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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초상화 (마 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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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인정 받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11:26에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부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호를 받은 것입니다.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일하는 제자들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인식했다는 것인데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야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책 가방을 들고 교회에 가기 때문에 저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정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정말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날때 다른 사람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닮았다.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아냥 거리는 말로 예수쟁이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고 성실하고 거룩한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라 인정하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5장에서 7장까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휼륭한 말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따로 산으로 데리고 가서 주신 말씀인데, 이 말씀은 주님께서 그리신 그리스도인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살아야할 삶의 모습,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할 신앙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성도의 기쁨과 행복이 선함과 아름다움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말씀을 시작하실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전제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산상수훈을 받을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삶이라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 이상한 초상화를 주님은 그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신에 대한 평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외적인 환경이나 형편의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볼때 자신이 너무나 가난합니다. 만족할 만한 것이 하나없습니다. 자만심이나 긍지를 가질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같이 ‘내 속 곧 육신에 선한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는...말을 인용하여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것은 바로 이 가난을 통해서 부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가난을 볼줄 아는자에게는 하늘 나라에 있는 자기 재산을 볼수가 있습니다.

두번째가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가난함과 또 이웃을 위해서 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개인 구원입니다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마음때문에 어려움중에 있는 사람이 위로와 용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의 행복감은 하는 사람이외는 모르는 것입니다.

세번째 온유한 사람입니다. 겸손함과 온유함은 자기가 받은 상처를 수용하며 대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받은 것에 칭찬이나 자랑을 더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겸손과 온유한 사람은 칭찬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 영혼에게 무엇을 요구하던지 온유는 그것에 순종하며 성취시키며 하나님의 뜻에 만족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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