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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기뻐하는 자 (마 0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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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에 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기록된 것을 보면 (28장)1) 세례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예전.

2) 합법적으로 안수받은 목사가 물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준다.

3) 세례받을 사람을 물 속에 잠그는 것은 필요치 않다. 그 사람의 머리에 붓 든지 뿌려서 베푸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다.

4) 그리스도에 대하여 실지로 믿음과 복종을 고백한 사람 뿐 아니라 부모가 다 믿거나 한편만 믿는 집 아이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

5) 이 예전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큰 죄다.

그러나 세례를 안받았다 하여 중생할 수 없다던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든 가 또는 세례받은 사람이 모두 분명히 중생하였다고 할 만큼 이 세레와 은 혜와 구원이 부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6) 세례의 효력은 그것이 행해진 시간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7) 세례 성례는 어느 사람에게든지 한번만 베풀 것이다.

 현재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의 원형은 세례 요한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유대인들에게 전통적으로 할례의식이 있었다. 신약시대에 들어 와서 세례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고백한 사람에게 베푸는 성례전으로 전해 져 내려오고 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 세 복음서가 모두 취급하고 있다.

그 중에 마태의 것이 가장 자세하다. 마가는 세례받으신 사실 만을 전하고 누 가는 세례받으신 그때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을 첨가하였다.(눅 3:21) 요한은 세 례요한의 말로 지나가듯 세례받으신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시기는 그가 자라나신 나사렛을 떠나 처음으로 유다 지방에 오신 직후였다. 마침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세례받기 위하여 요한에게 나아오고 있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준다.)

요한의 주변에 나아 온 사람 중에는 서로 다른 두가지 태도가 있었다.

 1. 관망하며 시험하기 위하여 요한에게 나온 사람들 ... 바리새인 사두개인 요한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하였다. 요한은 그들에게 회 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책하였다 .

 2. 순수하게 세례받기 위하여 나온 사람들 ... 백성들과 예수님.

죄를 고백하고 거듭난 삶을 바라며 나아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에 예수님의 모습이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을 발견하자 그에게 겸손함을 나타내 보였다.

'내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

요한은 주님의 세례 요청을 극구 사양하였다. (14) 요한은 예수를 처음 보는 순간 그가 메시야이심을 눈치 채었다. 어떻게 그것 이 가능한 일인가 그것은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는 하나님의 계시 때문이다.

세례에 무슨 의미가 있어서 요한은 사양한 것일까 세례는 죄 씻음 받는 표이다.

요한은 자신이 그분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할 존재이지 그리 스도께서 자기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생각에서 거절하였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것을 거절한 이유는 분명하다.

세례 요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은 죄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이 회개하도 록 하는 일이다. 그런데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자신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 은 거룩하신 분이 스스로 거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으로 판단된 것이었다.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거룩한 것처럼 꾸미는 것은 외식의 죄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분이 거룩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낮추는 것은 지극한 겸손이다.

요한은 세례를 요청하는 예수님 앞에서 감히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존재' 임을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요한은 참으로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다.

성령이 그의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보고 이 분이 메시야인 줄 알았고, 세례를 요청하시는 그분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이심을 거듭 확인 하였다.

 결국 요한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이제 허락하라' 이 말은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첫번 음성이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우 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였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하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줄 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옳게 여기시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 요한의 말한 바 의란 좁은 의미에서의 의일 뿐 이다. 그것은 율법적인 의미에서의 의인 것이다. 그런 정의에서 예수님에게 세례 를 베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의를 이해한다면 요 한의 세례는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가하니라 하는 말씀의 의미는 내가 이미 하 나님의 뜻을 따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왔고 세상 모든 죄를 담당하고 십 자가에 죽고자 하노라 하는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는 육신의 부모님께 속하여 그를 순종하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본연의 사명을 따라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 루기 위하여 살기 때문에 너에게 세례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인 셈이다.

순교자 저스틴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 이유로 '예수님은 생후 8일 만에 받는 할례를 행하신 분이시다. 모세의 정한 규례를 따라 성전을 출입하며 율법을 지킨 분이시다. 그것은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요 만 물의 창조자이신 주께로 부터 그에게 위임하신 세대를 위함이셨다.'는 해석을 하 였다. (이상근저 마태복음 주석)

사실 요한은 죄없으신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할만 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 다. 나사렛 예수는 요한보다 더욱 거룩하신 분이시다. 훨씬 더 지혜로우신 분이 시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의 분부하심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는 원칙적으로 1)잠근다는 뜻이다. (Baptizo) 이 말은 고전 그릭이나 구 약 70인 역에도 나타나는 용법이다. 2) 씻는다는 뜻으로 신약에 자주 사용되었 다. 3) 비유적으로는 '전신에 충만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막 10:38 고난의 잔/세례) 침례교인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침례를 받았다고 주장을 한 다. 그러나 본문의 정확한 읽기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온 것 이 반드시 침례를 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의식보다도 의식이 가지 고 있는 신비로운 체험이 앞서야 한다.

약 4 세기의 그림으로 추측되는 카타콤의 한 고대 그림은 예수와 요한이 물 속에 서 있으면서 요한이 잔으로 예수의 머리에 물을 붓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구약에서 제사장들에게 기름을 부을 때 그 머리에 부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예수의 세례받음을 앞서의 그림처럼 잔으로 물 을 붓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 잘못된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직후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이 모습은 하나님의 적절한 현현이요 연출이다.

1) 인간의 눈으로 나타나 보이신 하나님.

'하늘이 열리고 ....' 이것은 그리스도와 요한에게만 보이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길에서 이 상을 보았다. 행 9 장에서는 같이 가던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 아무 것도 보지 못 하였다고 기록하였고, 행 22장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 는 듣지 못하였다고 기록하였다. 26장에서는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었다고 기 록하였다. 본문의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다.

 2) 소리로 나타나신 하나님 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소리는 그의 존재를 의미한 다. 추석 명절을 맞아 여러분은 가깝고 먼 가족들을 다 만나고 오신 줄 안다. 안 방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음성, 사랑채에서 들려 오는 크고 작은 소리들 .....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때에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함께 그의 전 인격이 온 몸에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증명이요, 하나님의 임재의 증명이요 또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소리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가 가르 치심을 시작할 때의 나이는 30세쯤이었다고 누가 의사는 기록하고 있다. (3:23) 우리 주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처음 부닥친 것은 사단에게 시험 을 받으신 것이다.

사단의 시험은 정확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것은 또한 계획적으로 다가온다.

아담과 하와를 넘어트린 사단은 행복이 가득찬 에덴동산에서였다.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것도 100세나 되어 얻은 아들을 즐거워 할 때였다.

엘리야를 괴롭힌 시험도 갈멜산의 승리 이후에 다가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이 말은 구세주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사단은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하는 말로 주님께 도전을 하였다.

 오늘 성례식에 참여한 여러분 ! 그리고 주의 만찬에 자리를 같이한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이 세례를 받았던지 안 받았던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든지 없든지 그 것은 그리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과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 하는 점이 중요하다.

 세례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복종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복종'이 없이 세례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도 아니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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