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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사렛 사람 (마 02: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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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생애는 공적생애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공생애 이전의 기록은 탄생과 유년시절에 대한 짧은 언급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30세에서 33세까지의 기록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 이전의 생활에 대해선 거의 기록이 없습니다.3년 동안의 기록이라는 것도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사역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지 사생활에 관한 언급은 아닙니다.자세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추측과 억측이 분분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공적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청년시절 인도에 갔었다는지 석가의 문하생으로 불도를 닦았다느니 하는 말들입니다.
한때 시중에 그런 것들을 마치 화제작인양 찍어 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본교단 총회는 그러한 부류의 책들을 반기독교 서적으로 규정하고 전국 교회에 알린바 있습니다.
반기독교 서적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김은태 저:「성경속의 참 진리」,「정도령」
김종성 저:「부시맨의 하나님」,「우주인과 예수」
라즈니쉬 저:「나를 따르라」
로이 아모르 저:「성서 속의 붓다」
민희식 저:「성서의 뿌리」
안경전 저:「성서의 뿌리」
윤청광 저:「불공과 성경」
일레인 페이젤 저:「성서 밖의 예수」
임학산 저:「기독교는 과연 진리인가」
「불교와 기독교의 진리비교」
종교문제연구소 편:「법화경과 예수」
증곡 문응 저:「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연구」
클로드 바리톰 라엘 저:「진실의 서」(우주인이 내게 준 메시지」
트레이링 저:「붓다,마르크스,그리고 하나님」등입니다.
총회 이단 연구소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기독교의 진리를 음해하고 파괴하려는 반기독교 서적이 출간될 경우 그 실체를 연구하고 밝혀낼 것입니다.
열두살 되던 해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는 복음서의 기사로 미루어 볼 때 유년시절의 행적은 부모와 함께 나사렛에서 사셨으므로 문제될게 없습니다.문제는 13세에서 29세까지의 행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후반부인 3년 동안입니다.
30년동안 음식은 뭘 잡수셨느냐,옷은 몇벌이나 입으셨느냐,무슨 색깔을 좋아하셨느냐,여가를 어떻게 보내셨느냐 하는 등의 일상적인 주변 이야기나 사사로운 것들은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3년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300년을 살아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셨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셨습니다.그뿐입니까.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그리고 다시 사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헤롯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19절을 “헤롯이 죽은 후에”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20절을 보면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예수가 탄생했다는 동방박사의 소식을 듣고 세살이하의 유아를 무차별 학살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안티파텔(Antipater)의 아들로 주전 37년에 유대왕으로 취임했습니다.그는 몰락해 가는 자신의 인기를 만회하고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제3성전으로 불리는 헤롯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의 사생활은 불륜의 극을 치닫고 있었습니다.예를 들면 그는 열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고 후계자로 가장 유력시되던 도리스(Doris)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살해했습니다.
헤롯이 70세 되던 해,그가 왕이된지 38년 되던 어느 날,자기 아들을 살해한지 5일째 되던날 그는 죽었습니다.
유명한 교회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s)을 기록에 의하면 그가 죽은 곳은 여리고였는데 무섭고 더러운 병에 걸려 그 내장이 썩어 죽었다는 것입니다.헤롯이 죽이려던 아기는 잠시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왔고 헤롯은 죽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기는 살고 왕은 죽었습니다.아기와 왕의 대결에서 아기가 이겼습니다.
상식밖으로 말하면 아기가 죽고 헤롯이 살아야 됩니다.그런데 아기는 살고 헤롯은 죽었습니다.핍박자는 죽었고 핍박을 받은 자는 살았다는 것입니다.
헤롯이 다스리는 헤롯왕조는 몰락했습니다만,아기 예수의 왕국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세상것들,예를 들면 권력,금권,지식,명예라는 것들은 헤롯처럼 얼마동안만 누리는 것들입니다.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그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다든지 믿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영원합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53:2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 것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연한 순처럼 약하고 모양도 풍채도 보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9:6을 보면 메시야로 오실 주님의 모습이 정반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와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두 구절 속에서 예수님의 두면을 보게 됩니다.연한 순같은 예수,그러나 전능하신 왕이신 예수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1:14-15에 묘사된 예수님의 모습은 더 위엄찹니다.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7을 보면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약한 것이 강하고 부드러운 것이 질깁니다.폭력과 살인을 일삼던 헤롯 왕조는 몰락했지만 어린 예수,어린양의 왕국은 영원합니다.

2.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20절을 보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했고,21절을 보면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20-21절 속에서 명령과 순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이 명령은 요셉에게만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그 아들 이삭도 가나안 땅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야곱도 하란에서 20년을 살았지만 결국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만 그들도 민족 대이동을 거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지금도 세계 민족 가운데 가장 조국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유태인들입니다.
결국 그것이 시온이즘(Zioism)으로 고정되면서 외면당하는 독선으로 변형되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이스라엘 땅」지키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스라엘 땅」은 어떤 의미를 줍니까.그것은 신령한 뜻으로 풀어보아야 합니다.신령한 영토,믿음으로 받은 기업,영원한 가나안 땅을 떠나면 안됩니다.
주님이 주신 땅,주님이 계시는 곳,주님과 영원히 살곳이 가나안 땅입니다.만일 어떤 이유 때문에 그곳을 잠깐 떠났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본문을 주목하십시다.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고 했습니다.아기와 모친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의 순종은 단호하고 결단적입니다.헤롯이 죽긴 했지만 아직도 위험이 전부 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러나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주저하거나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경가 딕슨은 “우리가 받은 명령이 분명하다면 순종도 신속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애굽을 세상으로 이스라엘 땅을 영원한 가나안으로 대비시킨다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유의해야 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애굽을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400년을 살았든,40년을 살았단,4시간을 머물렀든 그 곳을 완전히 버리고 떠나 가나안으로 가야 합니다.
미련을 둘 것이 있고 두어선 안될 것들이 있습니다.애굽은 세상입니다.거기에 미련두면 신앙적 행진이 어려워집니다.버릴 것은 버립시다.떠날 곳은 떠납시다.
둘째는 즉시 결단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고 연구해 보고 떠나선 안됩니다.하나님의 명령은 연구 검토,분석 평가가 필요치 않습니다.
명령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무조건 당장 순종해야 합니다.즉시 순종하고 행동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3.나사렛 사람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8절을 보면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했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마을로 해발 1600척의 고지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였습니다.예루살렘으로 부터의 거리는 56마일 정도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 혹은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구약의 예언자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는 나사렛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둘째,애굽에서 돌아온 후 나사렛에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다른 예수와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 당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구분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넷째,예수님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서울은 예루살렘입니다.그곳에 성전이 있었고 의회가 있었고 총독부가 있었습니다.그러니까 정치,경제,군사,종교의 중심지였던 것입니다.뜻을 가진 젊은이는 누구나 예루살렘에 대한 동경과 꿈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다시 말해 성공이나 출세의 길을 트려면 예루살렘으로 일찍 진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렛에 계셨습니다.물론 유월절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그리고 그때마다 예루살렘의 치부와 타락상을 보셨을 것입니다.
나사렛을 중심으로 시작하신 복음 운동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요즈음 선거 용어로 표현하면 지방에서부터 세몰이를 시작하여 서울로 진입한다는 작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최종목표는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여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은 시골입니다.거기는 순박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입니다.인정이 있고 대화가 있고 온정이 있는 곳입니다.
기독교는 나사렛 종교이지 예루살렘 종교가 아닙니다.시골 종교란 말입니다.
나신 곳도 시골 동네 베들레헴입니다.자라신 곳도 나사렛 시골동네입니다.하신 일도 시골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목수 일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로마 황제나 유대황제가 만든 종교가 아닙니다.나사렛 사람 예수가 시작한 종교입니다.
성탄절은 베들레헴 예수,나사렛 예수를 축하하고 감사하는 계절입니다.예수님을 믿기 쉬운 이유가 있다면,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베들레헴과 나사렛 예수라는 것입니다.
주님 나심을 깊이 감사하고 축하합시다.그리고 나사렛 사람 예수를 만방에 전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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