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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타신 나귀처럼 (막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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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얼마 있지 않으면 부활절이 다가옵니다마는 그 날짜가 해마다 틀리다는 것을 잘압니다.
그것은 ‘춘분이 지난 만월후 첫 주일’이 부활절이기 때문에 날짜가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사실은 부활주일 전주일을 우리는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에 길가에 환호하는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로 맞이했다고하는데서 유래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이 바로 종료주일에 되어진 일인데 예수님께서는 슥9:9에 예언된 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슥9: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특히 예수님의 거룩한 사역에 나귀가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타신 나귀처럼”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면서 은혜와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1.주님께서 찾으신 나귀처럼

여기 나오는 나귀는 주님께서 친히 찾으신 나귀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감란산 뱃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들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맞으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 가면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볼것인데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나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우리는 잘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나귀를 찾으셨습니다.

그때 어찌 이 나귀만 있겠습니까
잘 모르긴해도 그 당시에 나귀는 많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이 나귀였겠는가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주님이 찾으셨던 나귀처럼 !
보잘것 없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로 찾기움을 받았다는 사실 !
그래서 지금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 !
그 알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그 얼마나 고마은 일 입니까,
“날 불러 주시니 고마와라”

공로없어도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죄 투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다면 엡 1:5에“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라고 했고,
요1:7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라고 해씁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함받은 내 편에서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이 놀라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저와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을 찾아 주셨답니다.
주님이 찾으신 나귀처럼 말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2.주님이 선용하신 나귀처럼

이 나귀를 주님께서 선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 제자가 갔더니 나귀와 나귀새끼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풀고 있을때에 어떤 사람들이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이르신대로 대답을 했더니 곧 허락을 하였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우리는 누구에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마치 칼을 사용할 때에 그 칼을 누가 잡고 쓰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지만 그 칼이 요리사에게 잡히면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지만 강도의 손에 잡히면 사람을 해치는 칼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러분은 지금 누구의 손에 잡혀 쓰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라건대 마귀나 세상 어떤 것에게서 잡혀 쓰이지 말고 오르지 우리 주님께 잡혀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에 영광돌리는 일에 선용되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3.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린 나귀처럼

이렇게 주님께 쓰임을 받을 때에 놀라운 축복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등에 태우고 가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기가 가는 곳에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경호원처럼 자기 앞에 호위해가고, 뒤에도 따라옵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면서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만 눈이 휘등그래 집니다.

보통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옷위로 걸어가지요, 많은 인파들의 환영과 경호를 받아 걸어가니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 나귀가 그러한 영광을 받게 되겠습니까

바로 예수님때문입니다.
비록 약한 체구였지만 쭈님을 태우고 가니까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무겁고 피곤했지만 주님을 자기 등에다 모시고 묵묵히 참고 걸어가니 그 영광을 자기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모릅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주님만 모시고 가면 이런 축복이 있습니다.
좀 힘이 들고 괴롭더라도 참고 묵묵히 걸어가면, 주님의 영광에 동찹 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태운 나귀는 나귀새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 사람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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