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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실패 (마 14: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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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적극적인 자세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요청은 주님을 향한 용기 있는 기도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확인한 순간에도 여전히 엄청난 파도가 뱃전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지금 이성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정도를 걷고 있었다. 주님이라면 그 일도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한편 이 요청 속에는 주님이 오지 말라고 하면 그냥 이곳에 있겠다고 하는 뜻도 담겨져 있다.
예수께서는 부르짖는 베드로의 간구에 즉시 오라고 응답하셨다.
주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성도들이 어떤 상황에서 기도하여도 들으시는 분이시다. 그 간구하는 내용에 따라 합당한 응답을 주신다.어떤 기도는 무반응의 응답을 주시고 때로는 내용에 따라 즉시 허락하시기도 한다.더욱이 주님의 응답에는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본문의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물 위를 걷게하는 기적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물위를 걷는 인간 최초의 기적을 체험하였다.
성도는 생활 가운데서 역경을 수없이 만날 수가 있다.
그 역경이 있을 때일수록 정확하고 분명한 신앙으로 주 예수를 향하여 기도하되 독백의 기도나 중언 부언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바른 뜻과 응답을 기다리는 바른 기도를 드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기도에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다.
베드로의 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기도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에서 기도의 바른 태도를 배워야 한다.이러한 자세가 있을 때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에 대한 알방적인 통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인 것이다.

II. 실패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것은 좋은 시작이었고 훌륭한 시작이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성공의 비결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실패하였다. 그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던 시선이 바람과 풍랑에게로 돌렸기 때문이다.하와가 사단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바라본 것이 범죄의 출발이 된 것처럼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던 시각에서 파도를 바라봄으로 실패를 자초하였다.
성경은 철저히 성도들에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고하였다.
주님을 바라보고 가던 베드로는 그만 실패의 느낌을 갖고 말았다.
베드로를 순간적으로 두려운 감정에 쌓이게 한 것은 환경이었다. 감정은 철저히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성도는 환경 속에서 역사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지 환경만을 바라보면 실패의 늪 속에 빠져 버리게 된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던 신앙의 승리에서 순간적으로 그의 시각과 느낌대로 실패하여 물 속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풍랑을 바라봄으로서 환경에 감정이 지배당했고 이러한 두려운 감정은 순식간에 그의 신앙을 지배해 버렸다.
성도는 자주 넘어지고 실패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실패가 없는 분이시다. 주님 앞에서 실패한 베드로를 건져 올리시는 예수님이시다.승리 하게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관념적이 아니고 행동적인 것이다.
물에 빠져 가는 베드로가 ‘주여,나를 구원하소서 ’할 때에 예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아 주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실패란 없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건져 주신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요나의 경우가 그러한 것처럼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모든 시험에서 넉넉히 이길 수가 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III. 주님의 꾸짖음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시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바람과 파도를 두려워하며 물 속에 빠져 가던 베드로가 구원해달라고 소리칠 때에 주님은 손을 내밀어 건져 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질책하셨다.
의심하는 믿음은 그 어떤 선한 결과도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의심하지말라고 하면서 의심하는자는 아무것도 주님께 얻을 생각을 말라고 하셨다.
의심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과 은혜의 언약들을 믿고서 오직 신실하신 주님을 앙망하며 전진하는 믿음이다. 주님은 오늘도 큰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사역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며 그러한 성도들을 인정하여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믿음이 적어 의심하여 물에 빠져 갈 때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며 스승으로서 그를 꾸짖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베드로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온전한 스승의 모델이 되신다.
역경에서 구하여 주셨고 그의 잘못을 지적하여 주셨다.
지적이 없는 구원은 또다른 실패를 묵인하는 것이며 구원 없는 지적은 정죄요 참소에 지나지 않다. 실패한 베드로를 주님은 여전히 제자로 여겨 주셨고 동시에 친절한 스승이 되어 주셨다.

꾸짖음은 관심의 표현이며 사랑과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즉각적인 교육적 관심으로 가능하였다.
더 나아가서 예수게서는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서도 즉각적인 교육과 시정을 원하신다.
성도들이 신앙의 곁길로 행할 때에 나타나는 징계와 책망은 바로바로 예수님의 즉각적인 교육이며 시정의 요구이다.
성도들은 주님의 꾸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따라 새로워지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도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관심을 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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