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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따르라 (마 0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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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제자를 부르시는,부르셔서 자신의 제자로 삼으신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예수님께서는 바다에서 고기잡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 레에게 그리고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에게 다가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라는 그 말 한마디에 이들은 자신들의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 습니다.우리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교입니다.우리의 기독교에는 고 도의 윤리와 가치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우리의 기독교는 윤리의 종교만 은 아닙니다.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으나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 다.예수님은 선하게 살아라하지않으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교가 바로 우리 기독교인 것입니다.

예수를 대적했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시종일관 묻는 질문은 <네가 무슨 권세로 그러느냐> 는 것이었습니다.네가 무슨 권세로 하나님만이 할수 있는 죄사함 을 선포하느냐네가 무슨 권세로 나를 따라오라고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었습니다.우 리는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으시던 예수님을 상상해 볼수 있습니 다.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오는데,예수님은 하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 하는 자라"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예수님에게는 충만하였습니다.그는 완전한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완전한 신이었습니다.그는 요한복음에서 나는--이다,자신을 직접 나타내 보이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 에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많은 군중들은 광야에서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를 좇았습 니다.요 한복음 6장 26절에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어서 예수님은 아주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 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그러자 무리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 에게 주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35절의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그렇습니다.우리의 기독 교는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는 양식을 먹는 종교입니다.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 생을 얻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 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그러니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한목자하면 시편 23편의 주옥같은 시를 연상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그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야만 합니다.그래야 꼴을 얻을수 있는 것은 둘째치고 양이 살수가 있습니다.우리의 인생들도 목자되시는 예수앞에서 마치 양과도 같습니다.이 사야 53:6절에는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사야에 의하면 죄라고 하는 것은 목자되시는 예수를 따르지 않고 각기 제길을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원래 죄라고 하는 말의 뜻에 는 과녁을 빗나가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과녁을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우리는 모 두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으로 예수를 따라야 하는데 세상을 따르고 정욕을 따르고 마귀를 따르는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우리는 선한목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 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부활이요 생명되심을 믿으면서 따르는 것입니다.믿음이 엄싸으면 우리는 결코 예수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부활이요 생명되심을 분명히 믿을 때에 그 믿음으로 우리는 비로서 예수를 따를수가 있는 것 입니다.히브리서1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예수를 따르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자에게(자기를 따르는 자에게)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 하는 말씀은 예수가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요즘 차 를 몰고 다녀보면 참 한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특히 차부앞을 지나칠 때면 버스와 택시가 뒤엉켜서 오도가도 못하게 막혀있을 때가 있습니다.길이 꽉 막혀 있는 현실 이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실존이 아닌가 합니다.길이 꽉 막혀 있으니까 정직하 게 일하고 성실하게 살 생각은 않고 한탕주의나 아니면 부정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길이 보이지 않는 우리들에게 오늘 주님은 우리에 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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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라 그러므로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 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며 선한목자가 되시고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며 길과 진리롸 생명이 되시며 참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 것입니다.누가복음 9장 57절 이하에 보면 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하는 세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첫사람이 예수께 요청하였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대단한 결단력입니다.어디로 가시든지 주 님을 따르겠다고 용기 있게 나선 젊은이에게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누가 복음 9장5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를 좇는 길은 좁은 문으로 들 어가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예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가 지신 골고다의 언덕에 도달하게 됩니다.골고다에 이르면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이 젊은이는 그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길이 없습니다.그러 나 그것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 젊은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혹시 광야에서의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우리가 예수의 주변을 서성거린다고 하면 우리는 이시간에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 령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입니다.그 명령은 나를 따라오너라 하는 명령입니다.

두번째 사람에게 예수님은 명령하셨습니다."나를 좇으라"그러자 이 젊은이는 이렇게 말합니다."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의 요구는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고 그리고 정당한 것이었습니다.따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먼저 내가 할일을 해놓고 그 후에 따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람의 요구가 옳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엉뚱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3

예수님은 지금 상식적인 평상시의 사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님 은 지금 임박한 종말의 때에 필요한 당신의 제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때가 찻 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임박한 진노의 때에 절박한 종말의식을 갖은 제자를 요 구하셨던 것입니다.우리는 절박한 종말의식이 없이는 결코 예수를 올바르게 좇을 수 없습니다.당장 예수님이 오늘 오셔도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러한 제자를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군대에서 말하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 하는 정예부대를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사람이 등장합니다.그는 이렇게 말합니다."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이 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과거에 미련이 있는 자들입니다.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옛사람에 대한 미련,과거에 대한 미련,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는 우리는 온전히 예수를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한 자가 해야 할일은 먼저 자 기를 버리는 일입니다.자기를 그냥 가지고서는 결코 예수를 온전히 좇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렸습니다.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예수를 따르는 제자는 자기의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자기의 것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우리는 알 고 있습니다.예수를 따르면서 꼭 버려야 하는 것일수록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 나 많은지 알수 없습니다.어데게 이 힘든 것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 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결코 버릴수 없습니다.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우리의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면 우리는 쉽게 버릴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를 구하기 위해서 하늘보좌를 버리셨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나같은 죄 인 구하시기 위해 주님은 물과 피를 흘리시며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도 우리를 위하 여 내어 주셨습니다.그는 철저하게 자기를 버리신 분입니다.그의 완전한 자기부정이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그리고 그 십자가는 부활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는 죽음으로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그 주님께서,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 다. "나를 따라오너라,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주님의 요구는 주님의 뒤를 따르기로 결단하고 이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의 고 난에 동참하는 제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멘으로 응답하여 주님의 뒤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다 되어야 할 것입 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교 나를 주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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