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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행복(4)-의 (마 05:1-6, 엡 0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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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사람 들은 빵이 있어야 배부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마다 앞다투어 빵을 얻으려 피나는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이 배부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전혀 반대되는 사상이요 주장이다. 그리 스도인들은 양자택일의 결단을 요청받고 있다.

경제가 부흥되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대 부분의 나라들은 경제부흥을 시정의 제1목표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가 구현되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가 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싸움을 해소해야 건전한 사회가 된다고 역설한 다. 이상스럽게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사회에서는 이단시되고 있다. 성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배부르게 된다고 가 르쳤는데 성서를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믿는다는 사람들마저 의에 주리 고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반체제 위험분자로 여기고 있다는데 우리의 고 뇌가 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란 자신의 영적 진보를 위해 갈급해 하는 사람이다"(F. 쿤켈) 자신의 영적 진보를 갈망하는 사람만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지 아니하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로마 8:8)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과 원수관계에 놓이게 된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그리스도교 선교역사에 기록할 만한 사건이다. 다 종교사회 속에서 신흥종교로서 불과 100년 동안에 전국민의 1/4을 개종시켰 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사건이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 지만 가장 구체적인 것은 1903년 원산에서 불이 붙기 시작한 부흥운동이라 는데 교회사가들은 공통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은 원주지역을 무대로 선교하던 하디(R. Hardy)목사의 회개운 동이 도화선이 되어 전개된 것이다. 하디 목사는 처음 한국에 파송될 당시 에는 의료선교사로서 질병을 치유하는 일에 정진하다가 목사공부를 한 사 람이었다. 그는 선교사였으면서도 한국인을 경멸하며 자기 수하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흑인노예를 대하듯 차별하며 학대했다.

어느 날 자그만한 성경공부반에서 자신의 생각과 처신이 인간으로서, 선교사로서 너무나 그릇되고 죄악된 것이었음을 통감하고 참회의 고백을 하게 되었다.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부끄러운 생각, 내 교만과 내 완악한 마 음, 부족한 마음을 청중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였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참 된 신앙 생활에서 믿음의 확신과 죄에 대한 회개가 무엇인가를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받게 되었는가를 이야 기해 주었을 때, 그리고 그후 3주간 나의 태도와 모습과 생활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목격했을 때 그들은 믿음에 새로운 뜻을 깨닫게 되 었다는 것이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갈망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반역으로 이 하느님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 이것은 인간역사의 비극이었다. 성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인간역사의 기록이다. 하느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정의와 진리의 삶 이다. 한마디로 "정의는 하느님의 거푸집"(A. 헤셀, J. 웨슬리)이다. 그 러나 이것은 이미 사도 바울이 밝혀 준 바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 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 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 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 4:21-24)

요새 우리사회의 최대관심사는 정신대문제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압제 아래 있던 우리네 아들 딸은 혹은 징병으로, 혹은 징용으로, 혹은 정신대라는 미명으로 전투병사들의 성적 노리개로 강제 연행되어 갔었다. 이 나라가 얼마나 얼빠진 사람들의 나라인가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우리네 정부는 이 아들 딸들의 희생에 대한 책벌을 추궁하거나 배상을 요구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대, 징병, 징용에 동족의 아들 딸을 빼앗기는 원통한 일을 보고도 침묵하기만 하던 사람들, 아니 앞장 서서 독려하며 바람을 일으키던 소위 한국의 얼빠진 명사들에게 민족의 이름으로 준엄한 책망 한 마디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이 그들과 손을 잡고 백성 위에 군림한 권력탐익자들이 지난 반세기동안 이 나라를 통치해 왔다.

이 나라가 얼마나 얼빠진 나라인가 시를 쓰며 연설을 하면서 조선의 아들들과 딸들을 침략자 일본인의 노리개로 팔아 넘기던 사람들에게

3.1문 화상을 수여하였다.

3.1문화상이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것인데 매국노들에게 수여했으니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아무리 처세에 능 한 사람이요 문인으로서 이 나라 문화창달에 공헌했더라도 설립정신에 배치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용도 목사님은 한국기독교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사랑의 신비주의 운동은 성 프란시 스를 방불케 하는 운동이었다. 그분이야말로 참 부흥사였다. 그의 동지들 가운데 이환신 감독님을 비롯 김광우 목사님, 박재봉 목사님, 이호운 목사 님 같은 분들이 후일 한국기독교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런데 당시 의 제도권 교회들은 그를 광신주의적 이단자로 매도하고 정죄했다.

이용도 목사님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항상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주여, 나로 하여금 미친듯이 부르 짖는 광야의 소리, 회개의 소리가 되게 하시고 새 술에 취한듯 덤비는 사 랑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1930.

1.

2.일기중에서) "잿더미 같은, 시체 같은, 바람이 빠진 자전거 같은 당시의 교회와 사회"를 고발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하다 옥에 갇히고 쫓겨나 산에 숨기도 했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람, 의인을 살해한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는 사 람"이다.(마태 5:19-20)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 보다 낫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마태 5:20)고 말씀하셨다. 바리 새인의 의가 무엇일까 그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가르치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위선적인 의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칠한 무덤 같은 존재요 외식하 는 자로 심판받았다.

서울 한강변 양화진에는 외국인 묘지가 있다. 주로 기독교 선교사로 헌신하다 돌아가신 이들의 묘지이다. 그곳에 윌리암 호울(W. Hall)박사 일가의 무덤이 있다. 그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씌어 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노라.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로다"(로마 14:8)

호울 박사는 한국에 파송된 의료선교사들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이다. 청일전쟁의 화를 입고 난 뒤 평양일대에는 무서운 질병인 호열자가 만연되 었다. 한국을 삼키려는 중국과 일본의 야욕이 빚은 비극이었다. 호울 박 사는 죽어가는 환자들과 부상병 치료에 열중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것이다. 그의 아내 로제타 호울(R. Hall)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를 길러 냈고 한국 최초의 여자의학교육기관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고려대학 의 과대학의 전신)를 설립했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점자 교육을 보급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들의 아들인들 잠자기만 하였겠는가 부모님의 뒤를 이어 아들 셔우 드 호울(S. Hall)도 의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의 치유에 헌신했다. 해주에서 결핵요양소를 운영하였고 그 일을 위해 크 리스마스 씰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첫번째 외국인 으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선교활동을 회상하는 회고록에서 동대문교 회 뜰 안에서 뛰놀며 자라던 일을 기록하였다. 윌리암 호울 일가야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스스로 실천한 참 그리스도의 제자요 신앙의 모범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이 있 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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