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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밤의 위로자 (욥 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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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학자 벵겔은 "욥기의 경우야말로 훌륭한 위로자가 어떻게 정 죄하는 위로자로 변신할 수 있는가의 가장 고전적인 모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간혹 고난과 역경과 어두움에 처할 때, 가장 훌륭한 위로자로 출발했던 사랑하는 친구들이 오히려 우리를 정죄하고 짓밟는 사람으로 변질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도히는지를 그 적합한 한 예를 욥 의 세 친구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 세 친구들의 모습이 잘못 부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좋게 출발한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위로자의 모습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욥의 세 친구들이 "고난받는 형편에 처해 있는 이웃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라는 위로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1.그들은 욥과 함께 하였습니다.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 람<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의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욥2:11). 욥의 친구들은 욥의 어려운 형편을 듣고 침묵 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괴로워하는 고난의 현장까지 달려왔 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웃들이, 그리고 형제들 이있다' 이것이 위로자에 대한 첫번째 물음입니다.

주인은 선한 사라미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이웃을 돕는 방법을 가르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이웃들을 피하고 그대로 지나가고 있지 는 않습니까 위로란 중대한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내 자신을 파 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가 꼭 필요로 했던 어떤 문제를 해결시켜 주는 것 만이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는 함께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진실로 위로 가 필요한 이웃과 형제들의 고난의 현장으로 찾아가 그들과 함께 있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장 큰 위로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위로자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 은 고난받는 사람들의 삶 한복판에 서 계셨습니다. 이웃들의 한복판에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함께 해 주는 것, 이것이 위로의 첫번째 발걸음입니다.

 2. 그들은 욥과 함께 느꼈습니다.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 인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 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욥2:12).

고난은 항상 인자한 미소와 믿음으로 향기로운 얼굴 모습까지 변화시켰습 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참혹한 친구의 모습을 보자마자 친구들은 놀라움의 소리를 지렀습니다. 이것은 동정의 몸짓이 아니라 친구의 고난과 아픔을 목격한 세 친구의 솔직한 공감의 모습이었습니다.

위로란 <함께 느끼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영역 가운데 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感情입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정당해도 감정과 감정이 통하지 않을 때 인간 관계의 진정한 교류는 불가능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으로 상 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하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을 해쳐버리면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막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 훈련 모임이 있을 때 "여러분, 전도할 때 말싸움이 나 이론에 있어서는 지십시오. 그리고 대신 영혼을 얻으십시오" 라고 권면 합니다.

우리는 논리에 의한 설득과 승리를 적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영혼을 찾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감정이 상해 보십시오. 그 다음의 말은 전혀 들려지지 않 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앙심을 품을지 모릅니다. '두고 봐라 내 가 믿는가. 절대로 안 믿는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바로 감정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진정한 위로의 대상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 을 <共感>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感情移入>(empathy)이라는 단어를 발견해 냈습니다. 그것 은 감정과 감정이 상통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면에서 누구 보다도 탁월한 위로자의 모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증언하 고 있는 복음서 가운데서 제일 많이 나타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이런 표 현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더라." 이런 말씀이 복음서에 자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 어 감이 충분히 살아있지 못합니다만, '심히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예수 님의 감정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고난을 당하는 사람 들, 연약한 사람들, 아파하는 사람들의 감정 속에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감 정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모든 위로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감정을 어루 만지지 못하는 위로는 한갓 변론이며 연극일 뿐이요, 값싼 동정에 불과합 니다.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고 있습니까 위로자 예수님을 (히4:)에서는 대제사장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율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주님은 상처받고 절망하는 우리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고 계시며 기도한 성도들의 옆에서는 이미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계십니다. 우리와 더 불어 상함과 아픔의 감정을 깊숙한 부분까지 나를 공감하고 계시는 치료자 예수님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욥을 찾아왔던 이 세 친구는 훌륭한 위로자였습니다. 그들은 욥과 더불어 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특성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정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질투도 하시고 사랑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느 끼고 있는 모든 감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도 위로자이신 성령님도 그러하십니다. 우리 안에 죄가 들어왔을 때 근심하시고 탄식하시 는 성령님이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상함을 함께 나누 고 계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서 수 많은 고통과 상처를 받으 신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들 가까이에 서 계십니다. 그러하기 에 주님은 우리를 가장 정확히 위로해 주실 능력이 있으신 분인 것입니다.

 3. 그들은 함께 침묵했습니다.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욥2:13) 이 참담한 고난을 당하는 친구를 보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욥 의 친구들은 욥의 곁에서 침묵했습니다. 침묵은 좋은 위로의 방법입니다.

침묵은 서투른 변론이나 값싼 위로의 말보다 훨씬 능력 있는 위로의 방편 입니다. 그들은 함께 있고 함께 느꼈고, 함께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은 정 직한 침묵입니다. 이 순간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있거 든 그에 곁에 침묵하십시오. 정직한 침묵을 하십시오. 함께 있어 주십시 오. 같이 우십시오. 그것이 차라리 힘있는 위로라는 것을 우리는 이 세친 구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4.그들은 고난을 함께 짊어졌습니다

 욥의 세 친구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친구의 고난을 말없이 짊어 지는 속죄자의 행위였을 것입니다. 친구의 고난을, 그리고 이웃의 고난을 내 몸으로 짊어지는 사람마다 그 아픔에 눌려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침묵>입니다. 예수님의 침묵 역시 이러한 침묵이었을 것입 니다. 우리의 짊을 대신지시고 십자가를 향해하여 걸어가신 예수님의 모습 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 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 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라고 묘사했습니다. 온 세 상의 죄짐을 짊어지시고 침묵하시며 빌라도의 법정에 서 계신 예수님의 침묵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고난을 짊어지고 있는 이 치료자, 위 로자 이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교우 여러분! 만일 가슴 속에 원인 모를 분노와 슬픔이 앙금처럼 고여있 다면주께서 오늘 당신을 먼저 위로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하나님,우리의 연약함 을 공감하시고 체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쏟아 놓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가슴이 답답하거든 이 하나님 앞에 당신의 심정을 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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