다. 그들의 초두의 관심은 경제에 있다. 이것은 모든 자들의 관심이 돈과 부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씁쓰레한 결과이다. 대통령은 경제보다도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이 민족에게 소망을 주고 참된 삶의 가치를 느끼며 살 수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과거가 생각난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면서 경제5개년계획을 세우고 민주주의는 사장되고 노력하여 정말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도덕이 무너지고, 범죄는 들끓고 국민의 정신은 썩어갔다. 지금도 못사는 나라가 아니다. 정말 잘사는 나라다. 문제는 더 잘살아야 한다는 욕심과 만족없는 욕망의 꿈틀림 속에서 육신의 삶에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영적인 회복과 도덕성의 회복이다. 물질보다도 정신적인 문제이다. 인간일 수있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경제가 아니라 의미와 삶의 가치의 발견이다. 하여튼 우리는 기도하여야 한다.

한편 몰려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됩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남이 알지 못하는 많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 괴로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부딪치며 받은 상처들. 가정생활에서 오는 갈등, 자녀로 인한 괴로움, 실패의 아픔, 육신의 질병으로 오는 아픔, 사랑하는 자를 잃어야 하는 상처, 믿었던 사람으로의 배신, 이러한 것들의 상처가 쌓여 마음은 병들고 고통은 심합니다. 뿐아니라 그 상처는 외로움과 고독감 그리고 삶의 의미가 상실된채 마음은 약해집니다. 그리고 인생을 비관하며 쉬운 말로 인생의 재미가 없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소외감이란 자기자신이 타자로 느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신이 전혀 남같이 느껴집니다. 나아가서 자신과 관계된 모든 자들이 남같이 느껴집니다. 남편이, 아내가, 친구가,자식이, 나하고 상관없는 남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존재는 의미없고 쓸데없는 허공에 떠있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소외감' 이것은 우리의 삶에 기쁨을 빼앗아가는 인생의 중요한 위기입니다. 그런데 이 소외감이 왜 나타나느냐 하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살아온 삶이 진실로 하나님의 존재를 좇지 않고 우상을 좇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무것도 아니것 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것을 좇았으니 삶이 허무하고 공허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삶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인생의 본분과 삶의 목적을 위하여 살은 것이 아니라, 물질과 욕망과 부와 명예와 세상적인 만족을 위하여 살아왔드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현대인은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만져주고 치료할 위로자를 찾고 있습니다. 위로 받기 위하여 때로 그들은 쾌락을 찾기도 하고, 마약을 먹기도하고, 사랑에 바지기도 하며, 세상적 취미활동도 시도하고,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세장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허탈감과 더 아픈 상처와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진정한 위로를 찾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현대인의 성경) 3절,4절 ``자비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분은 온갖 고난을 겪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짧은 절에 `위로'라는 단어가 자그마치 10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을 `위로의 장'이라고 별명을 부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인생들을 위로하시는 사랑의 분이십니다. 끊없는 갈등과 좌절과 실패와 탄식이 잇는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 이십니다.

사 40:1절에 보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헨델의 메시야는 이 성경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소프라노영창입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이 곡을 지은 헨델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감격스러웠던 것이며 그가 보내신 그리스도가 죄인된 인생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게시록 7:17절에보면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했습니다.

사 66: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하시며, 우리의 눈의 눈물을 닦으시고, 새로운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의 의미는 `위로자'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늘 우리와 함께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위로하시며 용기와 힘을 주시고 소망과 변화를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는 믿음을 통하여 받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의 마음 속에 넘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승리하신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에게 위로가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분의 역사를 믿을 때에 우리는 그 분의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어떤 장로님-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한 후 등록금을 마련하여 서울로 오니 하숙집에서 자던 아들이 연탄까스로 죽었다. 말할 수없는 아픔과 슬픔이 복받쳤지만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기를아들을 잃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게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바 치는 헌신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들을 잃었으나 그것을 통하여 얻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위로를 얻었습니다. 장례식날 사람들은 예수 믿다가 망했다고 비웃었지만 그 분은 말하기를 내 아들 대학 못보냈지만 장학금을 마련해서 다른 사람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하여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 분은 아픔을 당한 사람에게 앞장서서 위로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위로는 그 분의 역사와 능력으로 나타난다.

10절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이와같은 믿음을 가지고 환란의 때에 마음에 고통과 아픔이 있고 하염없이 눈물만 날때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도우시며 문제를 해결하시며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기쁨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예)나인성과부의 아들을 살리므로 과부를 위로 하셨습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분명한 이유는 9절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나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러기에 우리가 고난의 때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분을 의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분의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위로 하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합니다.

4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함께 고난 받는 사람으로서 고난 받는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면 그것처럼 영광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받은바 은혜가 있는 그리스도인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활용할 때 우리가 받은 고난은 더욱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간증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겨온 과정을 말하므로서 다른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와 소망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예)최수동목사-두다리가 없는데 그러한 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두다리선교회를 구성하고 병원을 순방. 그래서 다른사람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또 건강하면서도 실패하고 아픔속에 좌절한 자들에게 위로를 주며 새로운 도전을 준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일로 고통한 자들은 가정의 일로 고통하는 이들에게, 사업의 실패를 경험하였으면 그 일로 고뇌하는자들에게, 질병으로 고생한 이들은 그러한 자들에게, 사랑하는 잃었던 자들은 또한 그들에게, 이별을 맛본 자는 그들에게 위로할 수있는 하나님의 일꾼이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은 하나님이 새로이 나를 쓰시려는 기회임을 인식하시고 그받은 바 고난을 고난으로 끝나지 말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욱 많은 은혜를 받고 또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지혜자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고의 위로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11절)

결론)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은 눈물과 고난의 삶의 연속입니다. 남 모르는 아픔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안고있는 상처는 너무나 큽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늘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지하여 크신 위로를 받기를 축복합니다.

나아가서 이웃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인생이 아니라 이웃에게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는 가치있고 휼륭한 인생으로 성숙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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