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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행복(2)-애통 (마 05:1-4, 롬 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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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은 슬픈 기색을 띈 모습의 사람들을 보면 측은하게 여기면 서도 경원한다. 젊은이들이 혼인하기 위해 맞선을 볼 때에도 그런 모습의 사람을 보면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전혀 다른 복의 기준을 말씀하셨다. 무슨 복이 있는가 "위로의 복"이다. 슬퍼하 는 사람의 행복은 위로받는데 있다. 슬픔 앞에서는 황금이나 입신출세도 별 효험이 없다. 다만 위로받는 것 외에는 백약이 무효하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일본군에 쫓겨 남태평양에까지 밀려났 다.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죽어가거나, 부상당하여 신체장애자로 전락 해 갔다. 미국정부는 군예대를 조직, 전쟁의 현장에 파견했다. 코메디안도 보내고, 아름다운 여가수들도 보냈다. 그러나 그들 병사들이 가장 듣기를 원하는 노래는 빙 그로스비(B.Crosby)의 "자장가"였다 한다.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슬픔을 지닌 사람들이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부상으로 말미암은 고통 때문에, 굶주림의 고통 때문에, 상대를 죽여야 하는 내적 갈등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그들 모두는 괴롭고, 아프 고, 슬픈 것이다. 이런 병사들에게 있어야 할 한마디 말, 가장 귀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위로"의 말이요, "위로받는 것" 뿐이다.

(1) 1978년 로마 교황 요한 바울로 1세가 서거하였다. 겨우 취임한지 33일 만의 죽음이었다. 장례절차를 준비하는 과정에 교황의 임종직전에 남긴 일기문이 공개되었다.

"부자들이여, 가난한 자를 기억해 주십시오. 직장인들이여, 무직자를 기억해 주십시오. 건강한 이들이여, 환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일기문이 공개되자 제일 먼저 노벧평화상위원회에서 반응이 일어났 다. 1979년의 노벧 평화상은 인도의 빈민굴에서 일생을 헌신한 "테레사 수녀"에게 수여키로 결정했다. 본래 이 상은 당시 중동문제해결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해 온 미국의 카터 대통령에게 수여키로 내정되었던 것이 다. 그런데 이름없던 한 수녀에게 인류의 영예인 노벧 평화상이 수여되었 다.

"남을 위해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한 마디의 일기문이 노벧 평 화상의 성격과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겨우 33일간의 임기중의 교황이 인류 를 위해 공헌했으면 얼마나 했겠는가 그러나 그는 죽어도 "남을 위해 슬 퍼하며 애통하는 자신의 동역자요 제자인 테레사"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면류관을 씌워 준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행복론의 참 뜻이다.

시인 도종환씨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2) 작가 이범선씨의 수필 "사기당한 과부"에 있는 이야기이다. 평양 대동 강변에 "백선행 기념관"이 서 있다. 이 건물은 콩나물 장수 할머니 "백선행 "씨가 사재를 드려 세운 건물이라 한다. 일생을 콩나물을 팔며 외롭게 살 아온 한 할머니의 거룩한 뜻을 살려 사람들은 그 건물의 이름을 "백선행 기념관"이라 정했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에게 어느 날 이웃에 있는 한 토지 거간꾼이 찾아 왔다. 평 양교외에 좋은 땅이 있으니 사 두면 좋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 두번도 아니고 끈질기게 권고하기에 이 할머니는 모아 놓은 돈을 몽땅 그 거간꾼에 게 건네 주면서 땅을 사기로 했다. 스스로는 현지답사도 하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그만큼 이웃끼리는 믿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틈을 내 어 할머니가 그 땅을 찾아가 보았다. 이 어찌된 일인가 산은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이었다. 너무나 실망한 백 할머니는 이웃의 배신에 분하고 원통 해서 결딜 수 없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 속에 또 다시 콩나물 장사를 계속했다. 그야말로 눈물겨운 나날을 보내며 열심히 일했다. 세상에 사기 행각을 일삼아도 분수가 있어야지 이 외롭고 불쌍한 노인에게까지 그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다니

그러던 어느 날 이 거간꾼이 또다시 나타났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여긴 할머니는 아예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한번 속지 두번씩이나 속을 수 없다는 경계심을 품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돌 산을 팔라 는 것이었다. 좋은 값을 치루어 줄 것인즉 팔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사 기당한 것은 자기만으로 족하지 또 다른 사람까지 손해를 입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완강히 거절했다.

거간꾼 이웃 아저씨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들락거리더니 어느 날 원매자를 데리고 왔다. 뜻밖에도 원매자는 일본 사람이었다. 장본인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팔기로 했다. 엄청난 이득을 취한 것이다. 그 돌산은 후일 "오노다 시멘트공장"으로 둔갑했다. 그 돌산은 쓸모없는 잡석산이 아니라 시멘트원료인 석회석 돌산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소견이 짧아서 이웃의 선량한 복덕방 아저씨를 사기 꾼으로 매도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죄스럽게 느꼈다. 너무나 후회되 고 얼굴을 들고 다닐 용기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할머니는 죄와 어리석음을 부끄러워 하며 참회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이 엄청난 재산은 생각지도 않았던 재산이요 요새 말로 불로소득이라고 생각했 다.

할머니는 선량한 이웃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미워하며 저주했던 지 난 일을 참회하며 애통하였다. 그리고 그 뜻밖의 재물은 자기 몫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회를 위해 바치기로 한 것이다. 그 열매가 "백선행기념관"이다. "자기 죄와 허물로 인하여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는 위로를 받을 것 이다."

할머니가 그 재산을 그대로 자기소유로 여기고 은행에 저축했거나 토 지에 투자했었더라면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돈은 쓸모없게 되었을 것이고, 땅은 북한의 토지개혁정책에 의해 몰수되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 라 할머니는 지주라는 죄목으로 인민재판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바친 사회복지관은 오늘도 한 작가의 글을 통해 우리들에게 그 이름을 빛내 주고 있다.

(3) 나는 92년 첫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한 신도로부터 200만원의 돈을 기 탁받았다. 꼭 필요한 일에 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 신도는 매우 가난한 삶에 오랜 세월 시달려 온 사람이다.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온 가족 이 짚시처럼 흩어져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그를 대할 때마다 함께 슬퍼하 며 함께 웃기도 하며 그의 신앙을 지도하며 지난 10여년을 지내 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200만원의 거금을 기탁받은 것이다. 이제는 자그만한 보금자리도 마련했고 가족들은 저마다 일정한 직업을 얻은 것이다. 그로서 는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은혜요 놀라운 복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 은혜와 복에 대한 감격을 억제할 수 없어 그로서는 분에 넘치는 거금을 나에게 기 탁해 온 것이다. 그 돈을 받은 나의 마음도 기쁘기 한량없었다.

나는 깊이 생각한 끝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위해 쓰기로 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동대문교회이다. 그는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 로 믿고 출입하고 있으며, 이 교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전부를 바쳐도 아 깝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가 가장 슬플 때 이곳을 찾아왔고, 가장 외 로울 때 이곳에 찾아 왔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가족의 절망을 극복하는 용기와 힘을 얻었다. 그는 교회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터 득했으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진리도 배웠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 곧 자신의 삶의 이유요 목적임 을 믿게 되었다.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다. 땀이 피가 되는 기도였다. 그의 기도는 결코 자신에게 조여오는 죽음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는 기도가 아니 었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그로 하 여금 인류의 구세주가 되게 하였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였다. 약한 것은 죽지만, 썩을 것은 죽지만, 육체는 죽지만 다시 살아나는 새로운 법칙 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첫번째 모범이 되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슬퍼하는 사람,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 다. 그들은 약하기 때문에 죽는다. 그러나 다시 살아난 그 사람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강자이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인생을 끝내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통하는 사람은 죽음을 넘어서는 복을 받는다. 이것이 하느님의 위로의 본질이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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