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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보고 싶은 교회 (마 0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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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104년이 되는 날입니다. 104년의 격동의 세월을 거쳐오면서 우리 부산진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104년동안 이 교회안에서 헌신적으로 일 해 오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동시에 선교2세기를 열어갈 오늘과 미래의 우리 교회 주인공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가져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의 영광과 그의 역사를 위해 봉사해야 하므로 이 뜻깊은 생일날에 우리 교회의 존재의의(raison d'etre)와 역사적 사명을 다시 한번 성찰하면서 의미깊게 보내고저 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올 해를 "새로운 선교"의 해로 바치기로 선언하였습니다.이 결심은 "새로운 선교"란 표어아래 세 가지의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전도"이고,
둘째는 "에큐메니칼 선교"이고
셋째는 "생활선교"입니다.

이 세 가지 선교는 아주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선교"란 표어의 "새롭다"란 말이 암시하듯이 진부한 전도의 방식이 아닌 신선한 선교의 방식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우리는 지금 세속화 시대속에 살고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보통 선교라고 하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소개되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하나님을 알리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구원의 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서성민 선교사가 인도네시아에 나가서 선교하는 것이나 블라디보스톡에서 선교하는 차원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도 지금부터 104년전 그 때는 기독교의 하나님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개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이제는 한국사람에게 기독교란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모르긴 해도 아직도 한국사람치고 기독교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한번도 듣지 못한 사람도 없고 교회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소개의 단계"는 다 끝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를 소개하고 알려주는 차원의 선교는 끝났다고 일단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불과 인구전체의 25%에 지나지 않는 숫자만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고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은 바도 있고 권유받은 바도 분명히 있을텐데, 그런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이미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경우입니다.
둘 째는 종교나 혹은 하나님이나 신앙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셋 째는 자기는 신앙을 갖고 싶으나 집안의 종교가 다른 종교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나올 수 없는 경우입니다.
넷 째는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섯째는 자신은 분명히 신앙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만 교회나 그리스도인들 에게서 실망한 경우입니다.

저는 이 다섯 경우들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기독교에 접근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문제를 그들의 편에서 보기 보다 우리 편에서 분석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심지어는 거부감을 갖고 심한 경우에는 적대감까지 갖게 되었느냐는 것을 묻는 것이 신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선교는 적극적으로 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0:14에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는 말씀대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고 듣지 못한 이에게 듣게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도라는 것은 전하고 듣게 한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전함을 받고 듣게 된 그 사람들 믿게 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일에까지 가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함을 받고 듣기까지는 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무응답이고 어떤 사람은 거부감을 이르키고 어떤 사람은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문제를 그들에게서 찾지 않고 전하는 우리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판매부진이 있을 경우 소비자에게서 문제점을 찾지 말고 생산자에게서 문제점을 찾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우리가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교회가,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내고 빛은 주위를 밝게 비추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낸다고 하는 것, 빛이 어둠을 밝힌다고 하는 것은 그 존재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맛을 잃은 소금, 빛을 잃은 빛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금이 소금구실을 하지 않고 빛이 빛의 구실을 하지 않으면 존재의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소금이 맛을 내고 빛이 비취면 분명히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점을 다녀보면 음식점의 존재의의는 철저하게 맛에 있는 것을 봅니다. 음식이 맛이 있으면 그곳이 먼 것도 불사하고, 건물이 불편한 것도 불사하고, 심지어 주차장이 없어도 그 음식점에 몰려 갑니다. 어떤 경우에는 좌석이 없어서 밖에 서서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텅빈 식당에 가질 않고 구테어 거기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맛 때문입니다.

이 말은 교회도 찾아가고 싶은 맛을 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맛을 내면 교회에 오지 말래도 올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맛을 내기는 커녕 오히려 교회에 오면 있던 입맛까지 빼앗기면 그 교회에 누가 오려고 하겠습니까

초대교회를 가만히 보면 열심히 전도한 것 보다 초대교회공동체가 워낙 매력적이니까 사람이 찾아들어와서 불어난 형태입니다. 사도행전 2:47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생활을 보면 세 가지 눈길을 끄는 말이 있는데 1)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이었다는 점과, 2) 서로 서로가 자발적으로 도왔다는 것과 3) 분위기가 항상 기쁘고 순수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분위기가 좋으니까 막 선전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제발로 걸어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참다운 전도의 비결은 갈 맛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에 있습니다.
매력있는 교회,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교회, 찾아와서 기쁜 교회, 예수 믿는 맛이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억지로 생떼를 쓰며 전도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 방법가운데 개신교의 전도방법에 대해 가장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 등 다른 종교들은 별나게 전도하지 않고 기독교 중에서도 천주교같은 경우는 결코 그렇지 않는데 개신교의 경우는 성가실 정도로 그러니까 오히려 거부감이 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물론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떻게 듣겠느냐"는 로마서의 말씀대로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힘있는 전도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칭송하고 매력을 느끼고 가보고 싶은 소위 입맛을 내는 우리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 착한 행실을 통한 전도가 훨씬 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다미선교회인가 뭔가 하는 집단들의 선교방식을 보면 지하철 입구나 역주변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니고 뭔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정신이 돈 상태인 것 같은 사람이 "예수 믿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하니까 물론 그런 외마디의 전도에서 마음에 감동을 받는 경우도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마저도 천박하게 생각해 버리게 하는 그런 혐오감을 주게 됩니다. 이런 선교는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를 막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전도훈련을 할 때 소개한 3000여명을 전도한 전도왕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들으면서 세 가지 점을 파악했습니다. 첫째는 그 분의 전도비결은 전도할 결심을 자신이 굳게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었고 둘 째는 성실한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셋째가 뭐냐하면 의외로 전도가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전도했을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이었습니다. 전도를 받은 어떤 중소기업사장은 기독교가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나눔을 하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노점상을 하는 분은 몇억씩 부정을 해 먹고도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초생계를 위해 노점상을 하는 자기들은 단속당하는 사회불평등과 불의에 대해 교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고통받고 소외된 계층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교회가 자기 생색을 낼 때에 가서 비로소 전도대상으로 삼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예수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예수믿는 사람이 독선적이고 위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교회에 대한 실망에서부터 심지어 분노까지 그 거부감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개방적이고 남을 이해하려고 넓은 가슴을 가지는 그런 태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도덕적 잣대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함부로 재단하려고 하는 태도는 신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교회가 평소에 향기를 나타내고 신사적이며 신뢰하고 칭송할 만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호감은 커녕 오히려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교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다는데 그 후에는 결코 교회에 가지 않고 유신말기에는 물론 독재체제에 기독교가 항거하니까 그랬겠지만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반감까지 가졌드랬습니다. 그 이유가 주일학교 다닐 때 주일학교 교사에게서 아주 나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평생 교회를 멀리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 하면 기독교를 몰라서 교회에 안오거나 하나님을 몰라서 안오는 경우도 물론 많이 있겠지만 우리 편에서 즉 생산자편에서 고려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가 그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어서 온 누리를 비추게 해야 할 터인데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교회가 맛을 내기는 커녕 오히려 밥맛없는 일을 할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소금이 맛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소금이 희한한 맛을 내는 정도로 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전도해보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알았다가 멀리 떠나게 된 사람을 다시 믿게 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전도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 형태와 같아야 합니다. 긴급한 경우에는 물론 강요도 필요하겠지만 강요에 의한 전도는 결코 최선의 방법이 아닙니다.
최선의 전도의 방법은 교회가 모든 사람들에게서 칭송을 받는 일입니다. 어떤 한 부류의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지난 겨울호 "마음을 같이하여"에 읽어 볼 책으로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 책의 제목은 "이런 교회라면" 이란 것인데 이 책은 원광대학교 공대교수이자 과학원교회 집사인 이종범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저자는 그 책 제목이 시사하는대로 "이런 교회라면" 다니고 싶다는 의미에서 현대인들이 기대하는 그런 교회의 모습에 대해 자기의 시각에서 서술해 놓은 것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교회상의 제목만을 일단 열거해 보겠습니다.
한번 우리 교회의 모습, 혹은 평소에 교회에 대한 모습과 비교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생활설교를 많이 하는 교회

2. 말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설교를 하는 교회

3. 찬양예배는 찬양예배답고 헌신예배는 헌신예배다운 교회

4. 성찬식을 자주 하는 교회

5. 예배중의 기도는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6. 기도회 시작전 찬양방법을 개선하는 교회

7. 입시를 위한 특별기도회가 없는 교회-즉 기복적이지 않는 교회

8. 다리를 꼬고 예배드리는 성도가 없는 교회

9. 성탄절에는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
10. 축복 부흥대성회를 구별해서 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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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기도를 큐티(QT)로도, 즉 명상으로 실시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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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온 교인이 묵상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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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꽃꽃이를 화려하게 하지 않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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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노래의 찬양이 살아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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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경적 비판을 과감히 수용할 수 있는 교회
16. 환경보존운동에 적극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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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통질서를 강조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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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독교의 표시를 차에 부착할 때 그 의미를 강조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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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투자와 투기를 구별시켜주는 교회
20. 결혼식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루도록 권유하는 교회
2

1. 혼수준비를 가르치는 교회
2

2. 주보의 내용을 주옥같이 만드는 교회
2

3. 인쇄물을 고급화하지 않고 재생종이를 쓰는 교회
2

4. 이웃사랑을 즉시 보이는 교회
2

5. 교회를 탐방하러 온 성도에게 부담을 안 주는 교회
26. 점심은 국수 한 그릇으로 만족하는 교회
30. 목회자의 이임이 불미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
3

1. 동역자라는 의식으로 가득찬 교역자가 있는 교회
3

2. 부목사란 칭호가 안붙는 교회
3

3. 부목사의 사례비를 너무 적게 책정하지 않는 교회
3

4. 설교의 경쟁이 없는 교회
3

5. 목회자의 미국유학에 민감하지 않는 교회
36. 목회자와 함께 테니스를 칠 수 있는 교회
3

7. 담임목사를 너무 부각시키지 않는 주보를 만드는 교회
3

8. 한밤중 교역자의 가정으로 전화하는 것을 삼가는 교회
3

9. 남성도들만의 구역모임도 활발한 교회
40. 신앙에 유익한 책들을 정성껏 소개하는 교회
4

1. 각종 전문사역 위원회가 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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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신도라기 보다 성도라는 말을 자주 쓰는 교회
4

3. 집사를 쉽게 임명하지 않는 교회
4

4. 세상적인 요소가 장로 피택에 영향을 주지 않는 교회
4

5. 장로가 너무 강하게 보이지 않는 교회
46. 교역자와 장로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교회
4

7. 직분과 부서장에 민감하지 않는 교회
4

8. 임직식을 바람직하게 행하는 교회
4

9. 지휘나 반주직을 아르바이트로 간주하지 않는 교회
50. 가정을 중시해 주는 교회
5

1. 성경적인 직업관 교육을 중시하는 교회
5

2. 각 전도회가 개성있는 프로개림을 시행하는 교회
5

3. 제자훈련을 유행처럼 보지 않는 교회
5

4. 선교단체와 협력할 수 있는 교회
5

5. 관리자의 사례비를 현실화시키는 교회
56. 헌금봉투를 중시하지 않는 교회
5

7. 주일학교나 학생회의 헌금액수는 공개되지 않는 교회
5

8. 예산계획과 집행을 잘하는 교회
5

9. 비싼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교회
60. 이웃을 위해 또다른 십일조를 권유하는 교회
6

1.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교회
6

2. 예배당 좌석이 부채꼴형으로 된 교회
6

3. 강대상의 의자 등받이가 너무 높지 않는 교회
6

4. 예배당을 건축할 때 빚없이 준공하는 교회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런 교회를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과 예배의 의미가 깊은 교회, 즉 영적으로 깊이있는 교회
정의로운 교회
친숙한 교회
권위적이지 않는 교회
이웃을 생각하는 교회
열린 교회

물론 현실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무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교회의 모습은 정말 오늘 대부분의 교회가 개선해야 할 점들을 진솔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대를 좋은 말로 해석한다면 현대인들이 이런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진솔하고 열린 교회를 그 맛이 있는 교회로 기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말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오늘 교회의 모습이 밥맛없는 모습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사를 가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 교회는 많은데 가고 싶은 교회를 찾는 것이 그토록 힘든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바람직하지 못한 교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올 해 우리는 전도하려고 하면 가장 촛점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억지를 쓰고 떼를 쓰는 전도가 아니라 소개했을 때 오고 싶고 와서 기쁨이 있고 희망을 주는 그런 교회의 모습을 갗추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복음의 위대한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전도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너희 착한 행실을 나타내어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게 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매력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 보고 싶은 교회, 가서 매력있는 교회,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처럼 서로 마음이 같이 되는 교회, 서로 서로가 자발적으로 도우려고 하는 교회, 그리고 기쁨과 순전함이 있는 분위기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교회, 너그러운 교회, 어머니와 같이 그 품에 안기고 싶은 교회,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라면 노력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회자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교회구성원들이 맛이 오묘한 교회를 만들고 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부산진교회 성도여러분,
올 해 우리는 전도하기 위해 우리 교회를 그런 가보고 싶은 교회로 만듦으로서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로 찾아오게 하는, 그래서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하는 전도를 하도록 모두가 노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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