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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나의 목자_2 (시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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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시편 23편 1절의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구절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 되시며 나를 인도하기 때문에 나에게 어떠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 다.

 바로 이같은 기초위에서 이번 23편의 이어지는 말씀들이 성립될 수 있으며 과연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떻게 나타나시며,어떻게 역사하시며 그와 나와의 관계속에서 어떠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은혜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다윗은 계속된 하나의 광경, 즉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연상적 으로 떠올리면서 본 2절의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 하시는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이 말은 완벽한 현재진행형입니다

 그가 어떠어떠한 곳으로 인도하였다. 또는 인도할 것이다가 아니라 지금 그 위대 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크신 능력과 기적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시며 나는 그것 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목자라는 것 그리고 그가 나를 인도하시고 계신다는 그런 흐름을 타고 다윗은 그의 음악적인 시를 지금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묵상하면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그 수천년 전의 다윗이 받았던 은혜와 기쁨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여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까!

그 당시에 다윗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렇게 확실하게 선언했으며, 지금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들 각자에게 그가 나를 인도하신다는 엄연한 사실을 현재진행형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는 과거에 그렇게 위대하셨던 하나님!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 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크신 능력의 하나님! 또는 앞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확실하고도 생생하게 지금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인도하심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끼면서 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떠하다는 것을 현재진행형으로 언급해 나가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선하심을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욥이 말할 수 없는 고난에, 즉 우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지극한 불행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네가 이같은 큰 곤경에 빠진 것은 필시 너에게 큰 죄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말에 대하여 욥은 답변하기를 "아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라고 선언 했습니다.

 고난이라는 하나의 문제에 관하여 양쪽의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의 원인을 죄로 보았습니다. 지극히 비관적이고도 율법적인 해석이었습니 다. 그러나 고난의 당사자인 욥은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희망적으로 보았습니다. 즉 이 모든 것은 내가 정금같이 나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스토리의 줄기 를 보면서 그 흐름은 매우 소망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내 생애의 황금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찼던 것입니다.

 현실 그 자체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다윗에게 있어서나 욥에게 있어서나 매우 선한 것이었 습니다. 즉 그 분의 인도하심의 목적지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같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조그마한 문제 때문에도 쉽게 근심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과연 예수를 믿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하며 의심으로 가득찬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거 예수 믿어서 이득될게 무어가 있담"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내가 주일날 교회 나가는 것은 그저 문화생활일 뿐이지!라고.

 하나님과 정말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그분들에게 단연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의 생애 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값어치 있는 중대한 문제이며 그것은 파멸로 나아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믿는 사람의 앞날에는 마침내 놀라운 축복이있고야 말 것이 다. 그것은 한국은행의 보증수표보다 더확실한 것이다."라고 말씀 드릴수가 있습니 다.

 단 한가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마시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 오십시오.

여러분, 그것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거할 때에만이 느끼고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의 신앙연륜과 교회생활 그리고 중요한 교회 직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다윗의 이같은 경험들을 도무지 체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좀 안다고 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주님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교회나 사회에서의 위치를 더 중요시 합니다. 때문에 주님의 인도 따위 보다는 즉각적이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판단으로 처신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려고 합니다.

 또한 어떠한 현실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희망적으로 생각 하지 않고 비관적으로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도와준다면 나에게 희망이 있지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는 하나님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 니다. 이들은 목사님이 와서 기도합시다, 믿음을 가집시다 하는 말보다는 누가 돈을 빌려주겠다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정말 다윗의 경험과는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관하여 무식한 사람들입니다.영적으로 어두운 사람들은 정말 지극히 절망적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가치 만을 중요시하고 말씀과 진리의 깊은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지극히 얕은 바다에서 거하므로 바다 세계의 놀라운 스케일을 알지 못합니다. 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르는 법입니다(시42:7).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들만이 다윗의 확신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우선적으로 단연코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곳은 쉴만 한 물가와 푸른 초장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 보다도 큰 기쁨을 보장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그'가 '나'를 이라는 말에 주목해주십시오

 내가 푸른 초장으로 간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길에 관하여 지극히 구속사적이고도 섭리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푸른 초장으 로 가거나 쉴만한 물가를 쟁취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렇 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극히 놀라웁고도 무한하고 심원한 은혜를 끼쳐주는 기독교의 중대한 진리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께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회하는 것이 어려우시지요" 그때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면 그때는 너무나도 쉽습니다. 아니 목회가 즐거웁기까지 합니다. 나는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문제를 나의 힘과 계획으로 할려고 하기 보다는 우리 인생의 고달픈 마디마디에서 잠시 멈추어서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든 것을 조절하시는 주권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의뢰하고 맡기십시오.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여기 서도 주어는 역시 주 예수님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편히 쉴 수 있으면서도 형통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먼저 현실적 생활의 평안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안정된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 니다. "딤전2:2"에는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궁핍으로 남에게 돈을 꾸는 일이나 사치와 향락으로 생활이 번잡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번잡스럽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나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경제적인 결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풍족히 쓰고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광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단순히 경제적이며 현실적인 측면만을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닙 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의 세계와 믿는자들의 심리적인 평안함을 지극히 시각적 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떼들을 먹이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분은 오병이 어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잡히시기 전날밤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드셨던 분이셨습니다. 디베라 바닷가에 찾아오셔서는 (요21장) 제자들을 위하여 숫불에 생선과 떡을 구워놓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단순히 음식을 드셨던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무언가 중요한 말씀 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속에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지고 중대한 것들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떠 보면 시편은 다윗의 신앙적 스타일과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것은 시편 1편에서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목동일때에도, 사울에게 쫓길때에도, 왕이 되었을때에도, 전쟁터에서도 환경에 관계 없이 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묵상할때에 주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수많은 영적인 진리의 양식을 내리워주셔서 그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셨습 니다.

 하나님의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말씀의 풍요스러움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라고 비유했던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목동 이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장년이 되어서도 항상 그런 들판의 목자와 양에 관한 연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다는 관념의 밑바탕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정신세계는 언제나 풍성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현재 이같은 목자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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