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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사회적 책임 (마 0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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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그는 오셔서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산상설교나 여러가지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으며, 또한 그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천국을 전파하시지 않고, 이적을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이적 가운데서도 특별히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는 이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가 이적을 행하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하려하기 보다는, “목자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무리”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고통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이적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고난받는 종으로서 사람들의 고통을 짊어지셨다는 점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병고친 이적들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악을 완전히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3가지 방법, 즉 말씀과 이적과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시고 또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곧 오늘날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택하여야 할 방법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복음전파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천국을 가르치고 전하였으며, 이것을 우리는 전도라고 합니다. 이제까지 교회들은 이 전도를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을 하고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전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신 것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봉사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전도만 가지고서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신학 분야에서는 사회봉사가 매우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예수

마태복음 8,9장에 보면 10가지 이적이 나오는데 바다를 잔잔케 하신 이적을 빼면 모두가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나열된 이적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만 기록된 것입니다.

마8:16절 말씀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말씀 35절에서는,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모든 병든자들과 모든 약한 자들을 고치시고 돌보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서에 기록된 이적들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요21:25절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들을 일일이 다 기록한다면 그것들을 쌓아놓을 곳이 부족할 것입니다.

기사와 이적은 어쩌다 한 두번 보면 그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찾아오는 수많은 병든자들을 모두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될 때에는 더 이상 이적은 이적이 아니라 평상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복음서 기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도 예수님의 이적을 신기하고 놀라운 일로 기록하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짊어지시는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병고침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위대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이적은 예수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행하였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예화 얼마전 신문에는 중학생 여자아이가 눈을 가리고, 손바닥을 책에 얹지도 않고 줄줄 읽어내려 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는 보도가 실려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셨을 것입니다. 무당도 병을 고치며 마귀도 역사하면 시퍼런 칼날위에 맨발로 올라서서 껑충껑충 뛰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행하였다고 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들은 결코 예수님의 이적을 부각시켜 그를 그리스도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귀신들린 자, 병든 자, 약한 자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그들을 도와 주려 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입니다. 그 긍휼히 여기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은 모든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저들을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긍휼’이란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플 때 그 아픔을 대신하고자 하는 마음,자식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희생을 통하여 그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오늘날 죄악된 인간들의 구원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긍휼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마10:7-8절에 보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신 후 그들을 선교 파송을 보내시면서 역시 자기가 행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기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은 병고침의 이적이 결코 댓가를 바라는 어떤 의료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몸으로 보여주는 긍휼의 행위여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로 비롯된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여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교회의 사회봉사!’-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으로서의 사회봉사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2.사회봉사를 통하여 천국을 실현하는 교회

우리 한국교회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통하여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그것은 전도에 힘쓴 결과입니다. 그러나 전도에만 힘쓰다 보니 사회봉사는 부수적인 일이요 하면 좋고, 안해도 무방한 것 정도로 인식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미미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우선 교회예산 편성에 있어서 순수한 사회봉사비로 책정한 예산은 전체 예산의 불과

2.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예산은 주로 교회 안에서 쓰여지고 있고, 교회 밖에서 쓰여지는 것도 주로 개척전도나 농촌교회 지원에 쓰여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봉사를 실시한다는 교회는 전체 한국교회의 2

3.2%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보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사회봉사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나마 하고 있는 사회봉사도 상당수가 일시적이고 전시효과적인 경우가 많고,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구색을 갖추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사회봉사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복음에 대한 이해를 잘못한데 원인이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은 오직 전도하는데만 있다고 가르쳐온 과거의 잘못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영혼을 영원한 형벌에서부터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사역이기 때문에 교회가 그외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교회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으로 잘못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회가 구제나 교육 등, 선한사업을 하는 것이 나쁜일은 아니지만 교회가 이같은 일에 힘쓰는 과정에서 영혼구원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사회봉사 활동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닌 것으로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핀대로 복음전파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자들을 긍휼로 감싸안는 일을 통해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활동 가운데서 사회봉사 활동을 빼어버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병자들을 고치신 이적들을 모두 생략해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봉사를 하지 않는 교회는 참다운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한국교회가 사회봉사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이유는 개교회주의 성향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자기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만 인적, 물적자원을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밖 사회봉사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이것은 성장위주의 목회에 치중하게 만들고 사람을 끌어모아 대형교회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받은 것을 거저 주라!>고 하신 예수님의 긍휼의 정신을 잊어버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하루 속히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져 봉사하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절실하게 사회봉사를 요청하는 이 시기에 한국의 교회들은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교회가 사회봉사를 소홀히 하게 된 이유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있습니다.
세상은 단순히 악이 지배하는 영역으로서 교회가 구원할 대상일 뿐이지 섬길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영적이고 내면적인 것으로서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생활로서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적 신앙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서 한국교회 교인들은 그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고 둘로 나뉘어, 신앙따로, 생활따로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비록 타락하여 더러워진 세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기에 이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을 피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사회봉사에 대한 우리의 자세

이제 우리는 사회봉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사회봉사는 곧 하나님 나라의 실현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교회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회는 이제 그 긍휼을 나타내는 기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말로는 전도를 잘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내 자식의 아픔을 아파하는 심정으로 내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긍휼의 삶을 실천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와 섬김!’-이 두바퀴가 온전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실현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따라서 사회봉사는 단순한 구제와도 다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내 이웃의 고통을 걸머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게 여분이 있는 것을 가지고 남을 돕는 정도가 아니라, 내 몸을 던져 그 고통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사회봉사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몇가지 프로그램을 증설하는 선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각 교회들은 봉사 활동비를 교회 예산편성에 넉넉히 포함시켜야 할 것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희생하면서라도 이 일은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되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즈음 우리 한국교회는 실로 크나 큰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더 이상 교세가 확장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줄어 들고 있는 국면에 이르렀습니다. 믿지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은 커녕 비난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회는 점점 더 혼란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으며,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대형사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성 상실시대인 것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기 때문이요, 구원받은 우리들이 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모든 책임이 한국교회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모쪼록 이 자리에 나온 모든 성도들은 한국교회가, 그리고 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야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이 사회와 이웃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하고 이기적이었던 우리들의 생활을 회개하며, 부단히 개혁해 나가고 사회적 책임을 내 몸으로 실천해 나가겠다는 결단과 각오들이 불일듯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나라와 한국교회를 회복시켜 주시며, 고쳐 주실줄 확실히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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